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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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현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6월 26일 (화) 21:4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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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출생 B.C 476?
사망 B.C390?
생존시기 춘추시대 말기~전국시대 초기
관련 활동 묵가학파

묵자는 성이 묵(墨)이고 이름이 적(翟)이며 노(魯)나라 사람이다. 묵자는 대략 공자가 세상을 떠난지 10여년 뒤인 주(周) 정정왕 초, 즉 기원전 468~459년 사이에 태어났다. 그리고 맹자가 태어나기 10년 전인 주 안왕 중엽, 즉 기원전 390~382년 사이에 80세의 전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묵가학파의 창시자이자 전국시대의 저명한 사상가,교육가,과학자,군사가이다.묵자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농민출신의 철학가이며 그의 사상은 선진(先秦)시기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유가와 함께 '현학(顯學)'이라고 불렸다. 묵자가 설립한 묵가 학파와 공자가 설립한 유가학파는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에서도 제일 이름을 떨친 학파이다. 또한 마오저뚱은 '묵자는 노동자로서 비록 관리직에 있진 않았으나 공자보다 현명한 성인이다.'라고 말했다.

묵자사상의 배경

묵자가 귀족출신이 아닌, 미천한 집안의 출신이라는 점은 그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 묵자의 활동시기는 춘추 말기시대로, 빈번한 전쟁으로 노동자계급인 사농공상(士農工商)중 공민(工民)의 역할이 증대되며 난을 일으키는 데에 공민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로인해 계급적 자각이 싹트기 시작하고, 묵자는 자신도 미천한 출신이었기에 이러한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여 봉건 계급사회를 타파하고 사회를 개혁하고자 뜻을 세우게 된 것이다. 그의 문장은 수식이 없고 질박하다는 점은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할 수 있다. 또한 묵자는 유학을 공부하였으나, 유학이 통치계급의 입장을 옹호하며 서주(西周)의 봉건사회를 재건하려는 노력하는 데에 반하여 서민의 입장에서 이에 반발하였다. 서주의 봉건제도에 있어 사회 계급은 타고 나는 것이었으므로, 이에 따르면 사람들의 신분이나 귀천은 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것이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한 목적에서 묵자는 그의 대표적인 이론 중 하나인 <非命>이론을 내세운다. 또한 빈번한 전쟁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전쟁의 비참함을 직접 겪은 결과 <겸애(兼愛)>를 내세우고 그에 잇따라 <비공(非攻)>을 주장하며 묵자만의 사상을 형성할 수 있었다.

묵자의 학설

<한서.예문지>에 따르면 묵자는 <묵자>71편을 남겼다. 그러나 18편이 사라지고 지금은 53편만 전해지고 있다. 그중 묵자의 학설과 사상을 가장 잘 대표하는 저작으로는 <겸애(兼愛)>,<비공(非攻)>,<상현(尙賢)>,<상동(尙同)>,<천지(天志)>,<명귀(明鬼)>,<비명(非命)>,<비악(非樂)>,<절장(節葬)>,<절용(節用)>,<경설(經說)>,<대취(大取)>,<소취(小取)> 등이다. 그 외의 대부분은 묵가의 제자들의 저작이다. 그 가운데 <경(經)>,<경설(經說)>,<대취(大取)>,<소취(小取)>는 논쟁에 대해 다룬 서적으로 유명하다. 이 저작들은 전국시대 말기에 완성되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인간의 인식론과 논리학 등의 문제를 위주로 토론한 것이다.

겸애(兼愛)와 비공(非攻)

겸애는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형제가 서로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회에서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를 모욕하며, 귀한자가 천한자를 무시하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기에 나타나는 현상임을 지적하였다. 때문에 관리직에 있는 사람들은 '만민에게 이로운 일을 발전시키고 해가 되는 일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묵자는 반전운동가로 활동하며 전쟁을 하느님의 뜻을 어기는 반인류적 죄악으로 규정하였다. 반전평화사상을 묵자는 입으로만 역설한 것이 아닌, 직접 군부대를 이끌며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성을 방어할 수 있도록 방성(防城)기구를 만들었으며, 전쟁이 벌어질 당시에는 약소국의 수비를 직접 도맡아 하였다.

