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의 한인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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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hujiezh (토론 | 기여)님의 2016년 6월 21일 (화) 12:47 판 (원대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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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 문학의 배경

한족 지식인의 위치

몽고족이 중원을 지배하게 되면서 송대의 한족 지식인들은 차별 대우를 받게 되었고 관직에 나아가기도 어려워졌다. 예를 들어, 유생은 10등급으로 나눈 백성들 중에 9등급에 속하는 백성으로 가장 천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전에 중국이 발전시켜왔던 정통문학은 원의 지배자들에게 순종하는 한족 지식인들에 의해 유지되었다. 또한 생계를 위해서 글을 쓰는 문인들이 출현하였고 이들은 주로 서민들을 위한 희곡을 창작하여 잡극을 발전시켰다. 한족 문인들은 대중적인 문학을 창작하면서도 작품 속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유교적 가치관을 드러냈다.

대중문화의 발달

무력으로 중원을 정복한 원나라는 자신들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한족들에게 강요하였다. 그 결과, 송 말엽에 크게 발달하였던 중원 문화와 이민족의 문화가 섞이면서 새로운 방향의 중국 문화가 탄생하였다. 특히 몽고족의 춤과 노래가 중원의 서민 문화와 섞이면서 소설과 희곡이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문인 사대부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희곡과 소설을 창작하였다. 이 시기 극소수의 지배층 문화가 아닌 대다수의 대중 문화가 발달하였다는 점은 매우 의의가 있다.

새로운 양식의 등장

원대에는 금나라의 노래인 곡이 새로운 문학으로 발전하였다. 곡은 송나라의 송사가 여진족의 가락으로 개량된 노래였는데, 여기에 몽고족의 가락이 보태어진 것이다. 즉, 사(詞)는 한족의 가락이지만 원대의 곡은 북방민족의 색채가 더 짙었다. 이 새로운 형식의 문학을 원곡이라고 부르며 현재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산곡과 잡극이라는 두 가지 형식의 문학 뿐이다.

원곡의 종류

산곡

산곡은 원대에 등장한 새로운 형식의 시이다. 청곡(淸曲)이라고도 불리며 민간에 유행하던 노래에서 발달한 것이다. 그러나 정통적인 힌족의 민간 가요가 아니라, 몽고족의 음악에 의하여 변질된 노래 가사였다. 짧은 곡인 소령(小令)과 두세 개의 소령을 이어 만든 대과곡(帶過曲), 같은 궁조에 속하는 여러 개의 소령들을 모아 만든 대령(大令)이 있다. 대령은 투수(套數) 또는 투곡(套曲)이라고도 불리며, 한 투수에 속하는 노래들은 모두 같은 운으로 압운하고 미성(尾聲)으로 곡의 끝을 나타낸다는 규칙이 있다.

전기의 산곡

전기의 주요 작가로는 관한경. 백박, 마치원 등이 있다. 이들은 거의 모두가 북방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북방의 자유로운 기질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난다.

후기의 산곡

후기에 와서 산곡이라는 새로운 형식이 안정적으로 정착하였다. 따라서 정통적인 문인들 역시 산곡의 창작활동에 많이 참여였다. 이들이 참여하면서 산곡의 질박한 표현들은 세련된 표현으로 다듬어졌고 형식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 과정에서 산곡이 새로운 시체로서 인정받고 중국 문학의 정통성을 이어받게 되었다.주요 작가로는 노지, 요수, 교길, 장가구, 관운석 등이 있다.

잡극

잡극은 원대에 나타난 새로운 형식의 희곡이다. 형식적인 측면을 보면 한 작품이 4절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1절은 한 개의 대령을 의미한다. 4절 이외에는 앞부분에 붙어서 극을 미리 설명하거나, 절과 절 사이에서 이야기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설자(楔子)가 존재한다. 다음으로 내용적인 측면을 보면 창(唱)과 과(科)와 백(白)이라는 삼요소로 구성된다. 창은 배우들의 노래고 과는 동작, 백은 말과 대화를 의미한다. 잡극의 등장인물은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데, 그 중 남자 주인공은 정말(正末), 여자 주인공은 정단(正旦)이라고 부르며 한 사람이 노래하는 것이 원칙이다.

전기의 잡극

전기의 잡극은 산곡과 마찬가지로 북방 문학의 영향으로, 문장이 수수하며 현실의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같은 전기의 작품이라도 어떤 특징이 더 강하게 드러내는가에 따라 관한경파왕실보파로 나눌 수 있다.

후기의 잡극

원나라 후기로 들어오면서 몽고의 세력이 남쪽으로 확장되어 남방이 중심이 되었는데, 잡극은 북방의 음악을 사용하는 희극이기 때문에, 남방 사람들의 기질에 잘 맞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우아한 문장을 주로 사용했던 왕실보파의 잡극이 주류를 차지했고, 잡극의 대중성은 점차 상실되었다. 주요 작가로는 정광조, 교길, 궁천정, 진간부 등이 있다.

원곡의 특징

작자 미상

원대에는 지위를 박탈당하고 설 자리를 잃은 문인들이나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답답함과 분노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산곡이나 잡극을 지었기 때문에 작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작품이 많다. 또한 작가의 이름이 전해진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자세한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고 이름만 남아있을 뿐이다.

전기와 후기의 구분

원나라는 송을 완전히 멸망시킨 1279년을 경계로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두 시기의 특징이 각각 뚜렷한 편이다. 전기는 북방의 호탕한 성격을 드러내는 작품이 많다. 이 시기의 작가들 역시 북방 사람들이 주류가 되었다. 문장의 표현이 소박하고 솔직하며, 현실적인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반면, 후기는 남방 의 작가들이 주로 활동했으며 아름답게 잘 다듬어진 작품들이 많다. 따라서 문장 표현이 세련되고 우아하지만, 전기의 문장만큼 생기있고 자연스럽지는 않다. 또한 점점 형식화되면서 아름답게 가공하기 좋은 산곡만을 중시하게 되어, 잡극은 쇠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