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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동파문자섬네일2.PNG|300픽셀|섬네일|오른쪽|[[동파문자]]]]중국 운남성 서북부 리장지역의 나시(Naxi,納西)족들이 사용하는 동파문자(东巴文字) 혹은 납서문자(納西文字)라 불리는 상형문자는 현재까지 그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사용되고 있다. 이 동파문은 19세기 말엽에 세상에 알려졌으며 모든 자형을 상형의 방법으로 써낸 문자이다. 나시족이 믿는 동파문의 무사(巫師)들이 그들의 경전을 쓰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동파문자라고 불리며, 이 동파문을 한어로 음역하여 ‘森究魯究’하여 ‘斯究魯究’라고 하는데, <ref>김태완(2012),《갑골문과 중국의 상형문자》, 32쪽</ref>원래의 의미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저 중국인들의 발음에 의해 한자로 옮긴 ‘가차’의 음에 불과한 음역자이다.<ref>김태완(2015),《이미지와 중국의 상형문자》, 243쪽</ref> 원래 동파문의 발음은 sər33 ʨə55 lɤ33 ʨə55(우리말로는 ‘써ㄹ쳐러쳐’로 발음됨)이며, 동파문으로는 [[파일:동파문1.jpg|110픽셀]] 또는 [[파일:동파문2.jpg|110픽셀]]로 표기한다. <ref>偰玲華, "納西東巴文字에 담겨진 納西族의 感性",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인문학국사업단(2010)</ref> 직역하면 ‘나무/흔적/돌/흔적’ 또는 ‘나무/홍역 같은 흔적 혹은 반점/돌/반점’으로서 ‘나무를 그리고 돌을 그리다’혹은 ‘흔적, 반점, 돌, 반점’으로서 ‘보이는 대로 그 흔적을 그린다’는 의미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즉, 나무나 돌에 새긴 부호로서, 나무에 새겨서 일을 기록하고, 돌에 새겨서 소식이나 정보를 전달한다는 의미로, 정보의 저장매체로서의 역할이다. 나아가, ‘나무나 돌에 흔적을 남기다, 새기다’로 번역할 수 있는데, 자연사물을 묘사하는 상형문자의 본질에 충실한 해석이다. 이때 ‘흔적’은 문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ref>김태완(2015),《이미지와 중국의 상형문자》, 244쪽</ref> 혹은 “나무를 보면 나무를 그리고, 돌을 보면 돌을 그린다”라는 해석 또한 있다. <ref>方國瑜, 『納西象形文字譜』, 37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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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서 동파문자가 언제 창제되었다는 것은 역사서에도 명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납서족의 동파에 의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며, 문자의 겉모습만 보면 이미 사라져버린 원시문자 이전의 그림 정도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형체, 발음, 의미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문자학적인 측면에서도 보아도 틀림없는 문자이다. <ref>김태완(2015),《이미지와 중국의 상형문자》, 236쪽</ref>원시적인 도화圖畵(혹은 회화繪畵)의 형태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상형문자는 이 동파문이 유일하다. 이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화석’이다.<br>
 
납서 동파문자가 언제 창제되었다는 것은 역사서에도 명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납서족의 동파에 의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며, 문자의 겉모습만 보면 이미 사라져버린 원시문자 이전의 그림 정도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형체, 발음, 의미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문자학적인 측면에서도 보아도 틀림없는 문자이다. <ref>김태완(2015),《이미지와 중국의 상형문자》, 236쪽</ref>원시적인 도화圖畵(혹은 회화繪畵)의 형태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상형문자는 이 동파문이 유일하다. 이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화석’이다.<br>