천지(天志)와 명귀(明鬼)

하늘의 뜻을 살피고 귀신의 존재를 밝히는 것은 묵가학설의 특징 중 하나이다. 묵자는 하늘은 의지가 있어서 자연계의 별들과 사계절, 춥고 더움 등의 운동과 변화가 인간세상의 정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만물의 창조자이며 주재자로 인식되었다. '하늘이 백성을 이처럼 사랑하기에', 임금이 만일 하늘의 뜻을 어기면 천벌을 받고 하늘의 뜻을 받들면 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묵자는 귀신의 존재를 믿었으며, 귀신이 인간세상의 임금과 귀족들에게 선악에 따라 상벌을 내린다고 주장했다. 묵자의 하느님은 인격신이란 점에서는 기독교와 비슷하지만, 묵자의 신은 기독교적 신과는 달리 육체를 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묵자의 하느님의 인격은 섭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묵자는 역사에 있어서는 하느님은 민중과 별도의 인격을 갖지 않고 민중의 뜻이 바로 하느님의 인격이었다.

상동(尙同)과 상현(尙賢)

'상동'은 백성이 천자를 높이 받들며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묵자는, 임금은 현명한 자로서 백성은 군주가 맞다고 하면 맞다고 여기고 그르다고 하면 그르다고 여겨 윗사람에 동조해야 한다고 햇다. 어울러 이금이 벡성의 민정을 살피는 일도 중요하며 그렇게 해야 선악에 따라 상벌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상현'은 임금이 유능한 사람을 등용하고 무능한 사람을 강등시키는 것을 말한다. 묵자는 상현을 중시하여 이를 정사의 근본으로 여겼다. 그는 혈통에 따라 왕위를 계승하는 것을 반대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그 출신에 얽매이지 않고 등용해야함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관리에게 영원한 고귀함이란 없고, 백성에게 영원한 미천함이란 없다'는 주장을 내세워 재능만 있으면 출신에 관계없이 보통 사람들도 얼마든지 관직에 오를 수 있음을 역설했다. 아울러 그는 백성이 그들의 사상을 인정하고 상사를 따라 배워야 하며, 하급관리는 상급관리를 인정하고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절용

절약과 절용은 묵가가 특히 강조하는 관점 중 하나로, 그들은 임금과 귀족들이 사치하고 낭비하는 것을 규탄하였고, 특히 유가가 중시하는 후장(厚葬)풍속을 반대했다. 그들은 임금과 귀족은 소박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묵자의 제자들은 이 방면에서 솔선수범하여 '농사'를 중시하고 '절용'을 주장하여 생산을 중시하고 절약에 힘썼다. 묵자의 절용(節用)은 통상적으로 우리가 오늘날 인식하고 있는 절용과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묵자의 절용은 절검(節儉)이 아닌, '절도있는 소비'를 의미한다. 인민의 이용후생에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은 생산하지 말아야 하며 재화는 그 본래의 목적대로 소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즉, 묵자의 절용론은 결코 절약을 강조하지 않으며, 재화의 용도에 맞도록 절도 있게 소비하는 절용을 주장한다.

묵자의 사상

종교사상

묵자의 종교사상은 '천지'와 '명귀'의 이론을 기초로 구성되어 있다. 묵자는 평민출신으로 그의 사상에는 평민의 성격이 드러나있다. 평민의 의식은 한편으로는 순후하고 한편으로는 수구적이다. 춘추시대의 원시종교의 관념은 묵자 당시에는 이미 인문화되었다. 따라서 권위적이고 의지적인 하늘은 지식인들의 의식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으나 민중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묵자>의 천귀관(天鬼觀)은 당시 민중들의 종교심리의 한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윤리사상

천하의 큰 환란은 국가나 백성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데에 있다. <묵자>의 사상은 국가나 개인의 이기심을 없애고 화해(和解)의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한 겸해가 그 중심을 이룬다. 묵자는 '겸상애(兼相愛),교상리(交相利)'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아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전념한 구세(救世)의 사상가였다. 더불어 사랑하고 함께 이익을 나누는 겸애는 공리주의적 경향의 윤리학설로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면 나도 사랑받고 이롭게 된다는 것이다.

