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자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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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바람까마귀 (토론 | 기여)님의 2017년 6월 27일 (화) 10:0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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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자추는 19년 동안 진문공과 같이 유랑한 충신이었다. 진문공이 혜공에게 쫓겨 위나라에 갔을 때, 그는 여러 날 먹지 못해 허덕이고 있었다. 위나라를 떠나 오록이라는 지방에 있을 때는 급기야 농부에게 음식을 달라고 구걸했지만, 흙 한 그릇밖에 얻지 못했다. 그래서 개자추는 진문공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허벅지 살을 잘라 그에게 먹였다. 마침내 진문공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자 그는 효심이 지극하여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다. 진문공은 힘든 시절을 함께한 이들에게 공로를 인정하고 상을 내리려 하였는데, 개자추 한 사람만 보이지 않았다. 개자추가 노모를 봉양하러 고향이 있는지 몰랐던 그는, 개자추를 아무리 수소문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개자추를 찾는 사람에게 상을 내리겠다는 방을 각지에 붙이고, 그 방이 개자추의 집에도 붙게 된다. 개자추는 자신의 노모에게 돌아가지 않을 뜻을 밝힌다.

제가 문공을 따라다닌 것은 그가 진나라를 구할 수 있는 덕망을 지녀 도와야겠다는 자발심에서 나온 행동이었지 논공을 바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 박인수, 춘추 전국의 패자와 책사들

개자추는 오로지 진나라의 안위를 바라고, 논공행상을 바라지 않은 애국심 있고 청렴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그의 뜻을 이해하여 아무도 몰래 깊이 면산에 가서 숨게 된다. 평소 개자추와 가까이 지냈던 행장은 개자추가 어디에 거주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집을 찾아갔지만 그의 행적이 또 묘연해졌음을 알았다. 행장은 마을 사람들에게 수소문하여 개자추가 면산에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를 진문공에게 알렸다. 진문공은 면산을 샅샅이 뒤졌는데, 산이 너무 깊어 개자추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진문공은 개자추의 효성이 깊다는 품성을 알고, 혹시 산에 불을 지르면 그의 노모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불을 지르고 진문공은 사흘 밤낮을 기다린다. 하지만 모자는 산에서 나오지 않았고, 사람을 시켜 찾아보자 모자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죽어있었다. 진문공은 개자추가 죽은 산의 이름을 개산으로 바꾸고 사당을 지어서 그의 명복을 빌었다. 그는 불에 타죽은 개자축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날을 전후하여 불을 사용하지 않은 음식을 3일동안 먹도록 하였다. 이는 중국 한식의 유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