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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초서를 해서화 한 글자로 书(書) 为(爲) 东(東)가 있다. 네 번째는 새로 만들어진 글자인데, 해방구에서 쓰인 이른바 ‘해방자’(ex)户(護))와 자형의 일부분을 보존한 최근의 신조자(新造字)가 있다. (ex)灭(滅) 儿(兒))
 
세 번째로,초서를 해서화 한 글자로 书(書) 为(爲) 东(東)가 있다. 네 번째는 새로 만들어진 글자인데, 해방구에서 쓰인 이른바 ‘해방자’(ex)户(護))와 자형의 일부분을 보존한 최근의 신조자(新造字)가 있다. (ex)灭(滅) 儿(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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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에 의한 글자는 또 다섯가지로 분류된다. (錄),号(號)와 같이 어느 한 쪽을 생략한 경우,术(術)처럼 양쪽을 생략한 경우, 际(際),垦(墾)이 보여주듯 한 귀퉁이를 생략한 경우와 안팎을 생략한 开(開) 奋(奮), 그 밖의 경우 丰(豊)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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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에 의한 글자는 또 다섯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로, 글자의 어느 부분을 생략한 형태가 있다. ""어느 한 쪽을 생략한 경우录(錄),号(號)"",  양쪽을 생략한 경우 ""术(術)"",  한 귀퉁이를 생략한 경우 ""际(際),垦(墾)""와 안팎을 생략한 경우 ""开(開) 奋(奮)"", 그 밖의 경우 등이 있다.
두 번째로는, 번체자를 고친 경우인데 洁(潔) 惊(驚)를 예로 들 수 있다. 세 번째로, 회의문자를 고친 경우와 윤곽만을 남겨 상징화한 글자 夺(奪),소리가 같은 글자로 대용하거나 중복 부분을 합치는 문자의 형태도 나타났다. 单(單),風(风),漢(汉),師(师)처럼 부호로 대체되는 글자도 많았다. 이처럼 간체자라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유래와 분류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번체와 간체가 1:1 대응을 하고 있는 것만은 아닌데, 1:2, 1:3으로 대응하는 방식은 번체자와 간체자의 의미가 각각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주석을 보고 잘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문맥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했고, 한자간화 규정의 불분명한 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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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는, 번체자를 고친 '경우인데 洁(潔) 惊(驚)를 예로 들 수 있다. 세 번째로, 회의문자를 고친 경우와 윤곽만을 남겨 상징화한 글자 夺(奪),소리가 같은 글자로 대용하거나 중복 부분을 합치는 문자의 형태도 나타났다. 单(單),風(风),漢(汉),師(师)처럼 부호로 대체되는 글자도 많았다. 이처럼 간체자라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유래와 분류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번체와 간체가 1:1 대응을 하고 있는 것만은 아닌데, 1:2, 1:3으로 대응하는 방식은 번체자와 간체자의 의미가 각각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주석을 보고 잘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문맥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했고, 한자간화 규정의 불분명한 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간화의 긍,부정적 측면==
 
==간화의 긍,부정적 측면==

2016년 12월 25일 (일) 19:14 판

간화(简化/簡化)

한자.jpg

들어가기에 앞서

한자를 쓰는 문화권은 대한민국, 일본, 중국, 대만 등이다. 우리나라와 대만은 번체자, 중국은 간체자, 일본은 약체자를 쓴다. 같은 한자인데, 다른 한자를 쓰는 셈이다. 또한 한자는 표의문자로 문자와 음을 각각 따로 외워야 하는 수고로움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증가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상형문자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형태도 시대에 따라 아주 다양하다. 갑골문(甲骨文), 금문(金文), 전서(篆书),예서(隶书)등의 변천 과정은 문자 개혁의 바람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초서에 이르러서는 아주 간략한 한자의 형태를 취하지만, 이런 형태가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중국 정부의 간화자 정책은 또다른 문화혁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간화 배경

