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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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주장 이유

쑨원은 전세계가 민족국가 체제로 재편된 상황 속에서 구국을 위해 민족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4천여년의 문명을 가졌다는 점에서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은 가족과 종교적 단체만 가지고 있을 뿐, 민족정신이 결여되어 있어 국제사회에서 낮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민족주의를 제창하여 4억인을 결합시키지 않으면 중국은 결국 멸망하여 민족이 멸종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내용

패도에 의해 성립될 경우에는 국가가 되는 것이고, 왕도인 자연력에 의해 성립될 경우에는 민족이 되는 것이다.
한 민족이 다른민족을 정복하게 되면 피정복민족의 독자적 사상을 배격하게 된다. 만주족 또한 한족의 민족사상을 소멸시켰다. 세계주의란 이적(夷狄)과 화하(華夏)를 구분하지 않는 것인데, 중국인의 대다수가 세계주의만 외치고 민족주의는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주족에게 정복당했다. 청대 만주족의 통치와 세계주의로 인해 잃어버렸던 민족사상을 되찾아야 한다.
명조의 후예들이 회당(會黨)을 조직하고, 한족 통치계급이 버린 민족사상을 하층 사회에서 구전으로 선전하는 방식으로 보존해왔다.
중국민족의 인구는 총 4억명인데, 그 중 외래인의 수는 총 1천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중국의 4억 인구 대다수가 한족으로 혈통, 언어, 문자, 종교, 습관 등을 같이하는 완전한 민족이다.

대아시아주의

내용

쑨원은 당시의 국제정세를 서양의 공리와 강권을 주장하는 패도와 동양의 인의도덕을 주장하는 왕도의 대결로 간주하고, 동양의 왕도가 서양의 과학기술을 흡수함으로써 패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쑨원은 아시아 전체 민족들의 연합이 있어야 아시아 전체 민족의 독립운동이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식민지로 전락한 민족들이 연합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아시아에 대한 중일 양국의 공동영도를 주장하였다.

한계 및 문제점

쑨원은 여전히 전통적인 중화세계관을 고수하고 있었으며, 중국이 당면 문제를 해결하여 다시 강성해진다면 전통적인 중화세계를 재건하고자 하는 희망도 나타내고 있다. 1923년 8월 19일 광저우에서 개최된 전국학생평의회의 연설에서 쑨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10여 년 전에 태국에 가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중국이 만약 혁명을 완수해서 부강해 진다면 우리 태국은 중국의 한 성이 되고 싶다고 하였다. 중국이 만약 강성해진다면 한국과 베트남도 중국에 가입하는 것을 허가해주도록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쑨원의 대아시아주의는 자칫 일본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옹호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대동아공영권이란 일본에 의해 주도되고 서방 세력으로부터 독립된 아시아 각국의 공동 번영으로 1930년대 이후 일제의 동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슬로건으로 이용되었다.

참조

마오쩌둥,『모택동선집1,2』,김승일옮김,범우사,1991년.
쑨원,『삼민주의』,김승일(외)옮김,『범우사,2000년.
양순창, 손문의 대아시아주의에 나타난 일방성과 다자성, Vol.13 No.2, 2005, P.313~333.
펄S.벅,『청년쑨원』,은하랑옮김,길산,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