단옥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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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개요

단옥재(段玉裁, 1735~1815) 중국 청나라 때의 학자로 자는 약응(若膺), 호는 무당(懋堂)이다. 강소성(江蔬省)에서 출생했다. 1760년의 거인(擧人, 중국에서 관리에 추천되거나 등용 시험에 응시하던 자. 또는 그 합격자.)으로 사천성(四川省) 무산(巫山)현의 지현(知縣, 청나라 때의 현의 으뜸 벼슬아치)이 되었으나, 곧 그만두고 학문에 전념했다. 대진(戴震)을 만나 그 제자가 되었고, 소학(小學)과 음운(音韻)에 정통하였다. 저서로 《설문해자주》 외에 《고문상서찬이(古文尙書撰異)》, 《모시고훈전(毛詩故訓傳》, 《시경소학(詩經小學》이 있다.

생가

단가(段家)는 본래 하남성에 살고 있었으나, 송나라가 북방 이민족에게 쫓겨 남쪽으로 옮겨 갈 때 조정과 함께 이사가, 강소성(江蔬省)에 정착했다. 강소성 진강부 금단현[1]이 단옥재의 출생지이다. 이 곳은 양자강 하류지역으로, 기후가 온난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으로, 당시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 단가(段家)는 대대로 학문을 해 온 집안이었다. 단가의 사람들도 누구나 다 과거를 치러 과거 시험에 합격하고자 했다. 과거시험은 향시, 회시, 전시의 세 단계[2]로 나뉘는데 1단계인 향시를 치르려면 부(府)나 현(縣)에 있는 국립학교의 학생이라는 자격이 요구되었다. 그러므로 맨 처음에 현의 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을 통과해야하는데, 이를 통과하면 ‘생원’이라고 불린다. 단옥재의 증조부, 조부, 부친은 모두 생원이 되었으나, 세 사람 모두 결국 향시에 합격하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출생과 소년시절

단옥재는 옹정(雍正) 13년(1735년), 26세의 단세속과 23세의 모친 사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3] 이 때는, 청 왕조가 극성기를 맞이한 무렵으로 사회는 완전히 안정되어 있었고, 학문도 최성기를 맞았다.

단옥재는 당시의 관습대로 대여섯살부터 조부에게서 과거를 위해 《논어》를 학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곱 살 때 조부모가 연이어 세상을 뜨자, 부모의 상을 입기 위해 돌아온 단세속은 친히 단옥재에게 고전의 기초를 가르치다가, 다시 금단을 떠나 자신이 연 ‘비릉연강교관사’라는 서당으로 돌아간다. 건륭(乾隆) 12년(1747년), 13세가 된 단옥재는 동시(童試)[4]에 응시해, 놀라운 성적으로 합격했다. 이렇게 단옥재는 열세 살 때에 생원이 되었따. 그는 이미 ‘사서’와 ‘오경’을 암송할 수 있는 우수한 소년이었다.

대진(戴震)과의 만남

건륭 25년(1760년), 단옥재는 향시에 응시해 합격했다. 향시에 통과하면 거인(擧人)의 칭호와 회시에 응시할 자격이 부여되었다. ‘거인’은 이미 훌륭한 예비관료로, 그 자격만으로도 지방의 고관에 임명될 수 있었다. 향시에 통과해 ‘거인’이 된 단옥재는 얼마 뒤 수도 북경으로 가서, ‘좌사[5]’인 전여성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회시의 수험 준비를 시작했다. 이 때 단옥재는 고염무(顧炎武)[6]의 《음학오서(音學五書)》를 탐독하였다. 이를 계기로 단옥재는 고대음운학을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거인이 된 다음해, 27세의 단옥재는 북경에서 회시에 첫 도전하지만, 불합격한다. 회시는 3년에 1회 밖에 실시되지 않아, 단옥재는 다음 기회까지 북경에 살면서 ‘경산만선전 관학’의 교습, 즉 국립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관학의 교습으로 있던 시기에 단옥재는 전 생애에 걸쳐 스승으로 존경하게 되는 인물인 대진(戴震)[7]을 만난다. 대진의 좌사 역시 단옥재와 같은 전여성이었다. 대진과 단옥재는 함께 전여성을 좌사로 떠받드는 동문의 관계였으므로, 왕래가 자연스러웠다. 이 때부터 단옥재는 대진을 스승으로 받을었는데, 그 관계는 대진이 세상을 뜨기까지 변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편지가 빈번히 오갔는데, 이는 편지보다는 학술논문에 가까웠다.

  1. 청나라 행정구획으로는 성(省)의 아래에 부(府)가 있고 府의 아래에 현(縣)이 있었다.
  2. 과거시험은 각 성(省)마다 시행하는 향시, 수도 북경에서 실시하는 회시, 마지막으로 황제가 임석하여 실시하는 전시의 세 단계로 나뉜다.
  3. 모친이 단옥재를 잉태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네 마리의 양을 낳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단세속은 “양이란 ‘상(, 상서로운 징조)’을 말한다. 분명히 사내아이 넷이 태어날 것이다.”라고 해몽을 했다. 예언대로 그녀는 후에 단옥재를 장남으로, 아들 넷과 딸 둘을 낳았다.
  4. 동시의 정식 명칭은 학교시(學校試)로, 이 시험은 본래 국립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이었다. 학교시도 현마다 실시하는 현시, 부에서 치르는 부시, 본 시험인 원시라는 3단계로 나뉘어 있는다. 원시까지 통과해야 비로소 생원이 된다.
  5. 향시의 실시 책임자
  6. 고염무(1613~1681)는 명말청초의 대학자로, 청조 학술의 발전에 기초를 확립한 인물이다. 그의 저서 《음학오서(音學五書)》는 정밀한 고증을 기초로 고대음운학의 기초적 연구와 방법론을 서술한 명저이다.
  7. 대진(1723~1777)은 안휘성 휴녕현 사람으로 단옥재보다 12세 연상이었다. 젊어서부터 정밀한 고증 논문을 저술해, 건륭제가 방대한 도서를 집성하여 사고전서(四庫全書 )를 편찬할 때 만권 서적의 교정과 해제를 담당해 고전연구의 성과를 발휘했다. 또한, 고염무 이래의 고대음운학연구를 계승,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