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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과 금문의 稱은 사람이 물고기 한 마리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이다. 이 글자의 본뜻은 '들다', '들어 올리다'라는 의미에서 ‘무게를 달다’라는 뜻이, 다시 ‘추천하다’, ‘찬미하다’, ‘표명하다, 공언하다’라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이 글자는 또 chèn으로 읽혀서, '들어맞다', '부합하다'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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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글자는 爯으로 손으로 자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나타낸 글자이다. 爯의 원래 의미는 손을 이용해서 자라의 무게를 어림잡는다는 뜻인데, 무게를 잰다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이는 고대 시장에서 자라를 저울에 무게를 달아 파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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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禾자를 더해 곡식의 무게를 재는 稱이 만들어지고 <ref>廖文豪, 《漢字樹 4》, 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 p.40</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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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설로, 사람이 물고기 한 마리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이다. 이 글자의 본뜻은 '들다', '들어 올리다'라는 의미에서 ‘무게를 달다’라는 뜻이, 다시 ‘추천하다’, ‘찬미하다’, ‘표명하다, 공언하다’라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이 글자는 또 chèn으로 읽혀서, '들어맞다', '부합하다'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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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해자》에서는 爯은 "동시에 들어올리다.爪를 따르며, 冓를 생략한 것이다(并舉也,从爪,冓省)"라고 되어있고 稱은 "저울질하는 것이다. 禾를 따르고 爯이 소리부이다.(중략)이는 무게를 재는 물건이 모두 곡식류였기 때문이다."(銓也。从禾爯聲。... 故諸程品皆从禾)라 되어 있다.≪한자어원사전≫<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ref>에서도 이 설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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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와 자라는 상주시대 최고의 경제가치를 가지는 수산동물로 선진의 고서에서 식상할 정도로 자주 보이며, ≪풍속통≫에서 말하기를 “초목과 어별로써 임금과 백성을 넉넉하게 기른다.”고 되어있다.<ref>廖文豪, 《漢字樹 4》, 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 p.3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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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중국인의 눈에는 자라가 보양식이나 예술품으로 취급되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台塑(포모사, 대만의 재벌 그룹)창립주 王永庆(왕융칭)의 보양방법이 매일 화기삼을 넣고 끓인 갑어탕 한 그릇을 먹는 것이였다고 한다. ≪한서≫에는 또 "등껍질 가장자리부터 길이가 1척2촌 인 큰 거북의 가치는 2160전이다"고 쓰여있다.(길이가 1척 2촌 쯤 되는 특대호의 거북과 큰 자라는 2160전의 가치를 지녔다. 한 왕조때 1척 2촌이면 약 28cm이다)<ref>廖文豪, 《漢字樹 4》, 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 p.40</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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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들어 올리는 그림에서 ‘무게를 재다’라는 의미가 나왔다는 것은 앞서 얘기 했듯이 고대 중국인들에게 물고기가 유일한 먹거리이자 부(富)의 상징이었다는 것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나중에 부수(部首)로써 禾(벼 화)가 추가 된 것도 이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대 홍수 시대에는 어패류만이 유일한 식료품이었으나 우임금의 치수(治水) 이후에는 농작의 결과물인 곡식도 많이 먹게 되었다. 그리하여 ‘들어 올려 무게(가치)를 재는’ 것에 물고기 이외에 날곡(禾)도 추가됨으로써 ‘잴 칭’의 의미가 더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고기를 들어 올리는 그림에서 ‘무게를 재다’라는 의미가 나왔다는 것은 앞서 얘기 했듯이 고대 중국인들에게 물고기가 유일한 먹거리이자 부(富)의 상징이었다는 것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나중에 부수(部首)로써 禾(벼 화)가 추가 된 것도 이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대 홍수 시대에는 어패류만이 유일한 식료품이었으나 우임금의 치수(治水) 이후에는 농작의 결과물인 곡식도 많이 먹게 되었다. 그리하여 ‘들어 올려 무게(가치)를 재는’ 것에 물고기 이외에 날곡(禾)도 추가됨으로써 ‘잴 칭’의 의미가 더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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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稱才】  칭재. 뛰어난 인재. 현명한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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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稱】  허칭. 1. 사실 확인 없이 찬송하다. 2. 실체 없는 명성. 공명(空名)   
 