평화사상

묵자는 전쟁의 원인을 남을 사랑하지 않는 별애(別愛0로 보고 모두가 증오와 이기심을 버리고 더불어 사랑하는 겸애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묵자의 겸애가 실현되는 사회는 전쟁이 없을 뿐더러 사회정의의 질서 밑에서 힘이 있는 자는 힘을, 재력이 있는 자는 재물을, 지식이 있는 자는 지식을 망설이지 않고 서로 나누는 겸애의 사회이다. 곧 겸애의 사회는 적극적인 평화의 사회이며, 묵자는 적극적 평화의 개념인 겸애를 내세우는 한편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비공(非攻)'의 소극적 개념의 평화를 주장한다.

정치사상

묵자는 정치를 의롭게 다스리는 것(義政)과 힘으로 다스리는 것(力政)으로 나눈다. 더불어 사랑하는 겸애의 도는 의정이며 차별하여 사랑하는 별애의 도는 역정이다. 묵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정치, 곧 의정은 겸애의 기치 아래 만민을 이롭게 하려는 겸리(兼利)의 정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묵가의 정치목표는 경제부흥과 부조리의 척결에 있다. 이와 같은 묵가의 공리주의적 정치관은 성과를 따지지 않고 이익을 꾀하지 않는 유가의 정신과는 기본적으로 배치된다.

경제사상

세상에 이익이 되는 일을 많이 하고 세상에 해로움이 되는 것을 없애는 것이 묵학의 근본 과제이다. 묵자는 백성들의 물질적 이익 증대를 목표로 하여 민생을 해결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려고 했다. <묵자>에는 절용,절강,비악 및 칠환,사과,경 편 등에서 경제의 생산과 교역, 분배와 소비에 대한 분야가 다루어지고 있는데 '절약'이 그 중심이 된다.

교육사상

묵자 역시 고대 유가의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교육의 효과를 중시하여 '상설하교(上說下敎)'의 방식으로 자기의 경세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였다. 그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그의 도덕과 정치 이상에 입각한 교육의 목적을 '현사(賢士)'를 배양하는 데 두고 있다.

『묵자』의 구성과 내용

묵학은 한나라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정체기를 맞이하며, 서한(西漢) 유향에 의해 71편으로 정리되었던 『묵자』는 시대가 흐름에 따라 18편이 없어져 현재 53편만이 전해지고 있다. 「비유」편을 제외한 각 편들은 모두 상, 중, 하 3편으로 되어있는데, 유월(兪樾)에 의하면, 이것은 묵가들이 3파로 분열되면서 각자 기록 보관한 결과이다. 표현에 있어서는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대의(大義)는 동일하다. 그러나 이에 반대되는 의견으로는 묵자는 여러 곳에서 연설을 한 것을 제자들이 제각기 기록하였기에 3편이 존재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묵자』중에서 묵자의 사상을 중심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편은 「상현」편부터 「소취」편까지의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상현(尙賢) 上」

"임금이 인민을 부릴 수 있는 수단은 어진 이를 숭상하는 한 가지 방법뿐이며 인민들이 임금을 섬길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의를 행하는 한 가지 방법뿐이다."

「상동(尙同) 中」

"지금 천하에 왕공대인과 선비와 군자들이 자기 나라를 부하게 하며 인민들이 모여들어 많아지게 하고 법과 정사를 옳게 다스려 사직을 안정코자 한다면 마땅히 화동을 숭상하는 일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겸애(兼愛)中」

"천하의 군자들이 진실로 천하가 부유하기를 바라고 가난을 싫어한다면 또한 천하의 태평을 바라고 혼란을 싫어한다면 마땅히 두루 평등하게 서로 사랑하고 이롭게 해야 한다."

