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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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위(康有爲)

출생 1858년
광동성 남해현
사망 1927년

생애

강유위는 1858년 중국 광동성 남해현의 한 향신 가문에서 태어났다. 당시 청조는 제1, 2두 차례의 아편전쟁과 같은 외세의 침탈과 태평천국운동의 영향으로 국력이 현저하게 쇠퇴하고, 천하 질서가 위협받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어린 시절 전통적인 학문인 송명이학을 공부했지만 경세치용(經世致用)을 주장했던 그는 20세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와 불교, 육왕심학(陸王心學), 금문경학(今文經學) 등 비주류 전통사상과 더불어 서학까지 섭렵하면서 시대에 부합되는 새로운 대안을 찾고자 하였다. 그리고 1890년대에 이르러 유학의 종교화를 주장하는 {공교운동}(孔敎運動)을 선도했을 뿐 아니라, 중국 최대의 체제 내 개혁운동인 [유신변법운동](維新變法運動)을 이끌었다. 1898년 변법운동이 실패하자 강유위는 망명길에 올랐는데, 1913년 귀국하기까지 14년이라는 시간을 동남아, 인도, 유럽과 북미에서 지내게 되었다. 화교들의 도움으로 유족한 생활을 할 수 있 었던 그에게 망명시절은 세계 각지를 견문하고 사색하게 한 중요한 시기였다. 귀국한 후에도 그는 활발한 정치활동과 저술, 언론활동을 진행하다 1927년 청도에서 세상을 떠났다.

금문경학과 유신, 입헌론

전형적인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강유위는 13세 이후 [주차기](朱次琦)로부터 수학했고 스승으로부터 개혁적 정세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말고문을 익힌 강유위는 수차례 [동시](童試)에 응시했으나 번번이 낙방했고 25세와 31세에는 북경으로 올라가 순천향시에 응시했으나 역시 낙방했다. 거듭 과거에 떨어지면서 팔고문과 구식학문에 회의를 갖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공양학과 서양학문에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강유위가 개혁가로 성장할 수 있는 사상적 계기는 1882년부터 이루어진다. 강유위는 [만국공보]를 통해 서양의 지식을 접하였으며, 전족 등 구습폐지 운동에 가담하는 한편 ‘대동(大同)’이상에 대한 각성과 숙고를 시작한다. 즉, 강유위는 실리공법전서(1884)와 강자내외편(1886)의 저술을 통하여 평등을 공리로 하는 대동의 뜻을 정립한다. 한편 1888년 강유위는 제 1차상서의 상달에 실패하고 광주로 돌아왔을 때 요평(寥平)의 금문학서를 접하고 금문경학의 ‘미언대의’와 ‘통경치용’의 지적 계시를 받았다. 이는 곧 자신의 금문학서인 신학위경고(1891), 공자개제고(1892)의 저술과 풀판으로 이어졌다. 신학위경고는 고문경학의 경향적 근거에 대한 비판이라면 공자개제고는 금문학에 근거한 개혁의 철학을 담은 저작이다. 강의 이두 저작은 당대 관리와 유학자들에 큰 반향을 일르켰고 1894년 여연원(余聯沅)의 탄핵을 받아 이단으로 몰려 신학위경고와 그 판이 소각, 파괴되었다. 강유위는 신학위경고를 통하여 고문경학의 경학적 허위성을 폭로하였다. 먼저, 강유위는 동한(東漢) 이후의 경학은 유흠에 의해 위조된 것으로 ‘위경(僞經)’이라 단정한다.

교육사상

강유위의 교육사상은 애국의 입장에서 나온 교육사상으로서 과거를 바꾸고, 팔문을 폐지하며, 학교를 일으켜 민지(民智)를 열고, 인재를 양성할 것을 주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대동세계의 교육체계를 구상하기도 하여 교육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기도 하였다. 그의 교육사상은 당시와 이후에도 중국 근대교육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교육내용

