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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than (토론 | 기여)님의 2016년 5월 14일 (토) 01:3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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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唐,618~907)

나라를 멸망시킨 당(唐)은 현무문의 정변으로 권력을 장악한 2대 황제 당 태종(이세민) 때의 '정관의 치'와 측천무후 시대와 위씨 황후 치세를 극복해 낸 당 현종 때의 '개원의 치'로써 중국 역사상 매우 뚜렷한 정치사회적 제도의 틀을 완성한다. 그러나 양귀비의 득세로 말미암은 안록산의 난으로부터 비롯한 갖가지 내전에 시달리다 약 300년 만에 나라의 문을 닫게 된다.


당의 건립

수말의 농민 대기의수 왕조를 전복시켰지만 승리의 결과는 태원 유수 이연에게 돌아갔다. 이연은 관롱 지주집단의 대귀족으로, 조부였던 이호는 서위 팔주국의 1인이자 북주의 개국공신이기도 하여 사후 당국공으로 추봉되었었다. 이연은 수의 붕괴가 반전될 수 없음을 깨닫고, 그의 아들인 이세민과 함께 병력을 모아 반수 거병을 모의하였다. 이때 전국의 정치,군사의 형세는 이연의 거병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617년 5월 이연은 드디어 돌궐과 유무주의 태원 침공을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징집하여 부유수 왕위와 고군아를 살해하고 진양에서 반수의 가치를 들었다. 이후 이연은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장안을 함락시키고 양제의 손자인 대왕 유를 황제로 추대한 후, 양제는 태상황에 추존하였고 스스로는 대승상,당왕의 직위를 갖고서 군정 대권을 장악한 후 618년에 수 양제를 시해한 뒤에 이연은 양유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당조를 건립하고 무덕이라 개원하니 그를 당 고조라 칭한다.

통일사업

그 후 법령을 간소화 하는 등 민심을 수습하는 데 노력하였다. 군사상으로는 각지의 할거 세력에 대하여 원교근공의 책략에 입각하여 전국 통일의 사업을 주도해 나갔다. 623년에 하북으로 진군하여 두건덕의 잔존 부대인 유흑달을 소멸시키고 하북 지역을 확보한 뒤 624년 강회로 진군한다. 628년 돌궐에 의지하던 양사도가 부하에게 살해되어 당은 전국통일을 하게된다.

역사

당나라 초반기

역사적으로 바라볼 때 당나라에 많은 황제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주요하게 알아봐야할 황제들이 있다. 당나라 역사를 바라볼 때 당나라 초반기에 우리가 알아보아야 할 황제들이 많다. 당나라 초반기를 넘어 중후반기로 갈수록 초반기 만큼 크게 비중있는 황제들이 줄어간다. 중후반기는 엄청난 혼란의 시기로 여러 곳 그리고 빈번하게 봉기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초당시기의 알아보아야할 주요 황제들을 정해보았다.

당나라 중후반기

나라가 망조에 들어 후대에 가면 갈수록 환관들의 세력이 강해져 환관들에 의해 정책이 좌지우지되고, 많은 황제들이 환관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또한 농민반란이 대규모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잃어 절도사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고, 이를 틈타 북방 민족들의 침략이 본격화된다. 매우 어려운 혼란한 시기를 대제국 당은 150년을 버틴다.

안사의 난을 계기로 당조의 율령제는 확연히 변모한다. 토지제도인 균전제와 수취제도인 조용조는 양세법으로 통합된다. 양세법은 토지 소유에 대한 국가의 제한을 없앤 제도로서 이후 국가 재정의 제도적 기반이 된다.

사회와 경제상으로도 수많은 변화를 낳았다. 새로운 품종과 농기구의 도입, 새로운 농법의 발전, 적극적인 개간과 간척으로 농업생간력이 대대적으로 발전했다. 특히 강남지방의 방전은 눈부실 정도여서 경제의 중심지가 화북에서 강남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상공업에 대한 국가의 규제와 간섭이 완화되어 상업이 발달하고, 운하망을 중심으로 교통의 요지에 대도시가 발전했으며 농촌에서도 시장이 등장했다.

  • 번진체제의 성립 - 안사의 난 과정에서 반란군의 세력 확대 방지차원에서 이 체제가 성립되었다. 각지에 절도사를 두고 다수의 병력을 지휘토록 했다. 번진을 관장하는 절도사는 군정권만을 장악했던 것과 달리 보통 관찰사와 주의 자사를 겸임했으므로 민정권과 재정권까지 장악한 거대한 지방세력이 되었다. 실질적으로 최고의 지방행정 단위가 되었다.

정치

당조는 수왕조에서 많은 각종의 정치체제를 이어받았고, 대외정책에서는 적극적인 책봉정책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문화권을 수립했다.수왕조에서 실시된 여러 제도들이 당나라까지 이어져 통일제국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적 기반의 역할을 했다.

당대 관제의 중심은 3성6부제이다. 3성은 중서성, 문하성, 상서성을 말하고 6부는 이부, 호부, 예부, 병부, 형부, 공부를 말한다. 중서성에서 조칙 및 법안을 기초하면 문하성에서 그것을 심의한 후에 상서성에서 실시했다. 그리고 상서성에는 6부가 소속되어 업무를 담당했다.

지방행정을 위해서는 구도와 변경 등 특수한 지역에 부가 설치되었고, 일반적으로는 주와 그 아래에 현을 두었다. 이 제도가 바로 주현제이다.

관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도로서는 수대와 마찬가지로 당대에도 과거제가 시행되었다. 토지제도는 균전제, 조세제도는 조용조, 군사제도는 부병제가 실시되었다.

문화

과거제에서는 유교에 관련된 서적에 대한 지식을 테스트했다. 그래서 유학과 문학이 크게 발달하였는데 당나라 때에는 훈고학이라는 것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로 인해 사상의 획일화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한편 남북으로 갈라져 있던 문화를 융합하고, 귀족 사회를 배경으로 성숙한 당문화는 외형의 아름다움과 귀족 취미로 넘쳤고 다양한 외래 문물의 수용으로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문학의 경우 귀족 중심의 시가 발달하였는데 이백두보가 대표적인 시인이다.


역대 황제별 주요 사건

당나라 연대표
제호(帝號) 이름 재위기간 주요사건
고조 이연 618~626년 626년
현무문에서의 정변
태종 이세민 626~649년 626년~649년
이 시기를 역사상 '정관지치'라고 함
627년~645년
현장이 인도로 감
629년
송짠감보가 토번을 통일
630년
당나라 군대가 동돌궐 군대를 격파함
641년
문성공주가 서장으로 감
고종 이치 649~683년 653년
진석정 봉기
657년
당나라 군대가 서돌궐을 격파
683년
이치가 병으로 죽고 무측천이 정사를 처리하게 됨
중종 이현 683년
예종 이단 684년
무후 무측천 684~705년 690년
무측천이 황제로 자칭하고 국호를 주라 고침
중종 이현 705~710년
예종 이단 710~712년
현종 이융기 712~755년 713~741년
이 시기를 역사상 '개원지치'라고 함
743~753년
감진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 감
숙종 이형 756~762년
대종 이예 762~779년 안사의 난
덕종 이괄 779~805년
순종 이송 805년
현종 이순 805~820년
목종 이항 820~824년
경종 이담 824~826년
문종 이양 826~840년
무종 이염 840~846년
선종 이침 846~859년 구보의 난
의종 이최 859~873년
희종 이현 873~888년 황소의 난
소종 이엽 888~904년
애제 이축 904~907년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