한자(漢字)의 역사는 계속해서 위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 세계 인구의 1/5정도가 한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 사용 범위가 광활하기 때문에 한자로 기록한 문서의 수는 셀 수 없이 많다. 한자는 상형(象形-실제 사물을 거의 그대로 본떠 만듬)·지사(指事-상징적인 부호로 나타냄)·회의(會意-상형+지사=새로운 글자)·형성(形聲-음부와 성부를 조합하여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전주(轉注-원래 있던 글자의 여러 뜻을 유추해 호환)·가차(假借-기존 뜻은 두고 소리나 글자를 차용)의 육서(六書)의 원리에 의해 통용되고 확립되었다. 그리고 문서를 작성하기 위해 일정한 방식으로 배치하고 교열하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 한자는 현대까지 복잡하게 발전했다. 한자는 문화와 역사적 가치를 담은 소중한 문자이지만 글자 수가 많고 이체자(異體字: 소리와 뜻이 같은데 글자 모양만 다른 것)가 많으며 그 형태나 필획이 다양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현대 과학문명에 비추어 볼 때 부적합하다고 여기고, 한자의 번잡함은 교육에도 어려움을 미쳤기에 어떤 형태로든 한자를 간략하게 할 필요가 생겨났다.

간화의 과정

사실상 한자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갑골문,금문에서도 간략한 문자의 형태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한자 간략화의 역사는 상나라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이후로도 간략한 글자체는 계속해서 생겨났다. 본격적으로 간화 작업이 시작된 것은 20세기 초이지만, 이미 청조 말부터 문자 개혁의 움직임이 있었다. 신해혁명 이후 일어난 국어운동, 라틴화 신 문화 운동 등은 한자 개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개혁의 움직임은 신선했지만, 정부의 지지를 받지 못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현대에 들어 1949년 신중국 성립 당시 공업과 농산, 모두 낙후된 상태였기 때문에 모든 부분에서 개혁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1950년에 공화국을 수립한 뒤, 중국문자개혁연구협회를 세우고 한자간략화 문제를 중점적으로 연구하였다. 이로 인해 불붙기 시작한 문자 개혁 운동의 움직임은 1955년 1월 한자간화방안초안을 만들어 일반인들의 의견을 구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후 전문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전국문자개혁회의에서 수정하여 1956년 515개의 간체자와 54개 편방(偏旁)을 간략화한 것으로 이루어진, 한자간화방안(漢字簡化方案)을 공포했다. 간체자는 1959년 7월까지 4차례에 걸쳐 결정되었고, 517자가 정식으로 쓰이게 되었다.한어병음방안의 보급과 함께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지자 이와 동시에 한때 한자의 표음화까지도 고려했던 모택동은 고문자 학자인 곽말약(郭沫若)을 인문학 참모로 가까이 하면서 한자를 살리기로 결심한다. 60년대 문화혁명의 공백기를 거쳤지만 1964년 중국국무원은 간화자총표(簡化字總表)를 발표하였고, 이를 공식문자로 채택하여 강제적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80년대 경제 성장의 궤도에 들어오면서 1986년에는 수정을 거쳐 <간화자총표>를 다시 발표하였다. 한자간화방안과 보통화 보급 문제가 어느 정도 달성되자, 정부는 또다시 새로운 개혁을 시도하기보다는 당분간 한자의 규범화와 사회에 퍼져 있는 문자 훼손을 바로잡는 데에 총력을 다하기로 한다.

한자 개혁은 한자 필획을 줄이는 것과 한자 자수를 줄이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데, 현대 중국에서는 간략화 이후의 한자를 간화자(簡化字)라고 부르고, 이것과 대비되는 간략화 이전의 한자를 번체자(繁體字)라고 부른다. 주유광(周有光)에 따르면 간체자는 기원에 따라서, 형체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나누어 표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간화의 원리

간화는 일정한 원칙과 방법으로 이루어지는데, 크게 기원에 의한 분류, 형체에 의한 분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기원에 의한 분류

첫 번째로,그 기원이 古字에 있는 경우는 云(雲)과 같이 부수[의부]가 더해지기 전의 글자와 尔(爾),礼(禮)같은 이전에 구체자와 함께 사용되었던 글자,後(后)와 같은 이전에 통용되었던 글자로 나눌 수 있다. 두 번째로,기원이 속자(민간에서 오랫동안 쓰던 전통적 간략자)에 있는 경우는 体(體), 声(聲)를 예로 들 수 있다. 세 번째로,초서를 해서화 한 글자로 书(書) 为(爲) 东(東)가 있다. 네 번째는 새로 만들어진 글자인데, 해방구에서 쓰인 이른바 ‘해방자’(ex)户(護))와 자형의 일부분을 보존한 최근의 신조자(新造字)가 있다. (ex)灭(滅) 儿(兒))