2019년 12월 7일 (토) 19:39 판

개요

중국 운남성 서북부 리장지역의 나시족(Naxi,納西)들이 사용하는 동파문자(东巴文字) 혹은 납서문자(納西文字)라 불리는 상형문자는 현재까지 그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사용되고 있다. 이 동파문은 19세기 말엽에 세상에 알려졌으며 모든 자형을 상형의 방법으로 써낸 문자이다. 나시족이 믿는 동파문의 무사(巫師)들이 그들의 경전을 쓰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동파문자라고 불리며, 이 동파문을 한어로 음역하여 ‘森究魯究’하여 ‘斯究魯究’라고 하는데, [1]원래의 의미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저 중국인들의 발음에 의해 한자로 옮긴 ‘가차’의 음에 불과한 음역자이다.[2] 원래 동파문의 발음은 sər33 ʨə55 lɤ33 ʨə55(우리말로는 ‘써ㄹ쳐러쳐’로 발음됨)이며, 동파문으로는 동파문1.jpg 또는 동파문2.jpg로 표기한다. [3] 직역하면 ‘나무/흔적/돌/흔적’ 또는 ‘나무/홍역 같은 흔적 혹은 반점/돌/반점’으로서 ‘나무를 그리고 돌을 그리다’혹은 ‘흔적, 반점, 돌, 반점’으로서 ‘보이는 대로 그 흔적을 그린다’는 의미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즉, 나무나 돌에 새긴 부호로서, 나무에 새겨서 일을 기록하고, 돌에 새겨서 소식이나 정보를 전달한다는 의미로, 정보의 저장매체로서의 역할이다. 나아가, ‘나무나 돌에 흔적을 남기다, 새기다’로 번역할 수 있는데, 자연사물을 묘사하는 상형문자의 본질에 충실한 해석이다. 이때 ‘흔적’은 문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4] 혹은 “나무를 보면 나무를 그리고, 돌을 보면 돌을 그린다”라는 해석 또한 있다. [5]

특징

납서 동파문자가 언제 창제되었다는 것은 역사서에도 명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납서족의 동파에 의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며, 문자의 겉모습만 보면 이미 사라져버린 원시문자 이전의 그림 정도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형체, 발음, 의미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문자학적인 측면에서도 보아도 틀림없는 문자이다. [6]원시적인 도화圖畵(혹은 회화繪畵)의 형태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상형문자는 이 동파문이 유일하다. 이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화석’이다.
동파문자는 원시적이라기보다는 성숙하지 않은 소박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특징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 유형의 자는 많으나 무형의 자는 적다. 동시에 명사 특히 인명과 신명 등이 많으며 동사나 형용사는 적다.
  2. 글자의 모양과 의미가 대단히 긴밀하게 밀착되어 있다. 예를 들어 각종 나무의 명칭은 특정 나무의 모양과 특징을 자세히 묘사하여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3. 글자의 대소와 방향으로 의미를 구분하고 있는 것 등이다.[7]

창제시기

동파경 및 다른 역사서에도 창제시기에 관한 기록이 없으며, 동파문과 연관된 문물도 출토되지 않았다. 그러나 학자들은 납서족 사회를 중국의 역사와 결합시켜 검토한 결과, 7세기 초인 수말’당초에 납서족의 원시 무교가 Tibet 분교(Bon Religion)의 영향을 받아 동파교가 형성되었고, 이때에 이미 직업화된 동파무사가 출현한 것에 근거하여 납서 동파문자는 당대 이전에 형성되어 적어도 7~11세기에 만들어졌고 늦어도 13세기 초에는 이미 크게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사실 아직까지 확정적인 정설이 없는 상황에서 여러 정황을 참조하여 내린 결론이며, 일반적으로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0여 년 전인 당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동파문자가 고대 바빌로니아의 설형문자, 고대 이집트의 신성문자, 중남미의 고대 마야문자 및 중국의 갑골문자에 비해 원시적이고 순박한 것은 분명하며, 그 만들어진 시기가 다른 고대 문자보다 더 최근의 것이라는 점이 대단히 주목할 만하다.[8]

  1. 김태완(2012),《갑골문과 중국의 상형문자》, 32쪽
  2. 김태완(2015),《이미지와 중국의 상형문자》, 243쪽
  3. 偰玲華, "納西東巴文字에 담겨진 納西族의 感性",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인문학국사업단(2010)
  4. 김태완(2015),《이미지와 중국의 상형문자》, 244쪽
  5. 方國瑜, 『納西象形文字譜』, 37쪽
  6. 김태완(2015),《이미지와 중국의 상형문자》, 236쪽
  7. 김태완(2015),《이미지와 중국의 상형문자》, 281쪽
  8. 김태완(2015),《이미지와 중국의 상형문자》, 2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