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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제도를 통해 알아 본 마오쩌둥의 국가관====
 
====토지제도를 통해 알아 본 마오쩌둥의 국가관====
 
농민의 토지사유는 과도기적 과정일 뿐, 궁극적으로 마오쩌둥이 원했던 공산주의와 맞지 않았고, 농민 토지사유로 인해 농업경제가 작고 분산된 소농경제로 돌아가자 생산수준이 높지 않았다. 또한, 농민들 간에도 다시 부농과 빈농의 격차가 생겨 토지소유의 편중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오쩌둥이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과도기적 단계였다. 그가 원했던 유토피아에 이르면 토지 소유가 모두 철폐되고 모든 인민이 평등한 삶을 살아가는 국가였다.<br/>
 
농민의 토지사유는 과도기적 과정일 뿐, 궁극적으로 마오쩌둥이 원했던 공산주의와 맞지 않았고, 농민 토지사유로 인해 농업경제가 작고 분산된 소농경제로 돌아가자 생산수준이 높지 않았다. 또한, 농민들 간에도 다시 부농과 빈농의 격차가 생겨 토지소유의 편중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오쩌둥이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과도기적 단계였다. 그가 원했던 유토피아에 이르면 토지 소유가 모두 철폐되고 모든 인민이 평등한 삶을 살아가는 국가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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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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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 신성곤 / 서해문집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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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全史 : 현대편』 / 백수이 / 이진복, 김진옥 / 학민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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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중국현대사 : 중국공산당의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 / 허원 / 사계절<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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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사』 / 요코야마 히로야키 / 신서원<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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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중산과 근대중국 : 중국근대사의 이해』 / 김학관<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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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혁명의 전개과정』 / 중국사 연구회 / 거름<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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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민주의』 / 손문 / 범우사<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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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과 중국공산주의』 / 김유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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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보는 중국 현대사 - 20세기 초에서 천안문 사태 이후까지』 / 찰리 호어 / 조남선<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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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 야부키 스스무 /  신준수 역<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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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사상론』 / 김충렬, 공기두<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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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이전 중국의 토지개혁경험 연구 - 농촌토지소유제 관계를 중심으로” / 박인성<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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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농촌토지개혁에 관한 연구 -토지재산권제도의 변화와 과정을 중심으로” / 왕 림<br/>

2017년 3월 20일 (월) 14:47 판

쑨원의 국가관

국가관

건국방략은 심리건설, 사회건설, 국가건설로 나뉜다. 삼민주의는 곧 국가건설에 대한 것으로 앞으로의 중국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하는지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또한 삼민주의를 구국주의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삼민주의가 중국으로 하여금 국제적, 정치적, 경제적 지위의 평등을 촉진시켜 중국을 세계 속에 합당케 존재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은 공화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삼민주의는 민유·민치·민향이다. 이 민유·민치·민향은 곧 국가를 인민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정치는 인민이 공동으로 관리하며 이익은 인민이 공동으로 누린다는 것이다. 우선 민족주의에 대해 설명하자면 민족주의는 국족주의이다. 국가의 발달과 민족의 생존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인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열강들에 의해 무시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민족은 자연력, 즉 왕도에 의해 형성된 것이고, 국가는 무력, 곧 패도에 의해 성립된 것이다. 국가는 역사상 두 차례(원나라와 청나라) 멸망한 적이 있으나 민족은 그리 상처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력과 경제력이 도태된 상황에서 민족은 멸망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중국의 앞날을 생각할 때 정치력과 경제력, 그리고 민족에 대해 모두 생각해야만 한다. 그리고 진정한 세계주의를 주장하기 위해서 민족주의가 우선 확보되어야 한다. 이렇게 민족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선, 우선 4억 중국인들에게 중국이 처한 상황을 널리 알려야 한다. 그리고 알림으로써 종족을 결합시켜 국족을 형성하고, 국족이 실천함으로써 나라를 번성케 하게 한다는 것이다.
민권주의는 ‘민’과 ‘권’이 합쳐 이루어진 민권은 곧 인민의 정치적인 힘을 말하는 것이다. 민권주의는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며, 모든 법률과 정책을 펼쳐, 국민의 권리가 침해당하지 아니하고, 평등과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은 민권 위에 기초하여 민권을 따라야 한다. 옛 중국에서는 정권은 황제의 손에 장악되어 인민과는 상관이 없다. 중국은 혁명이후 민권정치를 수립했으므로 지금의 정치를 민주정치라 해도 좋은 것이다. 우리의 계획은 국가의 정치권력을 두 개로 구분하여 완전히 새로운 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 하나는 정권으로서 이 권력을 완전히 구구민의 손에 넘겨주고, 직접 국사를 관리할 수 있도록 인민에게 충분한 정권(선거권, 파면권, 창제권, 복결권)을 부여한다. 이 정권이 즉 민권이 것이다. 다른 하나는 치권(사법권, 입법권, 행정권, 고시권, 감찰권)으로 권력을 완전히 정부 기관에 넘겨주고, 전국의 문제를 통치하도록 정부에 큰 힘을 부여하는 것으로 정부권을 말한다. 전민정치는 4억의 인민을 황제로 삼는 것이다. 인민들이 네 가지 민권(선거원, 파면권, 창제권-어떤 법률을 인민에게 대단히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경우에 그 법률을 자신들이 결정하여 정부로 하여금 집행하도록 하는 권력-, 복결권-지금의 법률이 인민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될 경우 그것을 자신들이 개정하고 제출하여 그 개정시킨 법률을 집행시키고 지금까지의 옛법을 폐지할 권리-)을 가지고 국가의 대사를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민권인 정권과 정부권인 치권이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만 민권문제가 비로소 완전한 해결을 볼 수 있고, 합리적인 정치를 이룰 수 있다.

