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대한 결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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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1기 6중전회에서 통과된 결의. [[화궈펑]]의 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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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1기 6중전회에서 통과된 결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당의 공식적 평가와 함께 작성 과정에서 [[화궈펑]]의 퇴진이 결정되었다. 이 문건에는 4천여 명의 당 간부와 이론가들이 동원됐으며 만장일치로 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 문건의 완성을 위해 15개월의 기간이 소요됐다고 알려졌으며 덩샤오핑도 이에 심혈을 기울였다. 덩샤오핑은 마오의 실수나 잘못은 비판하되 혁명적 합법성과 국가 정통성을 위해서 마오의 공헌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줘야 된다고 강조했다. 결의는 마오의 업적을 높이 샀지만 그의 마지막 통치 20년의 잘못에 대해서는 비판했다. 여기서 문화대혁명은 "건국 이래 당·국가·인민에게 가장 큰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준 10년에 걸친 재난으로 평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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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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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개혁개방이 아닌 덩샤오핑 체제」(『덩샤오핑 시대의 탄생』, 안치영, 창비), 김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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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2』, 모리스 마이스너

2018년 8월 10일 (금) 18:52 판

1981년 11기 6중전회에서 통과된 결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당의 공식적 평가와 함께 작성 과정에서 화궈펑의 퇴진이 결정되었다. 이 문건에는 4천여 명의 당 간부와 이론가들이 동원됐으며 만장일치로 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 문건의 완성을 위해 15개월의 기간이 소요됐다고 알려졌으며 덩샤오핑도 이에 심혈을 기울였다. 덩샤오핑은 마오의 실수나 잘못은 비판하되 혁명적 합법성과 국가 정통성을 위해서 마오의 공헌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줘야 된다고 강조했다. 결의는 마오의 업적을 높이 샀지만 그의 마지막 통치 20년의 잘못에 대해서는 비판했다. 여기서 문화대혁명은 "건국 이래 당·국가·인민에게 가장 큰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준 10년에 걸친 재난으로 평가되었다."

참고자료

(서평)「개혁개방이 아닌 덩샤오핑 체제」(『덩샤오핑 시대의 탄생』, 안치영, 창비), 김도경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2』, 모리스 마이스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