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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205</ref><ref>廖文豪, 『汉字树 3』, 吉西平, 2015, p109</ref>
 
<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205</ref><ref>廖文豪, 『汉字树 3』, 吉西平, 2015, p109</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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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2017년 7월 3일 (월) 14:39 기준 최신판

語源

곳집름.JPG

广이 의미부이고 稟이 소리부인 형성자다.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를 의미하는데 稟은 기단 위에 세워진 창고를 의미하는 㐭에 禾를 더해 ‘곡식창고’의 의미를 강조하였는데, 후에 집의 천막을 나타낸 广이 첨가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㐭의 갑골문㐭갑골문.jpg은 인데, 지붕과 두꺼운 벽을 표현한 것이다. 나중에는 습기를 방지하는 덮개가 지붕위에 추가되어덮개가추가되어.jpg 의 형태가 되었다가 전서에 이르러서야 양옆의 두꺼운 벽이 사방을 에워싼 모습인 지금의 回가 되었다.

文化

상나라 시기부터 대규모의 곡식창고의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사기에는 주나라 문왕이 상나라를 공격할 때, 상나라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곡식창고를 열어 난민들을 구제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따라서 본래의 의미는 곡식창고지만, ‘주다’, ‘나눠주다’, ‘부여받다’, ‘넘치다’ 등으로 의미가 확장되기도 하였다. 주나라 시기에 이르러서는 곡식들을 나누어주며 백성들을 구제하던 공공기관이 생겼는데, 이 공공기관을 관리하던 관리를 廩人이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1][2]

  1.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205
  2. 廖文豪, 『汉字树 3』, 吉西平, 2015, p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