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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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6월 13일 (수) 23:51 판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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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
李白

출생 701년
쓰촨 성
사망 762년
당나라 안후이 성
국적 나라
별칭 자(字)는 태백(太白, 타이바이)
호(號)는 청련거사(靑蓮居士)
별명(別名)은 시선
직업 시 (문학)
종교 도교
주요 작품 산중문답(山中問答)
청평조사(淸平調詞)

이백(701년~762년)은 중국의 시인이다.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촉나라 쓰촨 성 쑤이예 출생이다.
두보와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힌다. 이 두 사람을 합쳐서 "이두(李杜)"라고 칭하고 이백을 "시선(詩仙)"이라 부른다. 현재 약 1100여 수의 시들이 남아 있다.

생애

초반기(701년~726년)

이백은 촉나라 쓰촨 성 쑤이예에서 태어났다. 이백의 아버지가 중앙 아시아에서 장사를 하던 무역상이었기 때문에 이백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였고 한다.
25세나 26세까지 동암자(東巖子)라는 선인과 쓰촨 성의 산들을 오르며 도교를 수양하였다.
25세나 26세에 고향을 떠나 강남(江南)을 여행하였으며, 몰락한 귀족의 자제들과 어울렸다.

구직기(726년~742년)

한림원 생활(743~744)

744년 43세에 현종의 칙령을 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의 자리에 올라가게 되어 수도인 장안(長安)에 머물렀으나 자신의 적성과는 맞지 않는 따분함으로 44세에 사직하였다.

유랑기(744~755)

두보와의 여행(744~745)

사직 후에 자신의 친구이자 시(詩)적 라이벌인 두보와 함께 낙양에서 산둥까지 여행하였다.
54세에 다시 강남으로 돌아와 56세에 현종의 16번째 아들인 영왕 인(永王 璘)의 군대에 참여하였으나 영왕의 군대가 숙종에 의해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군대에 함께 있던 이백도 지금의 구이저우 성인 야랑(夜郞)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삼협(三峽) 부근까지 갔을 때에 숙종의 은사(恩赦)를 받아 다시 강남으로 돌아왔다.
만년에는 강남의 각지를 유람하였고, 61세에 안후이 성 당도(安徽省 當塗)의 현령(縣令)이었던 종숙 이양빙(李陽冰)의 집에서 사망하였다.

작품

대표적으로 산중문답(山中問答)과 청평조사(淸平調詞)가 있다. 그는 절구와 고시를 특기로 한 시인으로서 그의 시는 스케일이 크고 자유분방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 <<이백(영원한 대자연인)>>, 안치, 신하윤 외 옮김, 이끌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