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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때에는 술집을 뜻하기도 했다.<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54</ref> 또한 16세기 고문서에 쓰인 이두(吏讀)에서도 庫의 쓰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당시 중세국어는 ‘곳’을 ‘庫’와 ‘庫叱(고질)’로 표기했다.<ref>박성종, 「16세기 고문서의 기초연구 : 16세기 고문서 이두의 예비적 고찰」, 『고문서연구』, vol.24, 200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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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때에는 술집을 뜻하기도 했다.<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54</ref> 또한 16세기 고문서에 쓰인 이두(吏讀)에서도 庫의 쓰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당시 중세국어는 ‘곳’을 ‘庫’와 ‘庫叱(고질)’로 표기했다.<ref>박성종, 「16세기 고문서의 기초연구 : 16세기 고문서 이두의 예비적 고찰」, 『고문서연구』, vol.24, 200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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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庫는 본래의 의미 외에도 어떤 물건을 보관하는 곳으로 쓰였는데, 천성령(天聖令) 창고령(倉庫令)과 같은 법률에서 庫가 수레뿐만 아니라 곡물 및 재화 등 여러 가지 물건을 보관하는 곳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중국 고대 사회에서는 수취한 곡물과 재화의 안정된 보관 및 출납을 국가 재정과 관련하여 필수적인 문제로 인식해서 일찍부터 이에 관한 제도와 법령을 정비해 갔다.<ref>김진우, 「天聖令 倉庫令과 廐牧令의 사료적 가치와 역주」, 『중국고중세사연구』, vol.36, 2015, p. 39</ref> 그 예로 창고(倉庫)라는 율령이 남조(南朝) 양(梁)나라 무제(武帝) 때 처음 나왔다.<ref>위의 논문, 같은 페이지</ref> 또한 창고령(倉庫令)이라는 명칭은 수(隋)나라 문제(文帝) 개황(開皇) 연간 고경(高熲)이 편찬한 수영(隋令) 30권 중 제25권 <(창고구목령)倉庫廐牧令>에서 처음 확인할 수 있다.<ref>위의 논문, pp.39-40</ref>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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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5일 (토) 02:32 판

語源

곳집 고(庫).png

회의(會意)자. 广(집 엄)과 (수레 거)가 합해진 글자로 전차나 수레를 넣어두는 집을 뜻한다. 이후 무기를 넣어두던 무기고나 창고, 감옥의 뜻이 나왔다. 허신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전차를 놓는 창고(兵車藏也)’로 해석하고 있다.[1] 관련 단어로는 국고(國庫), 재고(在庫), 창고(庫)가 있다.

文化

송나라 때에는 술집을 뜻하기도 했다.[2] 또한 16세기 고문서에 쓰인 이두(吏讀)에서도 庫의 쓰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당시 중세국어는 ‘곳’을 ‘庫’와 ‘庫叱(고질)’로 표기했다.[3]

글자 庫는 본래의 의미 외에도 어떤 물건을 보관하는 곳으로 쓰였는데, 천성령(天聖令) 창고령(倉庫令)과 같은 법률에서 庫가 수레뿐만 아니라 곡물 및 재화 등 여러 가지 물건을 보관하는 곳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중국 고대 사회에서는 수취한 곡물과 재화의 안정된 보관 및 출납을 국가 재정과 관련하여 필수적인 문제로 인식해서 일찍부터 이에 관한 제도와 법령을 정비해 갔다.[4] 그 예로 창고(倉庫)라는 율령이 남조(南朝) 양(梁)나라 무제(武帝) 때 처음 나왔다.[5] 또한 창고령(倉庫令)이라는 명칭은 수(隋)나라 문제(文帝) 개황(開皇) 연간 고경(高熲)이 편찬한 수영(隋令) 30권 중 제25권 <(창고구목령)倉庫廐牧令>에서 처음 확인할 수 있다.[6]

출처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54

주석

  1. 출처 : 漢典
  2.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54
  3. 박성종, 「16세기 고문서의 기초연구 : 16세기 고문서 이두의 예비적 고찰」, 『고문서연구』, vol.24, 2004
  4. 김진우, 「天聖令 倉庫令과 廐牧令의 사료적 가치와 역주」, 『중국고중세사연구』, vol.36, 2015, p. 39
  5. 위의 논문, 같은 페이지
  6. 위의 논문, pp.3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