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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源

적을 과.png

금문의 寡자는 宀과 頁을 따른다. 頁은 사람의 형상으로 집안에 오직 한 사람만 있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寡의 본의는 홀로, 고독하다를 나타낸다. 고대에는 남편을 잃은 여인들 혹은 처가 없거나 배우자를 잃은 남자들 모두 寡라고 불렀다. 寡는 또한 ‘적다’의 의미가 있어 多와는 상대된다.

寡의 본래의미는 많지 않은 것, 즉 적은 것이다. 《설문》:"寡는 적은 것이다." 주대 금문에서 윗부분은 가옥, 궁궐의 바깥쪽 둘레이고, '중요한 덮개'로 삼아졌다. 아랫부분의 頁은 머리 부분이 두드러진 사람이다. 합쳐져서 집 안에 오직 한사람만 있음을 표시하여 자연스럽게 적다는 뜻이 되었다. 또한 황제는 전국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에 따라 황제는 스스로를 ‘과인’이라고 일컬었다. 후에 고독하다, 줄어들다, 남편을 잃은 여성의 의미로 차용되었다. 진《수호지간》에서 頁자 아래 人를 더한 것이 후에 소전에서는 오인되어 分자로 쓰인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 사족을 가한 아쉬움이 있다. 한나라 예서(《조전비》)예서의 필획은 평평해지고 수직이 되었다. 쓰기는 편해졌지만, 갑골문, 금문의 형상에서 직접 보이는 것과는 매우 달라졌다.

文化

늙어서 아내가 없는 것을 鰥(홀아비 환)이라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것을 寡(적을, 과부 과)라고 한다. 寡는 사당 안에서 수심에 잠겨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호소하는 상대방은, 두말할 것도 없이 나를 남기고 먼저 떠난 지아비이다.[1] 뿐만 아니라 寡자는 춘추시대 때 제후나 제후부인이 자신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하지만 점차 이 글자를 사용하는 계층이 축소되어 제왕(군주)이 자기를 겸손하게 일컫는 말이 되었다.《좌전》(희공 4년)에 초나라 군주가 한 말 중에 “당신은 북방에 살고, 과인은 남방에 살고 있습니다.(君處北海, 寡人處南海)”라는 예가 있다고 한다.[2] 한국의 사극드라마를 보다보면 왕이 종종 자신을 가리키며 ‘寡人(과인)’이라고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중국의 문화가 당시 조선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시라카와 시즈카는 寡의 아랫부분을 사당 안에서 의례를 거행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설명[3]하며 한자와 제사문화와의 연계성을 재차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책에서 또 다른 부분에는 위와 같이 과부의 의미로 寡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의미적 변화에 대한 보충설명이 더 필요해 보인다.

寡에 관한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이 있다. 해음 현상으로 인한 생활의 금기 같은 것인데, 중국에서는 결혼을 앞두고 신부가 瓜(오이 과)류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瓜의 발음이 寡와 같아 이러한 음식을 먹고 훗날 자신이 과부가 될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한다.[4] 흡사 커플에서 離로 해음이 되는 梨(배)를 선물하지 않는 풍습과 같다고 할 수 있다.

  1. 시라카와 시즈카, 한자의 세계, pp.136-137
  2. 이돈주, 한자․한어의 창으로 보는 중국 고대문화, p.208
  3. 시라카와 시즈카, 한자의 세계, p.224
  4. 이돈주, 한자․한어의 창으로 보는 중국 고대문화, p.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