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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궁2.png

語源

弓은 화살을 쏘는 무기이다. 강인하고 단단한 나무로 몸체를 구성하고 실 따위로 활시위를 구성한다. 활에 활시위를 얹어서 활시위를 잡아당겨 발사한다. 弓의 갑골문은 이러한 활의 형태이다. 금문의 弓자는 활등만 있고 활시위는 생략되었다. 활등의 형태가 꼬불꼬불하여서 弓자는 ‘꼬불꼬불하다’라는 의미도 가진다. 대체로 弓을 따르는 글자는 弓과 관련되어 사용된다. 弦, 彈, 張, 弛, 弩등이 있다.

文化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활은 주나라 후기인 전국시대의 것이다. 長沙의 고대무덤에서 발견된 이것은, 4층으로 된 대나무편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가운데로 갈수록 두터웠으며, 양쪽 끝은 나무로 만들어져 시위를 끼우기 쉽도록 고안돼 있었다. 또 활 전체가 대나무편과 실크, 정교한 칠로 둘러싸여 있었고 길이가 약 1.4미터였다. 상나라 때의 활은 아마도 이보다 더 길었을 것이다. 예컨대 당시에는 弓尺’이라 불리며 토지를 재는 데 사용했던 일종의 자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길이가 1.64미터 정도 되는 것도 있었다. 이런 활의 구조는 분명 장사에서 발견된 것과 일치할 것이다. 갑골문과 금문에서의 ‘弓’자의 외형은 이런 활의 모습에 근거해 그려진 것이다.[1] 몸체가 구부러지고 장식을 단 활을 그렸다. 굽힌 사람의 옆모습 尸시와 비슷하다.[2] 설문해자에서 허신은 “弓은 다한다는 뜻이다. 가까운 것으로 먼 것에 다하는 것이다. 상형이다.”라고 했다.[3]


우리 나라 활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계림유사≫에 “궁을 활이라 한다[弓曰活].”, “쏘는 것을 활쏘아라 한다[射曰活索].”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활’과 ‘활쏘아’는 우리 고유어임을 알 수 있고, 화살 역시 활쏘아에서 유래한 우리 고유어이며 이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 시(矢) 또는 전(箭)인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활은 서양에서 들어온 양궁(洋弓)과 구별하기 위하여 국궁(國弓)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또한 弓자와 관련하여 오랑캐 이(夷)에 관한 오해와 그 진실에 대한 스토리가 있다. 중국은 한족 이외의 변방의 이민족을 오랑캐로 일컫던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이렇게 네 개의 이민족을 뜻하는 사이(四夷)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 중, 동이(東夷)는 동쪽의 오랑캐, 곧 우리 민족 및 북방민족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우리 민족이 활을 잘 쏘는 민족이기에 大 와 弓을 합쳐, 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인 東夷라 칭했다고 익히 잘 알고 있는데, 사실 이는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로 해석한 완벽한 오해이다. 왼쪽 그림에 따르면, 오른쪽 사람의 형태가(人)-> (弓) 로 바뀌어 ‘사람을 품에 안고 있다’라는 의미의 夷가 탄생한다. 즉, 오랑캐의 의미는 없고 대인배, 인자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설문해자에서는 “동이는 大자를 따랐으니, 大자는 사람을 뜻한다. 동이의 풍속은 인자하다. 인자한 사람은 오래 사는 법이니,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골기품은 청동기가 출현함에 따라 크게 감소하였지만, 뼈로 만든 장식품의 제작은 오히려 좀더 날카로운 청동칼로 뼈에다가 아름다운 조각을 새기기가 쉬웠기 때문에 더 흥성하였다. 그러나 동주시대에 이르러 가축이 감소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옥기 산업이 번성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뼈로 만든 장식품의 제작은 쇠퇴하였다. 이 시기의 비교적 중요한 상품은 뿔로 만든 활이었다. 왜냐하면 활은 전쟁에서 사용되는 주요한 무기였기 때문이다. 그때의 복궁(複弓)은 나무로 몸체를 만들고 그 속에다 뿔을 붙인 것이다. 활의 힘은 뿔의 두께와 탄력성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에 고대의 사람들은 좋은 활을 각궁(角弓)이라 하였다. 활은 먼 거리를 공격하는 무기여서 활을 만드는 데 크게 주의를 기울였다. <고공기>에 의하면, 활을 만들 나무는 겨울에 베고, 봄에 뿔을 물에 담그며, 여름에 활시위를 준비하여 가을에 이 세 가지 재료를 조립한다. 끝으로 이듬해 봄에 활현을 단다. 전쟁의 승패와 생사는 활의 품질과 정교함에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었으므로 재료의 선택, 크기, 균형 및 기타 구성조건 등에 대해서 크게 주의를 기울였다.[4]

  1. 한자왕국,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청년사, pp.79,401
  2. 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문자에 숨은 고대인의 삶을 찾아서, 김성재, 동녘, p.237
  3.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서울대학교
  4. 許進雄, 『중국고대사회-문자학과 고고학적 해석에 입각하여』, 지식산업사, 1993, p.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