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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은 위나라 출신으로 위앙 또는 공손앙이라고도 불린다. 그는 기원전 390년경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정치 행정학인 형명학을 평생의 동지인 시교라는 사람에게서 배웠다. 위나라에 와서는 법가 정치 개혁가인 이희와 오기의 영향을 깊게 받는다. 기원전 361년에 즉위한 진효공은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그가 첫 번째로 한 것이 인재를 모으는 일이었다. 진나라에서 인재를 모은다는 소식을 듣고 20대 중반인 상앙은 진나라로 명망하여 부국강병의 술책을 통해 효공을 설득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공을 세운 사람에겐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사람에겐 벌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조정의 위신이 서고 모든 개혁이 뜻대로 시행될 수 있습니다.” 이는 효공의 뜻에 부합되었고 효공 설득에 성공하였다. 이후상앙은 좌서장을 거쳐 총리 격인 대량조로 승진하여 정치 개혁의 총 설계자가 되었다. 두 차례의 변법을 성공시켜 약소국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었다. 군사적으로도 전수전략과 병법에 능통하였던 상앙은 연전연승하여 후일 진나라를 천하통일 반열에 올려놓아다. 그러나 엄격한 법집행이 태자와 보수 집단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진효공이 죽자, 역모의 모함으로 사지가 찢기고 가족 효공은 지이 참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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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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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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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은 위나라 출신으로 위앙 또는 공손앙이라고도 불린다. 그는 기원전 390년경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정치 행정학인 형명학을 평생의 동지인 시교라는 사람에게서 배웠다. 위나라에 와서는 법가 정치 개혁가인 이희와 오기의 영향을 깊게 받는다. 진나라에서 법가사상을 펼쳐 후에 진나라 통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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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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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61년에 즉위한 진효공은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그가 첫 번째로 한 것이 인재를 모으는 일이었다. 진나라에서 인재를 모은다는 소식을 듣고 20대 중반인 상앙은 진나라로 명망하여 부국강병의 술책을 통해 효공을 설득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공을 세운 사람에겐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사람에겐 벌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조정의 위신이 서고 모든 개혁이 뜻대로 시행될 수 있습니다.” 이는 효공의 뜻에 부합되었고 효공 설득에 성공하였다. 이후상앙은 좌서장을 거쳐 총리 격인 대량조로 승진하여 정치 개혁의 총 설계자가 되었다. 두 차례의 변법을 성공시켜 약소국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었다. 군사적으로도 전수전략과 병법에 능통하였던 상앙은 연전연승하여 후일 진나라를 천하통일 반열에 올려놓아다. 그러나 엄격한 법집행이 태자와 보수 집단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진효공이 죽자, 역모의 모함으로 사지가 찢기고 가족 효공은 지이 참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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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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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분류:인물]]
 
[[분류:인물]]

2016년 5월 14일 (토) 19:30 판

상앙

개요

상앙은 위나라 출신으로 위앙 또는 공손앙이라고도 불린다. 그는 기원전 390년경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정치 행정학인 형명학을 평생의 동지인 시교라는 사람에게서 배웠다. 위나라에 와서는 법가 정치 개혁가인 이희와 오기의 영향을 깊게 받는다. 진나라에서 법가사상을 펼쳐 후에 진나라 통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그의 생애

기원전 361년에 즉위한 진효공은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그가 첫 번째로 한 것이 인재를 모으는 일이었다. 진나라에서 인재를 모은다는 소식을 듣고 20대 중반인 상앙은 진나라로 명망하여 부국강병의 술책을 통해 효공을 설득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공을 세운 사람에겐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사람에겐 벌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조정의 위신이 서고 모든 개혁이 뜻대로 시행될 수 있습니다.” 이는 효공의 뜻에 부합되었고 효공 설득에 성공하였다. 이후상앙은 좌서장을 거쳐 총리 격인 대량조로 승진하여 정치 개혁의 총 설계자가 되었다. 두 차례의 변법을 성공시켜 약소국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었다. 군사적으로도 전수전략과 병법에 능통하였던 상앙은 연전연승하여 후일 진나라를 천하통일 반열에 올려놓아다. 그러나 엄격한 법집행이 태자와 보수 집단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진효공이 죽자, 역모의 모함으로 사지가 찢기고 가족 효공은 지이 참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정책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