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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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薄熙来)
황치판(黄奇帆)
왕리쥔(王立軍)
추이즈위안(崔之元)

요약

'충칭모델'은 충칭공산당위원회 서기(2007년~2012년)였던 보시라이(薄熙來)가 충칭 부임 이후 주도해 온 충칭시의 경제 개혁 방식을 총괄적으로 지칭한다.

배경

충칭모델은 시장경제로 전환한 이후 성공의 위기에 직면한 후진타오 정권이 자신의 정책이념인 과학발전관을 구현하기 위한 시범모델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후진타오는 충칭시가 4대 직할시로 선전된 10년째인 2007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왕양 충칭시 당서기를 비롯한 인민대표를 접견하는 자리에서 충칭시 발전의 비전인 '314 총체 전략'을 제시하였다. 즉 충칭은 중국의 서부대개발 전략의 중심으로 장강 하류지역인 상하이 등과 연결하여 연해-내륙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고 경제발전의 전국적인 확산을 선도하는 중심지역인 동시에 도농 간 격차 및 계층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도농통합 및 재분배 정책을 시범적으로 추진하는 실험지역으로서의 위상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따라서 충칭모델은 기본적으로 중앙정부의 충칭시에 대한 역할 부여와 그에 상응하는 우대정책 속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핵심인물

보시라이(薄熙来)

중국 공산당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1세대 혁명가 보이보의 아들로, 대련(大连)시장(1993-2000)과 요녕(辽宁)성장(成长)(2001-2004), 상무부부장(2004-2007)을 역임하였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는 충칭시의 당서기로 충칭의 개혁을 주도하였다.

황치판(黄奇帆)

문혁 시절 상하이 코크스 공장의 근로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황 시장은 1980년대 초 상하이 시 공무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1990년부터는 푸둥(浦東)개발 판공실 부주임을 맡는 등 상하이를 천지 개벽시킨 푸둥 개발의 주역으로 참여하였다. 2001년 충칭시 부시장이었다가 2010년 시장으로 임명되었다.

왕리쥔(王立軍)

네이멍구(内蒙古自治区) 아얼산림업국직원(阿尔山林业局职员)부터 시작하여 크고 작은 업적을 쌓은 왕리쥔은 랴오닝(辽宁)성 티에링시(铁岭市) 공안국 당조서기(党组书记)로 본격적인 정치참여를 시작하였다. 2008년 충칭 공안국 당위부서기와 부국장을 맡으면서 보시라이, 추이즈위안과 함께 충칭시 개혁에 참여하였다.

추이즈위안(崔之元)

칭화대학(清华大学)의 공공관리학원 교수이자 대표적인 중국의 신좌파로, 충칭시 국유자산위원회의 주임직을 겸직하였다. 추이즈위안은 '자유사회주의(국유자산의 시장 수익을 통한 세율인하과 국채축소)'의 현실적 실현 가능성에 늘 주목해왔다.

개혁

대표 정책

  1. 내륙개방 정책: 많은 부품을 국내 생산에 의존하여 수출시장은 물론이고 내수 경제를 진작시키는 새로운 가공무역 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다.
  2. 국유자산 보존을 통한 혼합경제체계 구축 정책: 충칭은 위푸공사(渝富公司)를 설립하여 국유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동시에 가치를 증대시켰다. 증가된 국유재산은 다시 민간부문의 투자로 이어져서 사회인프라 투자와 복지 구현에 사용되었다.
  3. 민생 정책: 충칭은 인근 농촌의 농민공 등을 충칭시 호구에 통합시켜 충칭시로부터 사회보장 혜택을 얻게 하였고, 도시로 유입되는 농민공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함으로써 양극화 해소를 추진하였다.
  4. 사회주의 정체성 강조 정책: 충칭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의 상업광고를 금지하거나 충칭시민에게 혁명가요를 부르게 하는 등 대대적으로 사회주의적 정체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동시에 충칭의 간부들이 일반 대중의 삶을 경험하게 하는 '싼진싼통(三进三同)' 정책을 추진하여 인민과 함께하는 당의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5. 범죄소탕, 부패척결 정책: 충칭 당국은 2009년 6월 이후 '다헤이(打黑)'를 벌여 범죄조직들을 소탕하고 범죄조직과 연계된 것으로 밝혀진 부패한 충칭시의 고위관료들을 처벌하였다.

