改革开放(上):没有蓝图的改革 - 개혁개방(상) : 청사진이 없었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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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bring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2월 13일 (화) 15:52 판 (第三种社会主义经济模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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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말

등소평은 "중국 개혁개방의 총 설계자"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러한 호칭는 개혁개방 운동에 대한 오해를 일으키기 쉽다. 여기서의 '오해'란, 1978년부터 일어난 개혁개방이 엄청난 연구와 고민, 설계를 통해 나온 "계획적인 실험"이었다는 부분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 개혁개방은 '일단 실행된' 실험이었으며 그 과정 속에서도 계속해서 수정을 거쳤던 말그대로 "청사진 따윈 없던 개혁"이었다. 사람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는 사실은 개혁개방 초기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여전히 1차 5개년 계획의 재현에 대한 기대를 한껏 머금은 체 '156공정'을 실시했다는 점이다.

1978년 등소평은 곡목谷牧을 서방의 여러 나라들로 파견한다. 곡목은 여러 기업들의 투자유치를 위해 강철과 석유화학, 자동차 등 120가지 항목을 각 나라들을 돌며 제시한다. 일본과 싱가폴은 등소평이 '친히' 비행기를 타고 방문하여 유세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계획은 아무런 결과물이 없었다. 유럽과 일본이 사심없이 투자를 하는 국가들이 아니었고 더욱이 중국의 열약한 기초 공업 시설과 미약한 소비 능력은 중국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게 했다. 이러한 상황이 되자 중국 정부는 어쩔수 없이 개혁 개방에 많은 힘을 쏟기 시작한다. 이때 중국 지도층이 직면했던 어려움, 즉 기체제(已体制)의 저효율, 자금과 인재의 부재, 마음속 깊이 있는 의식(사회주의)과 하고자 하는(개혁개방)일의 사상적 충돌 등은 과거 이홍장이 겪었던 상황과 비슷하다. 이 두 시대의 지도자들에게 특히나 무서웠던 점은 적절한 경제 이론이 없는 관계로 경제 개혁에 있어서는 다른 나라의 것을 참고하여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第三种社会主义经济模式

3가지 사회주의 경제 형식
중국 공산당이 공업의 중점을 계급투쟁에서 경제 건설로 옮기기로 결정하였을 때는 지구의 첫번째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이 탄생한지 어연 60년이 되던 때였다. 이 60년 동안, 각 국의 공산당원들은 2가지의 경제 모델를 모색하였다.

첫번째는, 스탈린-마오쩌둥의 명령형 계획경제 모델이었다. 이는 어떠한 형식의 사유제를 엄히 금하고, 가치의 법칙을 무시하며, 모든 자원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조한다. 1949년부터 1976년까지, 중국이 걸어온 길이 바로 이 길인데 효용이 없는 길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增量改革:由农民发动的工业化运动

中央政府的角色:放权与非均衡战略

地方政府的角色:积极参与的冒险支持

"哪里是改革的主战场"

物价闯关:转折点上的“意外失利”

80年代:“一切改革都从违法开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