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중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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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北宋) 때의 병법가이자 정치가, 문학자이다. 장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 출생으로, 자는 희문(希文)이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조정의 간관(諫官)으로 일하던 중 재상 여이간(呂夷簡)이 부정부패를 일삼는 것을 보고 인종에게 이를 고발하였다. 이 일로 범중엄은 여이간의 미움을 샀고, 여이간은 범중엄을 모함하여 지방으로 좌천시켰다. 그러나 서하와 전쟁을 치르게 되자 인종은 그를 전근시켜 변경 수비를 지휘하게 하였다.

범중엄이 서하와의 전쟁 중 큰 공을 여러 번 세우자 인종도 그를 인정하게 된다. 그 당시 송나라 조정은 내정 부패, 요나라 및 서하와의 전쟁 비용과 해마다 요나라에 바치는 은과 비단으로 국고가 바닥나 있는 상태였다. 인종은 범중엄을 부재상으로 임명하였고 즉시 치국방략을 제기하도록 명하였다. 범중엄은 이에 관리제도를 정비하여 인재를 양성하며, 무력을 강화하는 열 가지 개혁 조치를 내놓았다. 인종은 부패한 송나라를 즉시 개혁해야할 필요를 느끼고 범중엄의 방안을 즉시 시행하도록 명령하였다. 이 개혁을 ‘경력신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범중엄의 신정은 황실 내외척과 권세있는 대신들, 탐관오리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위협받자 여러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모함하는 등 범중엄을 공격하였다. 이에 범중엄은 서부 변경 수비를 자처하며 지방으로 떠나게 되었다. 1년 후 범중엄은 친구 등종량의 부탁을 받아 악양루의 보수공사를 기념하는 글을 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악양루기(岳陽樓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