충칭모델에 대한 다양한 정의

충칭에서 추친, 전개되고 있는 정책과 실험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충칭모델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 역시 논자와 매체의 관심, 목적, 착목점에 따라 다양한 층위로 분산되어 있다. 다음은 충칭모델을 규정짓는 여러 정의를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 내수 위주의 재생산 모델: 재생산 과정의 특성과 관련지어 충칭모델을 보는 시각이다.
  • 내륙 개방형 모델: 부품의 공급처와 가공생산품의 시장 모두를 주로 해외에서 찾는 중국 연해지역의 가공무역의 경향과 대비되는 형태로 보는 시각이다. 즉, 시장은 해외에서 찾되, 부품의 공급처는 현지에서 찾는 것이다.
  • 사회보장성 주택과 사업형 분양주택의 동시 발전 추구 모델
  • 도농 통합 모델: [1]일종의 토지이용지수를 가리킨다. 이것을 거래한다는 것은 곧 토지개발권을 거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충칭의 급격한 공업화와 도시화 과저에서 필요한 산업용, 주거용 토지의 공급을 원활히 하면서도 주변 농촌지역의 경작지 감소를 방지하는 것은 물론, 도시화 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토지가치 상승분을 토지 개발상과 국가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토지를 제공한 농민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ref>거래를 통해 도시와 농촌의 동시적 발전을 꾀하였다.
  • 내륙발전 모델: 서부 대개발을 위한 전진기지로의 충칭의 역할을 강조한 시각이다.
  • 포스트 마오주의 모델[2]: 충칭 시민을 대상으로 '혁명가요 부르기', '혁명경전 읽기' 캠페인을 시행했다는 점과, 간부들을 대규모 하방시키는 '싼찐싼통'운동을 펼쳤다는 점에서 마오주의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제 12차 5개년 규획

2010년 충칭시는 세 가지 전환(三个转变)정책을 추진함으로써 환경친화적이고 산업구조가 고도화된 시장경제 구축을 지향했다. 세부 정책은 다음과 같다.

  1. 에너지 및 자원 소모형에서 과학기술 발전과 인적자원 자질 제고, 경영 혁신형으로의 전환
  2. 전통적인 중화학 공업 위주에서 신흥 전략적 산업과 전통산업의 공통구축으로의 전환
  3. 2차 산업위주에서 3차 산업 위주로의 전환

방향성

시장자본주의의 중심의 기존의 연해 지역 경제 개혁 모델과 달리 충칭모델은 상대적인 수준에서나마 사회주의적 요소의 재도입이라는 일종의 경향성을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냈다.

결과

성과

  • 2010년 기준 충칭의 GDP는 7890억 우안으로 중국의 31개 성급 지역별 GDP 총량 순위에서는 아직 23위에 불과하지만, 전년 대비 GDP 증가율은 17.1%로 17.4%의 증가율을 보인 톈진(天津)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이루었다.
  • 충칭모델은 중국의 토지공유제와 시장경제가 적절히 조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모범사례로 꼽힌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지난 30여년간 고민해 온 핵심과제인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실질적인 성공이었다.
  • 중국식 사회주의: 충칭시위(市委) 당교(党校) 쑤웨이교수는 장쩌민 시대의 중국식 사회주의의 강조점이 '중국식'이었다면, 충칭모델의 중국식 사회주의의 강조점은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5대 모순 해결을 위해 사회주의적 요소를 과감하게 재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인민일보 등 중국의 관변 언론은 물론이고 중국 국내외의 높은 호평을 받았으며,현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차세대 지도부의 대다수가 충칭을 방문하여 충칭의 개혁에 대해 공식적인 지지를 표명하기도 하였다.
  • 중국에서 녹색경제 체제를 추진한 대표적인 지역발전 모델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충칭모델에 대한 비판

  • 우징롄(吳敬璉): 충칭모델이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을 부정하였다고 비판하였다. 보시라이가 추진한 '따헤이(打黑)'는 법치를 위반했으며 충칭의 경제정책은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려는 포퓰리즘으로, 정부가 투자한 금액 대비 수익이 현저히 적다고 주장하였다.
  • 뉴스위크: 충칭의 많은 민간 기업가들이 따헤이과정에서 억울하게 부패분자로 연루되어 처벌되었고, 보시라이가 이들의 재산을 강제로 압수해 충칭모델 구축과 홍보에 사용하였다고 보도하였다.
  • 보시라이의 사회주의 정체성 강조 정책은 문화대혁명을 재현하려는 조치로 여겨졌고, 나아가 그의 홍색 캠페인은 시장경제에 반대하려는 저의를 가진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 후진타오: 2011년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식에서 보시라이의 정치활동을 겨냥하여 문화대혁명과 좌경화를 역사적 오류로 규정한 개혁개방 초의 정책이 옳았다는 발언하였다.
    • 원자바오: 2012년 3월 14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을 앞둔 내외 합동 기자회견에서 "현 충칭시 당위원회와 시정부는 반드시 반성해야 하고 진실로 왕리쥔 사건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하며 보시라이의 정치적 오류를 구분하여 지적하였다.
    • 쉬여우위(徐友漁): 충칭모델은 중국모델의 극단화된 형태라고 간주하고, 현재는 시장경제를 시행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법치에 대한 유린, 광신적 이데올로기, 다수 대중의 지지와 동원 등의 측면에서 문화대혁명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비판하였다.

