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공,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책임질 그들에 대하여

ChineseWiki
Jinihyun42 (토론 | 기여)님의 2016년 6월 26일 (일) 02:51 판 (새 문서: 도시의 번영은 우리들의 공로인데 우리의 발걸음은 도리어 (이곳에) 머물 수 없네. 2016 올해 중국의 양회에서 농민공의 대표가 한 말이다....)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도시의 번영은 우리들의 공로인데 우리의 발걸음은 도리어 (이곳에) 머물 수 없네. 2016 올해 중국의 양회에서 농민공의 대표가 한 말이다. 그들의 생활을 참담하게 언급한 것 같다.‘ 중국 인민 공화국 ’. 국가의 정식명칭에도 포함할 만큼, 중국은 인민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다. 인민, 그 중에서도 노동자는 마오쩌둥에의해 개국된 시절부터 지금의 강대한 중국까지 중요한 구성원으로 여겨지고있다. 50년대 말 농촌과 도시가 완전히 분리되던 시절과 달리 개혁개방을 통해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주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기회에 따라 농촌을 떠난 사람들은 도시에서 제조업, 단순노동, 3D 업종에 종사하는 빈곤층 노동자가 되었는데 이들을 농민공이라고 한다. 도시에 상주하는 농민공의 규모는 중국 인구의 18%정도를 차지하는 거대한 집단이다. 그러나 최근 농민공들의 움직임이 심상치않다. 그들은 자신들의 임금체불에 관해 거친 시위를 이어가고 있으며, 농민공으로써 일하다가 한 순간에 장애우가 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폭탄이라는 사건을 벌이고, 농민공의 아이들도 부모님이 돈을벌려고 떠나 홀로 남은 생활을 비관하여 농약 자살을 저지르기까지 한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사회적 물의일까? 그들이 중국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기위해 가장 극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호적을 함부러 옮길 수 없는 정책때문에 개혁개방 전까지 거주의 이전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 후에 도시로의 유입은 자유로워지자 농촌의 많은 인구는 거주지는 옮기지 않은 채 도시로 일자리를 찾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의 문명화된 환경과 세련된 사람들, 더 나은 삶을 동경하여 농촌을 떠나면서 좋은 환경, 더 나은 일자리에서 일확천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였으며, 어디서도 도시의 사람들과 동등한 대우를 못받았으며 농민공이라는 새로운 직위를 가졌을 뿐이다. 중국은 다른 국가들의 개발 단계와 비슷하게 급속한 경제성장을 위해서 대도시의 인프라 구축과 봉제, 건축, 단순제조업과 같은 산업을 기반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개발 도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단계를 거쳤을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 어디에서나 겪었던 발전 과정인데, 중국은 이때 필요한 노동력을 온전히 농민공으로부터 이끌어왔다. 중국은 인구와 노동력이 그들의 경쟁력이였던 만큼 농민공의 역할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도시와 농민의 격차가 커지는 만큼 농민공에 대한 차별도 커져갔다. 농민공의 임금체불, 직업환경의 법적보장, 도농분리의 취업관리체제, 사회보장 보험 및 보험의 범위, 공공서비스 제공까지 삶에 관련한 모든 것에 대해서 차별을 느꼈고 그 차별을 견뎌내야만 일을 할 수 있었다. 사회의 인간평등, 복지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면서 이러한 의식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변화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농민공에 대한 차별적인 방안이나 처우개선에 관한 논의가 중국 최고의 정책회의인 양회에서 매년 주요안건으로 상정했으며 양회의 국민 대표로써 농민공을 일정부분 의무포함 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인 방안만으로는 농민공을 위한다고 할 수 없다. 우선 농민공을 왜 중요시해야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어떤 나라든 나라가 부강하기 위해서는 자본축적을 하는데, 자본을 대폭적으로 늘리는데 있어서 자본의 규모 정도만을 생각한다. 한국에서 고도성장을위해 경제개발을 일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개발했으며, 일본에서 엔화급등의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발전만을 중시한 것 처럼, 중국은 해안지역을 따라 발전한 대도시에 농민공을 투입하여 그 도시의 경제로 지금의 중국이 되기까지의 발판을 만들었다. 농촌보다 도시에 투자하고 차이가 점차 커지는 것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중국은 농민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 중요도의 정도가 다르다. 국제 무역 수출구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까지도 중국의 쌀이나, 1차 원재료의 수출 비중이 총 무역 구조에서 다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농민공이 주로 종사하는 단순 제조업의 정도 또한 중국은 세계어느나라보다 높은 순위를 보인다. 농민공이 한 번 파업을 하면 중국 인민당의 경제 전체가 흔들리기 까지한다. 즉, 중국은 농민공이 이룩한 나라이며, 국가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나, 변혁을 시도할 때 농민공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공에 대한 관심은 중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며 다른 나라는 현대화와 경제 발전을 거쳐 점점 도시화의 흐름이 자연스러운 반면 중국은 아직까지도 농촌인 지역이 많으며 농민공도 많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에 관심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농민공을 중요하게 생각하여야하는 이유는 지난날의 농민공이 끝난것이 아니라 지금은 '신농민공'으로 대두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신농민공은 농민공이지만 그 자녀세대나 지금 농촌에 남아있는 젊은 청년들을 말한다. ‘신농민공’의 위치는 중국에서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의 부양세대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경제소득발생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농민공이 신체적으로 쇠약해진 부분의 업종은 지금의 ‘신농민공’이 대체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과거의 세대는 언젠가 져버릴 수 밖에 없으며 미래를 대신할 일꾼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러한 농민공의 모습이 달라진 것 이외에도 그들의 성향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점 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현재 초과도화된 생산제도를 해소하기 위해서 석탄과 철강 등의 분야에서 엄청난 수를 해고하여 감원을 하고 있다. 