【虛稱】  허칭. 1. 사실 확인 없이 찬송하다. 2. 실체 없는 명성. 공명(空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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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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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5일 (화) 21:10 판

語源

잴 칭.png

본래 글자는 爯으로 손으로 자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나타낸 글자이다. 爯의 원래 의미는 손을 이용해서 자라의 무게를 어림잡는다는 뜻인데, 무게를 잰다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이는 고대 시장에서 자라를 저울에 무게를 달아 파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禾자를 더해 곡식의 무게를 재는 稱이 만들어지고 [1]

또 다른 설로, 사람이 물고기 한 마리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이다. 이 글자의 본뜻은 '들다', '들어 올리다'라는 의미에서 ‘무게를 달다’라는 뜻이, 다시 ‘추천하다’, ‘찬미하다’, ‘표명하다, 공언하다’라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이 글자는 또 chèn으로 읽혀서, '들어맞다', '부합하다'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설문해자》에서는 爯은 "동시에 들어올리다.爪를 따르며, 冓를 생략한 것이다(并舉也,从爪,冓省)"라고 되어있고 稱은 "저울질하는 것이다. 禾를 따르고 爯이 소리부이다.(중략)이는 무게를 재는 물건이 모두 곡식류였기 때문이다."(銓也。从禾爯聲。... 故諸程品皆从禾)라 되어 있다.≪한자어원사전≫[2]에서도 이 설을 따른다.

文化

물고기와 자라는 상주시대 최고의 경제가치를 가지는 수산동물로 선진의 고서에서 식상할 정도로 자주 보이며, ≪풍속통≫에서 말하기를 “초목과 어별로써 임금과 백성을 넉넉하게 기른다.”고 되어있다.[3]

또 중국인의 눈에는 자라가 보양식이나 예술품으로 취급되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台塑(포모사, 대만의 재벌 그룹)창립주 王永庆(왕융칭)의 보양방법이 매일 화기삼을 넣고 끓인 갑어탕 한 그릇을 먹는 것이였다고 한다. ≪한서≫에는 또 "등껍질 가장자리부터 길이가 1척2촌 인 큰 거북의 가치는 2160전이다"고 쓰여있다.(길이가 1척 2촌 쯤 되는 특대호의 거북과 큰 자라는 2160전의 가치를 지녔다. 한 왕조때 1척 2촌이면 약 28cm이다)[4]

물고기를 들어 올리는 그림에서 ‘무게를 재다’라는 의미가 나왔다는 것은 앞서 얘기 했듯이 고대 중국인들에게 물고기가 유일한 먹거리이자 부(富)의 상징이었다는 것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나중에 부수(部首)로써 禾(벼 화)가 추가 된 것도 이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대 홍수 시대에는 어패류만이 유일한 식료품이었으나 우임금의 치수(治水) 이후에는 농작의 결과물인 곡식도 많이 먹게 되었다. 그리하여 ‘들어 올려 무게(가치)를 재는’ 것에 물고기 이외에 날곡(禾)도 추가됨으로써 ‘잴 칭’의 의미가 더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稱才】 칭재. 뛰어난 인재. 현명한 인재.

【稱心】 칭심. 마음을 좇아 뜻에 이름.

【稱心如意】 칭심여의. 마음과 뜻이 완전히 들어맞음.

【稱功】 칭공. 공로를 헤아리다. 공적을 비교하다.

【稱兄道弟】 칭형도제. 친구 간에 서로 형과 아우라 칭함. 관계가 친밀한 것을 나타냄.

【聲稱】 성칭. 1. 명예. 명성. 2. 소리 내어 말하다. 공개적으로 표명하다.

【虛稱】 허칭. 1. 사실 확인 없이 찬송하다. 2. 실체 없는 명성. 공명(空名)

주석

  1. 廖文豪, 《漢字樹 4》, 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 p.40
  2.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3. 廖文豪, 《漢字樹 4》, 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 p.38
  4. 廖文豪, 《漢字樹 4》, 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 p.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