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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죽간에 붓으로 글을 쓰다가 잘못 쓰면, 잘못 쓴 글자를 칼로 긁어냈다. 이것이 刪이 冊(책)과 刀(칼)로 구성되어 있는 이유이다. 본래의 ‘제거하다’의 의미는, ‘축약하다’, ‘요약하다’의 의미로 파생되었다. 그 예로 ‘수정하다’는 의미인 刪改(산개), 그리고 ‘잘라내다’의 의미인 刪汰(산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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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죽간에 붓으로 글을 쓰다가 잘못 쓰면, 잘못 쓴 글자를 칼로 긁어냈다. 이것이 刪이 [[]](책)과 [[]](칼)로 구성되어 있는 이유이다. 본래의 ‘제거하다’의 의미는, ‘축약하다’, ‘요약하다’의 의미로 파생되었다. 그 예로 ‘수정하다’는 의미인 刪改(산개), 그리고 ‘잘라내다’의 의미인 刪汰(산태)가 있다.
  
 
==文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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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간 위에 글을 잘못 새겼을 때는 글자를 칼로 깎아내고 다시 새겼을 것이다. 그래서 소전에서 刪은 죽간 옆에 칼을 놓아 깎는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종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전가지 문사들은 필기구로 칼을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 동주 시기의 무덤에서는 구리로 만든 서도가 필기도구와 함께 발견되고 있다. 오늘날 화북지방에서는 대나무를 그다지 많이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3천여 년 전이나 더 이른 시기에는 그곳의 기후가 지금보다 훨씬 따뜻했고 습기도 더욱 많았으므로 대나무가 번성할 수 있었다. 대나무를 서판으로 사용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의 이점이 있었다. 쉽게 구할 수 있었고 값이 쌌다. 또한 길고 얇게 쪼갤 수 있고, 그 내면이 부드러워 글쓰기에 용이했다. 길고 좁은 대나무에 붓으로 글을 쓸 때, 수평으로 수직으로 쓰는 것이 훨씬 용이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형이 길게 늘어진 수직형태로 발달하게 되었다. 동물을 그릴 때 서 있는 모습대로 그리지 않고 마치 수직으로 서 있는 것처럼 그린 것도 이러한 점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상나라 때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필기재료로는 木牘(목독)처럼 면이 넓은 물건보다 오히려 면이 좁은 죽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ref> 허진웅, 《중국 고대사회》, 지식산업사, p.2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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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간 위에 글을 잘못 새겼을 때는 글자를 칼로 깎아내고 다시 새겼을 것이다. 그래서 [[소전]]에서 刪은 죽간 옆에 칼을 놓아 깎는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종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전가지 문사들은 필기구로 칼을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 동주 시기의 무덤에서는 구리로 만든 서도가 필기도구와 함께 발견되고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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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화북지방에서는 대나무를 그다지 많이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3천여 년 전이나 더 이른 시기에는 그곳의 기후가 지금보다 훨씬 따뜻했고 습기도 더욱 많았으므로 대나무가 번성할 수 있었다. 대나무를 서판으로 사용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의 이점이 있었다. 쉽게 구할 수 있었고 값이 쌌다. 또한 길고 얇게 쪼갤 수 있고, 그 내면이 부드러워 글쓰기에 용이했다. 길고 좁은 대나무에 붓으로 글을 쓸 때, 수평으로 수직으로 쓰는 것이 훨씬 용이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형이 길게 늘어진 수직형태로 발달하게 되었다. 동물을 그릴 때 서 있는 모습대로 그리지 않고 마치 수직으로 서 있는 것처럼 그린 것도 이러한 점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상나라 때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필기재료로는 木牘(목독)처럼 면이 넓은 물건보다 오히려 면이 좁은 죽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ref> 허진웅, 《중국 고대사회》, 지식산업사, p.21</ref>  
  
 
[[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2021년 3월 17일 (수) 01:19 판

語源

깍을 산.png

사람들이 죽간에 붓으로 글을 쓰다가 잘못 쓰면, 잘못 쓴 글자를 칼로 긁어냈다. 이것이 刪이 (책)과 (칼)로 구성되어 있는 이유이다. 본래의 ‘제거하다’의 의미는, ‘축약하다’, ‘요약하다’의 의미로 파생되었다. 그 예로 ‘수정하다’는 의미인 刪改(산개), 그리고 ‘잘라내다’의 의미인 刪汰(산태)가 있다.

文化

죽간 위에 글을 잘못 새겼을 때는 글자를 칼로 깎아내고 다시 새겼을 것이다. 그래서 소전에서 刪은 죽간 옆에 칼을 놓아 깎는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종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전가지 문사들은 필기구로 칼을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 동주 시기의 무덤에서는 구리로 만든 서도가 필기도구와 함께 발견되고 있다.

오늘날 화북지방에서는 대나무를 그다지 많이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3천여 년 전이나 더 이른 시기에는 그곳의 기후가 지금보다 훨씬 따뜻했고 습기도 더욱 많았으므로 대나무가 번성할 수 있었다. 대나무를 서판으로 사용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의 이점이 있었다. 쉽게 구할 수 있었고 값이 쌌다. 또한 길고 얇게 쪼갤 수 있고, 그 내면이 부드러워 글쓰기에 용이했다. 길고 좁은 대나무에 붓으로 글을 쓸 때, 수평으로 수직으로 쓰는 것이 훨씬 용이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형이 길게 늘어진 수직형태로 발달하게 되었다. 동물을 그릴 때 서 있는 모습대로 그리지 않고 마치 수직으로 서 있는 것처럼 그린 것도 이러한 점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상나라 때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필기재료로는 木牘(목독)처럼 면이 넓은 물건보다 오히려 면이 좁은 죽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1]

  1. 허진웅, 《중국 고대사회》, 지식산업사,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