☞형체에 의한 분류

생략에 의한 글자는 또 다섯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로, 글자의 어느 부분을 생략한 형태가 있다. ""어느 한 쪽을 생략한 경우录(錄),号(號)"", 양쪽을 생략한 경우 ""术(術)"", 한 귀퉁이를 생략한 경우 ""际(際),垦(墾)""와 안팎을 생략한 경우 ""开(開) 奋(奮)"", 그 밖의 경우 등이 있다. 두 번째로는, 번체자를 고친 '경우인데 洁(潔) 惊(驚)를 예로 들 수 있다. 세 번째로, 회의문자를 고친 경우와 윤곽만을 남겨 상징화한 글자 夺(奪),소리가 같은 글자로 대용하거나 중복 부분을 합치는 문자의 형태도 나타났다. 单(單),風(风),漢(汉),師(师)처럼 부호로 대체되는 글자도 많았다. 이처럼 간체자라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유래와 분류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번체와 간체가 1:1 대응을 하고 있는 것만은 아닌데, 1:2, 1:3으로 대응하는 방식은 번체자와 간체자의 의미가 각각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주석을 보고 잘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문맥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했고, 한자간화 규정의 불분명한 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간화의 긍,부정적 측면

간화의 긍정적인 측면 중 대표적인 것은, 필획 획수의 감소이다. 간화는 획수, 형태의 간단함을 원칙으로 해 읽고, 쓰고, 사용하기 편리하게 했기 때문에 식자(識字)율이 매우 낮았던 시기에 성공적으로 성과를 냈다. 번체자와 간체자를 서로 비교해보면 평균 5.7획이 감소되었다는 총계가 나온다. 둘째, 자형이 분명해졌다. 복잡한 번체보다 간체자가 자형상의 형태가 더 잘 드러났다. 셋째, 일부 간화자의 생성원리를 번체자보다 더 해석하기 쉬워졌다. 넷째, 일부 형성자는 성부(聲符)의 개조로 인해 표음성이 번체보다 확실해졌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 역시 존재했다. 첫째로, 아직도 외울 한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많은 한자의 개수는 사람들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데 큰 문제로 작용했다. 또한 간화 작업 이후 오히려 한자가 더 많아져 사람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둘째, 일부 잘못 간화된 간체자는 사람들의 인식에 혼란을 야기한다. 이는 실제로 쓰는 어휘나 문장에서도 자주 나타나고, 굳이 필획을 줄이지 않아도 되는 글자까지 간화하여 그 체계가 더욱 복잡해지기도 하였다. 셋째, 간화원칙에 모순되는 글자들이 존재하고, 간화 원칙 또한 허점이 많다. 넷째, 동음대체로 통용자가 많아지면서 명확한 설명 없이는 잘 해석할 수 없는 불편함이 생겼다. 다섯째, 단순한 필획의 감소로 일부 자형이 불분명한 글자가 있다. 이런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간화로 인해 얻어지는 효과가 더 크며 간화 정책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적합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맺음말

중국 대륙에서는 간체자가 대세이지만, 번체자의 인식률이 간체자보다 더 뛰어나다는 일부 연구 결과도 있다. 그들의 연구에 의하면 손으로 쓸 때는 간체자가 편하지만 인쇄물을 출판할 때는 번체자가 더 이해하기 쉽다고 한다. 실제로도 역사서나 고전문학 등에서 번체자를 쓰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이렇듯 번체자의 사용변화는 번체자 부활의 가능성을 엿보게 해준다. 간체자와 번체자의 이러한 충돌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문자의 탄생을 위해 중국인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며, 국제 교류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여태까지 제기된 문제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간화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한소임, "文字改革과 簡化字교육 硏究", 京畿大學校 敎育大學院 : 中國語敎育專攻 2006.p7-16.

정민,강민경,박동욱,박수밀『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1』휴머니스트(2011)

오시마 쇼지『한자에 도전한 중국-갑골문에서 간체자까지 한자 형성 공간의 탐색』산처럼(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