강유위는 교육을 발전시키는 것이 국가를 발전시키는 기본적인 방법이라고 보았다. 그는 한 국가의 강약은 교육의 발달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기고, 국가가 부장하려면 국민의 지혜 즉, 민지(民智)를 개발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민지의 개발은 교육을통해서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상청제 제2서>에서 재주와 지혜가 있는 백성이 많으면 국가가 강해지고, 그 반대이면 국가는 약해진다고 주장하고, 중국이 괴약한 근본원인을 교육이 발달하지 않은데 있다고 보았다. 강유위는 일본교육개혁의 성취를 상당히 중시하였다. 그래서 그는 일본이 강한 것은 학교가 흥한 것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가 보기에 일본은 많은 인재의 배양을 위하여 한편으로는 외국전문가를 텅하여 가르침을 받고, 한편으로는 많은 학생들을 유학을 보냈다. 그런데 강유위가 보기에 이런 외국전문가를 청하거나 유학을 보내는 것이 매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ㅈ중국이 부강하려면 반드시 외국이 교육을 발전시킨 경험과 인재를 배양한 경험을 학습해야하는데, 그러려면 외국인 교사를 초빙하거나, 유학을 보내야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강유위는 중국을 부강시켜 나라를 구하려면 경제와 교육ㅇ을 발전시켜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과거제도로 배출되어 나오는 인재로는 국가의 발전을 이루기 어려운 것으로 보았다. 그는 과거를 통해서 선발되어 나오는 사람은 대부분 지식이 결핍되고,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 나오지 않아 쓸모가 없다고 여겼다. 따라서 그는 [팔사취사제도]는 그 해가 매우 크므로 폐지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과거제를 비판하는 것과 동시에 강유위는 적극적으로 학교를 일으킬 것을 제창하였다. [변법유신]의 인재를 배양해 나라를 위기로부터 구하기 위하여 강유위는 여러 차례 청정부에 학교설립, 서양의 학교제도와 과학기술의 수입 등을 호소하였다. 1898년 강유위는 청의 [광서제]를 향하여 ‘청개학교절’을 올리고 건의하였다. 이는 서양의 학교제도를 받아들여 중국에 새로운 학교제도를 세우려 한 것이다. 한편, 강유위는 [대동서]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은 강유위가 구상하는 하나의 대동사회의 이상을 구체화하여 기술해 놓은 것이다. 이 대동사회에서는 국가, 계급, 가정이 없는 전 세계의 인류가 평등한 사회이다. 그는 이상적인 대동사회의 교육제도를 설계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그는 학교를 4단계로 구분하여 제시하였다. 즉 인본원, 육영원, 소학원, 중학원, 대학원등이 그것이다. 강유위는 교육내용 및 방법과 관련해서도 많은 새로운 주장들을 내어놓았다. 교육내용과 관련해서는 [서학]을 중요내용으로 제시한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그는 <장홍학기>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할 내용으로 ‘학강’, ‘학과’, ‘과의학과’의 3개 방면을 내어놓았다.

교육방법

그는 학생들이 자유로이 자기의 사상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방법을 주장하였고, 상호계발, 직관교학 등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는 당시 봉건사회 학교의 기계적인 암기수업을 반대하고, 교사가 학생에대해 시행하는 잔혹한 체벌에 반대하였다. 이러한 교학방법은 현대의 교육심리학과 학습심리학의 원리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여성교육

그는 일찍이 여자의 전목은 건강에 해롭다고 주장하면서 전족을 없앨 것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장유위의 여성해방사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여자교육문제에 대해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수천년애의 남존여비의 관념을 타파할 것을 주장하면서 여학을 제창하였다. 그는 “중국에는 2백조의 여자가 있는데 한학교도 여자를 가르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 그 반이 된다.”고 하였다. 후에 그는 <대동서>에서 진일보해서 남녀평등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는 여자도 독립권이있고, 일체가 남자와 동등하다고 주장하였다. 강유위의 이런 사상이 잘 표출괴어 너나타난 것이 교사문제와 관련하여 여자의 지위를 중시한 경우이다. 그는 “육영원”과 “소학원”의 교사는 전부 여자교사로 채워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주장한 이유는 유아 혹은 초등 간계의 교육에서는 여자의 특서이 남자보다 아동의 교육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범교육

그는 사범학교는 고학의 뿌리라고 여겼다. 그는 사범학교를 잘 운영해서 좋은 교사가 많이 배출되어 나와야 소학을 보급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강유위는 서방국가의 실업학교의 발달을 보고, 실업교육의 역할을 찬양하였다. 그가 보기에 서방에는 수사학당, 철로학당, 전보학당 등 실업 발달에 필요한 학문 학교를 설치하여 가르치고 있었다. 따라서 강유위는 중국의 현실을 고려한 실업학교의 설치를 주장하였다.

참고자료

한국교육개발원. (2010). KD98-25-01-01 근대 중국 유신운동파의 교육적 관심사와 특징 분석 - 康有爲, 渠啓超, 嚴復의 교육사상을 중심으로. [KEDI] 한국교육, (), 0-0.
金俊. (2017). 근대 동아시아 유가(儒家) 지식인의 이상향과 공동체 인식. 아세아연구, 60(3), 3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