비판에 대한 재비판

  • 충칭모델은 시장경제의 원칙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정부 주도의 시장 경제'의 형식이었다. 연해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발전에 처해있던 서부 내륙지역의 경제성장을 위한 대대적인 인프라 구축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충칭에는 잇달아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여러 해외기업과 국내 저명기업들의 직접투자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 보시라이는 충칭시 당서기로 임명되기 전까지 중국 시장경제의 확대를 주관하여 온 정부 부처인 '상무부'의 장관을 지낸 인물로, 재직기간동안 세계무역기구(WHO)의 시장화 규범에 맞도록 중국 경제체제를 전환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보시라이를 극좌파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 왕후이(汪暉): 원자바오의 문화대혁명과 관련된 발언이 "충칭 실험이 개혁 노선의 궤도를 벗어난 중대한 정치적 오류인 듯한 인상을 대중에게 심어주기"위한 것이며, 이는 광둥이나 윈저우 모델 역시 무수한 우류와 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충칭모델에 대해서만 의도적인 정치적 탄압을 가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충칭사건의 처리 과정을 신자유주의의 득세를 노리는 세력과 당 안팎의 언론 및 외세가 결탁하여 벌인 권력쟁탈전이자 밀실정치의 쇼라고 강력히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 후

최근까지도 충칭의 성장률은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인다.
세계 최대 노트북 PC생산기지가 된 충칭 시용 산업단지의 노트북 PC 생산라인

계속되고 있는 발전

충칭은 2016년 1분기에도 10.7%로 성장하여 8분기 연속 중국 경제성장률 1위를 기록했다.

  • 충칭의 장베이주이(江北嘴): 장베이주이는 푸동과 톈진에 이어 중국의 3번째 국가급 개방 신구(新區) 양장(兩江)신구 내에 조성 중인 핵심 상업지역으로, 개발을 통해 고층빌딩 숲으로 이뤄진 금융가로 변신 중이다. 2015년 말 동남아시아의 금융 중심지인 싱가포르와 중국 정부 간 공동프로젝트가 장베이주에서 시작되었다. 쑤저우와 톈진에 이어 3번째로 싱가포르-중국 공동 프로젝트로 낙점된 것이다.
  • IT기술의 발달: 충칭 경제 고상장의 일등공신은 IT기술로, 시용(西永)산업단지 개발유한공사 종합부 진하이쥔(金海軍) 부장은 "세계에서 생산되는 노트북 3대 중 한 대가 충칭산이고, 5대 중 한대는 시용 단지에서 만든다"고 말했다. 황치판 충칭 시장도 "전자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은 부품의 80%를 충칭에서 조달한다"고 전했다.
  • 자동차 생산기지로의 부상: 2015년 충칭에서는 300만대 이상의 자동차를 생산하였으며, 이는 중국에서 생산된 자동자의 8분의 1에 달하는 양이다. 포드 등 다국적 자동차회사들이 충칭으로 진출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도 2015년 중국 합작법인인 베이징 현대차의 신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참고문헌

  1. 성근제, "보시라이의 리더쉽과 '충칭모델'",『동아시아 브리프』, 2010, 5(4) : 80-85쪽
  2. 왕후이(성근제, 김진공, 이현정 역), 『탈정치 시대의 정치』, 돌베개, 2014
  3. 이종민, "'충칭사건'과 중국모델의 방향에 대한 비판적 인식",『중국현대문학』, 2015, 74 : 241-268쪽
  4. 주장환, "2012년 중국 권력 투쟁의 전개와 그 특징 : '보시라이 사건'을 중심으로", 『대한정치학회보』, 2012, 20(2) : 243-262쪽
  5. 김진공, "2012년 '충칭사건'과 중국의 공론장 문제",『중국현대문학』, 2013, 65 : 209-234쪽
  6. 조영남, "보시라이(薄熙來) 해임을 보는 한 시각",『동아시아 브리프』, 2012, 7(2) : 50-56쪽
  7. 이홍규, "보시라이 숙청과 충칭모델의 미래",『현대중국연구』, 2012, 14(1), 37-82쪽
  8. 강준영, "중국 보시라이(薄熙來)사건의 정치학",『국제지역연구』, 2013, 17(4), 213-230쪽

외부링크

  • 지표
  • 정식을 있는 용어는 아니며, 필자가 임의적으로 설정한 용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