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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源

벼 화.png

‘禾’는 진한(秦漢)시기 이전에는 粟(조 속 : 현재 중국에서는 小米라 하여 좁쌀을 의미함)을 뜻하는 경우가 많았고 오늘날에는 온갖 곡물류를 의미한다. 중국의 상나라, 주나라는 이미 전면적인 농업위주의 시대에 들어서있었던 사회였다.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농작물과 관련된 - 예를 들어 禾(벼 화), 麥(보리 맥), 栗(밤 율), 米(쌀 미) 등- 글자가 다수 나타나있다. 그 중 화(禾)는 뿌리와 잎을 지닌 한 가닥의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형상이다. 한자에서 무릇 화(禾)를 부수로 가지고 있는 자는 모두 농작물이나 농업활동과 관련이 있으며, 이와 같은 한자로 秉(잡을 병- ‘볏단’, ‘벼 한줌의 단’의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보아 ‘잡다’라는 뜻은 이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秋(가을 추 – 결실, 결실한 때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秀(빼어날 수 – 현대 중국어에서 ‘(벼에서) 이삭이 나와 꽃이 피다’, ‘이삭이 패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種(씨 종), 租(구실 조) 등이 있다.

文化

禾는 곡물류를 총칭하는 말이다. 고개 숙인 이삭과 위아래로 들쭉날쭉 돋아난 잎, 줄기와 뿌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禾의 형태가 어떤 사람은 기장에 가깝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벼에 가깝다고 한다. 그러나 禾는 단지 농작물의 일반적인 형상에 착안한 것이며, 어느 특정 작물을 핍진하게 묘사한 것은 아니다.[1] 그래서 때로는 기장 모양을 본떠 쓰기도 하고 벼 모양을 본뜨기도 한다. 이삭이 여물어 묵직하게 된 후 아래로 드리워진 형상은 곡물이 성숙했음을 의미한다. 금문에서는 이를 더욱 강조하였고 곧 소전체의 기본뼈대가 된다. 곡식이 모두 여물은 형상을 한 禾는 상주시대 이전에는 ‘곡식이 다 여물다’, ‘수확’ 등을 나타내던 年자와 통용되기도 하여, 복사(卜辭)에서는 年과 禾 두 글자가 동의어로서 종종 통용되었다.[2] 고대인의 관념에서 벼이삭은 인간의 노력과 자연의 여러 요소의 조화로 성장하며, 이것은 또한 인간의 생명을 조화롭게 한다. 『설문해자』의 ‘禾’자에 대한 해석을 보자. “禾, 좋은 곡식이다. 2월에 생장하기 시작하여 8월에 익으며, 사시의 조화로운 기운을 받으므로 禾라고 한다(禾, 嘉穀也. 二月始生, 八月而孰, 得時之中, 故謂之禾.)” 『관자管子· 소문小問』의 “그러므로 그것을 禾라고 하는 것이다.(故命之曰禾)” 의 주注에 “그것으로 인간의 생명을 조화롭게 한다(以其禾調人之生命)”라는 문장이 나온다.[3] 조화로움을 뜻하는 和자에 禾가 들어있는 것 역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벼 화’자는 보통 곡물로 해석된다. 유럽인들이 이 글자를 보면 밀, 호밀, 귀리, 보리 등과 같은 곡물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좁쌀과 쌀을 떠올린다. 사실 이 글자는 ‘조’로 번역해야 맞다. 왜냐하면 이 글자가 만들어진 지역에서는 조가 주요 식량작물이었기 때문이다. 조를 형상화한 글자들은 여러가지 필사법이 있다. 갑골문과 금문에 표현돼있는 이 글자들은 사람들이 채집하거나 경작하는 각종 곡물을 지칭한다. [4]

  1. 許進雄 지음, 洪熹 옮김, 《중국고대사회》, 1991, 동문선, p.133
  2. 陈炜湛,《汉字的故事-古文字趣谈》,文化艺术出版社,2010,p.228
  3. 왕닝, 시에똥위엔, 리우팡 저, 김은희 역, 《『설문해자』와 중국 고대 문화》, 학고방, 2010, p.203
  4.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김하림, 하영삼 옮김. 청년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