이에 노동자는 파업으로 맞서는데 예전의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보다 조직적으로 전개되어 중국 공산당에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파업, 시위에 관한 주역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바로 ‘신세대 농민공’ 으로 불리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농민공들은 예전의 세대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의 불합리한 권리를 반박하고 있다. 정부가 농민공도 똑같이 자신들의 인민이라고 말했다면 똑같이 대우받아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 정부의 행동은 그들의 의견표출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격해지면서 폭탄테러까지 나타난 것이며, 더이상 국가를 위해 희생한 자신들의 행동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보다, 자신들도 마땅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주적인 농민공들의 변화에 따라 정부는 2014년 처음 양회의 신노동자 대표로 명명되는 농민공 대표를 참석시켰다. 언론과 세상이 농민공의 달라진 입지를 눈여겨봤으며 전국에 이 소식이 전파되면서 농민공들도 점차 그들의 당연한 권리에 눈뜨기 시작하였다. 농민, 노동자가 가장 주축인 국가에서 그들의 협동조합이 자유롭게 운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단지 자신의 마을이, 자신의 도시가, 자신의 국가가 나의 노동력으로 발전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보람찬 일이며 이러한 큰 뜻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가 자신들에게 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불합리는 알지만 제대로 항의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적극적으로 피력하며, 파업이나 정치권 행사에도 참여하는 등 그 외침의 정도가 대단해졌다. 그래서 정부 또한 매년 농민공의 관련 안건을 중요안건에 상정하여 해결책을 찾아내려고 한다. 올해 중국 정부는 신노동자와 관련한 대안을 내놓기는 했지만 지금 중국은 3억명이 넘는 농민공, 신노동자들이 여전희 부유하고 있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부작용도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농촌의 공동화 현상이나 노동자들의 비상사태로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정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고 농민공들과 대화하며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문제는 개선의 여지가 충분히 필요하다고 본다. 그에 따라 어떠한 위치에서 농민공에대해 생각해봐야하는지 양쪽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우선 농민공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개선이 중요하다. 농민공은 중국을 위해 존재해왔던 것이 아니다. 중국이 농민공의 도움을 통해 인력을 지원받아 경제를 급속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던 것이다 .그들도 그들이 한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마땅한 소득과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농민공’ 은 자신들의 복지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며 똑같은 인민으로서 대우하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복지적 측면의 발전이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은 당장 경제개발을 할 수 있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걸림돌을 하나 만드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발전에서 지금은 사회 내부의 안정과 단합을 한 번 쯤 살펴볼 때 이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은 제조업을 감축시켜 농민공의 포화상태를 조금 임시방편적으로 해결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지금의 단순한 해결이 나중의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밖에 없다. 부정적영향의 파장이 더 커지고 말것이다. 제조업은 국가의 총생산에서도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다. 100만명 가량의 노동자가 제조업 산업 감축을 위해 나간다면 해고되는 것은 그 규모가 너무나 크고, 그 인구수만큼의 제조업 현장을 없애는 것은 더 큰 타격으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의 농민공 문제는 중국사회가 달라졌다는 것 뿐만 아니라 농민공도 달라 졌음을 알아야만 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자신들의 처지나 권리가 나아진점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들의 분노가 점점 나오고 있으며 그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언제까지 못본척 안들리는 척 하지 말고 더 나은 중국의 모습에 맞게 농민공에 관한 문제를 심리적 이해와함께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