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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바람까마귀 (토론 | 기여)님의 2017년 7월 3일 (월) 14:3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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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源

장려할 장.PNG

장(奬)은 긴 나무 의자(爿)에 앉아 '개(犬)'고기를 쥐고 누리는 사람(人)을 말한다.[1]
혹은 개를 부려서 가는 것이다(嗾犬厲之也). 犬의 뜻을 빌리고 將의 성을 빌린 형성자이다. 嗾는 개를 부리는 소리이며, 厲之는 之를 움직이게 시키는 것이다. 권하고 시킨다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또한 방언이다. 西秦과 晉 사이에 서로 권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2]


文化

장려할 장(奬)에 숨겨진 문화적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장수 장(將)자의 어원을 알아야 한다. 한자수에 따르면 장수 장(將)은 '손에는 고기를 쥔 채 긴 나무의자(爿)에 앉아 누리고 즐기는 사람'으로, 장려할 장(奬)은 장수 장(將)의 아래에 개 견(犬)자를 붙여 개고리를 쥐고 누리는 사람을 나타낸 것이다. 나뭇조각 장(爿)자가 긴 평상 같은 나무의자를 의미함을 참고한다면 의자에 앉아 타인이 바치는 공물을 갖는, 다시말에 권력을 가진 자가 장수 장(將)자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장려할 장(奬)자의 하부에 굳이 '개'고기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한자수에 따르면 고대에는 양고기나 돼지고기보다 ‘개고기’가 더 값어치있었다. 그래서 공로가 있는 전사를 장려하는 데에 자주 사용되었다. 춘추시기에는 심지어 출산하는 데에 개고기를 썼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월왕 구천은 복수를 위해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을 실시해 만약 부인네들이 남자아이를 낳으면 개고기를 얻을 수 있게해 상을 내리는 반면 여자아이를 낳는다면 돼지고기로 포상하게 하였다. 이외에도, 개고기는 신에게 바치는 맛좋은 제물이었다. 그 예로 <<예기>>에는 이렇게 기재되어 있다. ; “무릇 종묘에 제사를 지내는 예는, 소는 ‘일원대무’라 일컫고, (중략) 개는 ‘갱헌’이라 일컫는다.”
그렇지만 고대에 정말 양고기나 돼지고기보다 ‘개고기’가 더 값어치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은 듯 하다. 글쓴이가 예로 든 <<예기>>만 하더라도 ‘개고기’보다 소나 돼지, 양, 닭을 먼저 언급하고 있다. [3]

물론 그 지칭의 차이가 있다. 돼지를 지칭하는 강렵, 돌비, 양을 지칭하는 유모의 경우 각 동물의 모양에 관련된 지칭어임에 반해 개고기의 지칭어는 국경이라고 하는 국가(제사)에 바치는 공물이라는 뜻의 ‘갱헌’이다.[4]
한편 『중국고대사회 - 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에서는 돼지가 가장 주요한 제물 중의 하나는 아니었음은 인정하나 제물로서 양과 개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으며 또한 개의 사회적 쓰임이 많음을 들고 있다.
[5]
이로 보았을 때 '개고기'가 더 값어치 있었다는 진술은 개의 쓰임이 더 다양했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공을 세운 이들에게 개고기를 나누어주었다는 습속이 있었으며, 이러한 문화적 배경으로 이 글자가 '장려하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듯하다. 마지막으로 장려할 장(奬)자의 하부에 위치한 글자가 개 견(犬)이 아니라 큰 대(大)가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장려할 장(奬)자의 소전체에서 개의 원형을 찾을 수 있어, 한자의 발전과정에서 점이 탈락된 것으로 보인다.

  1. 랴오원하오, 『한자수』, 아템포, 2013, p.93
  2. 설문해자
  3. <<예기>>의 해당 구절 ; 凡祭宗廟之禮(범제종묘지례) 무릇 종묘에 제사할 때의 예법은, 牛曰一元大武(우왈일원대무) 소는 ‘일원대무(一元大武)’라 일컫고, 豕曰剛鬣(시왈강렵) 큰 돼지는 ‘강렵’이라 일컫고, 豚曰腯肥(돈왈돌비) 작은 돼지는 ‘돌비’라 일컬으며, 羊曰柔毛(양왈유모) 양은 ‘유모(柔毛)’라 일컫고, 雞曰翰音(계왈한음) 닭은 ‘한음(翰音)’이라 일컫고, 犬曰羹獻(견왈갱헌) 개는 ‘갱헌(羹獻)’이라 일컫는다.
  4. 랴오원하오, 『한자수』, 아템포, 2013, p.93
  5. "양은 한나라 때와 그 이전에는 소 다음으로 중요한 제물이었다."
    "비록 돼지가 상`주나라 때에 가장 중요한 제물은 아니었다고 하나"
    "모든 사육동물 가운데 개는 인간과 가장 가까이 살았다. 인류 역사의 매우 이른 시기부터 개는 집을 지켰으며, 사냥할 때는 사람들의 동반자였다. (중략) 개는 집을 지키는 임무가 있다는 이유로 집의 기초를 놓을 때 제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또 개는 상나라 무덤의 시체 아래에 있는 오목한 웅덩이에서 종종 발견되기도 하는데 아마도 죽은 사람이 가장 좋아했던 동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후에 개는 인간의 충실하고 믿음직한 동반자로 사람들은 애정을 가지고 길렀기 때문에, 이러한 동물을 차마 잡아먹을 수 없었다."

    허진웅, 『중국고대사회 - 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영남대 중국문학연구실, 1993, p.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