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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6일 (화) 19:11 기준 최신판

구천(句踐)

국적 (越)나라
본관 (越)나라
생존 시대 춘추시대

개요

구천(句踐, ? ~ 기원전 464년)은 춘추전국시대 (越)나라의 군주이다. 책사인 범려(范蠡)의 도움으로 (吳)나라를 멸망시켰으며, 춘추오패 중 한사람이다. 기원전 497년, 윤상이 사망하자 월나라의 군주로 즉위하였으며, 기원전 464년 사망하였다.

생애

오나라 왕 합려를 격퇴하다.

기원전 496년 왕 윤상이 사망하자, 윤상의 아들인 구천(句踐)이 (越)나라의 왕위를 이어받는다. 혼란을 틈타 오왕인 합려(闔閭)가 (越)나라를 공격하자 (越)나라 군은 장정들을 (吳)나라 군 앞으로 보내 집단 자살을 하게 하는 계책을 통해 (吳)나라의 전열을 흐트러뜨렸다. 이 틈을 타 월나라의 영고부가 합려를 공격하였다. 합려는 결국 부상으로 인해 사망하였고 부차에게 월나라를 잊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오나라 왕 부차의 공격을 받고 궤멸직전에 몰리다.

합려에 이어 나라의 왕이 된 부차(夫差)가 점차 세력을 키워나가자 구천은 나라 선제공격을 계획한다. 책사인 범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감행한 구천은 오자서(伍子胥)의 계획에 휘말려 대패한다. 구천은 회계산까지 후퇴하였으나 결국 범려의 권유에 따라 부차에게 투항한다. 오자서부차에게 구천의 투항을 받아들이지 말고 죽일 것을 간언하였으나, 범려의 뇌물을 받은 백비에게 설득당해 구천의 투항을 받아들인다.

복수의 칼을 갈다.

오왕 부차에게 여덟 명의 여인을 보내고 나라를 나라의 속국으로 바친 구천은 복수의 칼을 갈기 시작한다. 부차가 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구천은 부차의 변을 맛보고는 부차의 병이 나아질 것임을 예측하였다. 이에 감동을 받은 부차는 구천을 나라로 돌려보낼 마음을 품게 된다. 구천은 나라로 돌아와 절치부심하며 국력을 키우기 시작한다. 오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 었던 오자서가 백비와의 권력 투쟁 중에 사망하는 상황 속에서 오왕 부차회맹으로 인해 자리를 비우자 구천은 이를 틈타 나라를 공격하였다. 성이 포위된 상황 속에서 2년 여간 버티던 부차는 결국 자결하였다. 이렇게 하여 나라와 나라의 기나긴 쟁투가 끝을 맺었다.

그 후

월나라의 일등공신 범려나라가 멸망하자 사퇴를 청하였다. 구천이 만류하였으나, 범려는 이를 거절하고 오호에 작은 배를 띄웠는데, 그 후로 아무도 그의 종적을 알 수 없었다. 범려는 또 다른 공신이었던 문종(文種)에게 “구천은 같이 환난을 견딜수는 있으나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느는 없는 사람이다"라며 떠나자고 권유하였으나 문종은 끝내 나라에 남았다. 그 후 어떤 신하가 구천에게 문종이 난을 일으키려 한다고 참소하여 문종은 죽임을 당하게 된다. 구천의 사후 나라는 쇠퇴하였으며 결국 초나라에게 멸망당한다.

관련 사자성어

와신상담(臥薪嘗膽) - "장작 위에 누워서 쓰디쓴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구천이 곰의 쓸개를 핥으면서 복수를 다짐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
오월동주(吳越同舟) -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탄다."는 뜻으로 사이가 매우 나쁜 사람이 같이 있다는 뜻과 어려운 상황에서는 원수끼리도 협력한다는 두가지 뜻을 지닌다.

참고 자료

공원국, 『춘추전국이야기 5』, 위즈덤하우스, 2014
사마천, 『史記列傳』, 김원중 역, 민음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