비공(非攻) 下」

"충심으로 천하의 이로움을 일으키고 폐해를 제거하려 한다면 마땅히 잦은 침략 전쟁은 실로 커다란 해독임을 알아야 한다."

「절용(節用) 上」

"성왕의 정치는 정령을 펴 산업을 일으키고 백성들로 하여금 재화를 풍족하게 사용토록 하되 이용후생에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을 결코 하지 않았다."

「절장(節葬) 下」

"후한 장례와 오랜 상례라는 것이 실은 가난한 자를 부하게 하거나 인민을 많아지게 하거나 위태로움을 안정시키거나 혼란을 다스리는 방책이 아니라면, 이것은 어짊이 아니고 의로움이 아니고 효자로서 할 일이 아니다."

「천지(天志) 上」

"하늘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싫어하는가? 하늘은 의로움을 바라고 불의를 싫어한다. 그래서 천하 백성을 이끌고 의로움을 힘쓰면 곧 내가 하늘이 바라는 것을 하는 것이다."

「명귀(明鬼) 下」

"옛 성왕은 반드시 귀신은 어짊에 상을 내리고 포악에 벌을 내린다고 생각했다. 이런고로 상은 시조신 앞에서 내리고 죽음의 벌은 토지신 앞에서 내렸던 것이다."

「비악(非樂) 上」

"일찍이 인민들의 세금을 많이 거두어 여러 악기들을 만들고 이것을 연주했어도 이로써 천하의 이익을 부흥시키고 천하의 해독을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비명(非命) 中」

"삼가라! 천명은 없다! 오직 나는 사람을 높이고 말을 지어내지 않는다. 운명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얻는 것이다."

「비유(非儒) 下」

"유가들은 운명을 내세우며 게으르고 가난하면서도 고고한 척하며 생산 활동을 천시하고 오만하고 안일을 탐한다. 먹고 마시는 것은 탐내면서도 노동은 싫어하여 헐벗고 굶주려 굶어 죽고 얼어 죽어도 거기서 벗어날 길이 없다."

「경(經) 上」

"조건. 그것을 얻으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義는 이利다."

「경설(經說) 上」

"필요조건. 그것이 있다 해도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없으면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충분조건. 그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렇게 되고 그것이 없으면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의는 뜻으로써 천하를 아름답게 하고 힘껏 이롭게 하는 것이다."

「대취(大取)」

"한 사람을 죽여 천하가 보존됐다 해도 살인은 천하를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자기를 죽여 천하가 보전됐다면 자기를 죽인 것은 천하를 이롭게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취(小取)」

"어떤 것은 '명제가 옳으면 사실도 그런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명제는 옳으면서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있고, 어떤 것은 '명제가 어떤 경우는 사실에 두루 통하고 다른 경우는 두루 통하지 않는 것'이 있으며, 어떤 것은 '한 경우는 옳지만 다른 한 경우는 그른 것'이 있다."

묵학의 성쇠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겸애(兼愛)>를 주장한 묵자의 사상은 전국시대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묵가는 유가와 함께 가장 영향력이 큰 학문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묵가는 (漢)대로 들어오며 점차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진시황 때부터 묵자의 학문은 핍박을 받기 시작하며 한나라 무제에 이르러서는 철저히 탄압을 받게 된다. 전제군주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사회계급을 타파하고, 평등을 주장하는 묵자의 학문은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부적인 요인 외에도, 묵학 자체의 너무 높은 이상과 학설 자체의 모순과 약점으로 인해 후대에 계승되고 발전되지 못했다는 학자들의 주장도 존재한다.

참고문헌

  • 박문현,<<묵자읽기>>,세창미디어,2013 ISBN 978-89-5586-196-9
  • 친위,<<묵자>>,이영화,송철규 옮김,예문,2008 ISBN 978-89-5659-110-0 03320
  • 기세춘,<<묵점 기세춘 선생과 함께하는 묵자>>,바이북스,2009 ISBN 978-89-92467-24-7 03150
  • 김학주,<<墨子>>,민음사,1988 ISBN 2002374003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