민생주의는 인민의 생활·사회의 생존·국민의 생계·대중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민생주의라 하는 것은 곧 사회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또한 공산주의라고 불리어지며 이것이 바로 대동주의인 것이다. 이 때 말하는 공산주의는 단지 마르크스가 제창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의 공산사회 개념도 포함한다. 사회주의의 최대 관심사는 인민의 생활문제(기계의 등장으로 인민이 일자리를 빼앗기고 그 결과 심각한 사회문제가 대두한 것)의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다. 사람은 빵이나 밥을 두고 서로 싸우게 된다. 따라서 공산사회가 되면 모두가 빵과 밥을 얻을 수 있으므로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되고 인류간의 전쟁도 일어나지 않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를 사회문제 해결에 있어 이상으로 보는 이유이다. 민생주의는 이 최고 이상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사회의 원동력이며 모든 역사적 운동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혼란이 극복된 후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본을 발전시켜 산업을 진흥시켜야만 한다. 산업을 발전시키는 방법은 첫째, 교통사업이라든가 철도나 운하 등 대규모 건설을 실시하는 것이다. 둘째는 광산개발이다. 중국에는 풍부한 광산자원이 있으므로 이를 반드시 개발해야만 한다. 셋째는 공업이다. 중국에는 노동자는 많으나 기계가 없어 이권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기만 하고 있다.

공화국이란 군주국을 부정하는 국가형태로, 주권을 가진 국민이 선거를 통해 국가 원수를 선출하고 국민이 선출한 국가 원수가 국가를 지배한다. 선거제도에 의해 국가원수가 일정한 임기로 교체되기 때문에 군주국이 세습적 군주를 두는 것과 다르다. 공화국은 민주적 공화국과 독재적 공화국으로 구분된다. 민주적 공화국은 국민주권주의, 권력분립주의, 의회주의, 법치주의 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이 제도에서는 국정에 참여하는 대표자·원수는 국민의 투표로 선출되며, 일반적으로 대통령제나 합의체제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인민을 바라보는 관점

공화정체하에서는 인민을 황제로 삼아야 한다. 지금은 민권정치의 시대로 인민 자신이 중심이 되어 처리해 나가야만 하는 시기이다. 현재 인민은 정부에 대해 일종의 편견을 갖고 있는데, 이는 공화정체가 이뤄졌지만 과거의 황제처럼 혹독한 전제를 행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재 민권을 실행하고 있고 4억인 모두가 황제인 상황에서, 인민들은 당연히 제갈량이 정치상의 일들을 관리하고 국가의 대사업을 처리하는 것을 환영해야만 한다. 만약 좋지 못한 정부라면 4억인이 황제로서의 직권을 발동하여 그들을 파면시키고 국가의 대권을 되찾으면 된다. 공장을 경영하는 데 있어 유능한 인물을 지배인으로 초빙하여 공장을 관리하고록 한다. 이때 지배인은 전문가이고, 주주는 유권자로 공장 내부의 일에 관해서는 오직 지배인만이 말할 수 있으며 주주는 지배인을 감독함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에 대한 우리 인민의 태도는 그들을 전문가로 보아야만 한다. 모든 일에 있어 반드시 전문가에 의존할 필요가 있으며, 전문가에 제한을 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즉 국민은 주인으로서 유권자이며, 정부는 전문가로서 유능자인 것이다. 그들에게 능력이 있고 국가를 위하는 진실된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국가의 대권을 그들에게 맡기고 그들의 행동에 제한을 두지 않고 무엇이든 자유로이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인민이 그러한 태도를 취해야만 국가에는 비로소 방법이 있게 되고 또 진보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토지제도

민생주의에 있어 첫 번째 문제는 지권의 평등인데,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정부가 토지의 시가에 따라 세를 거두고, 또 시가에 따라 매수하는 것이다. 땅값은 땅주인이 결정하게 한다. 시가를 결정한 후 가격이 그보다 올랐을 경우, 그 오른 값만큼을 완전히 공유로 한다. 이렇게 하면 발생한 차액으로 온갖 잡세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어 민생문제의 반이 해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자본절제만으로는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국가자본을 형성해 국가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한 행동의 일환이다.


마오쩌둥의 국가관

인민주의

실천론

맑스주의 -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마오쩌둥 -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상부구조에 해당하는 이론과 생산관계, 상부구조 등이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인식은 실천을 통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인식과 사회적 실천을 통해 객관외부세계의 진리를 발견한다.
이러한 사회적 실천의 주체는 혁명의지를 가진 인민들이다.


맑스주의 -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마오쩌둥 -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상부구조에 해당하는 이론과 생산관계, 상부구조 등이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사회발전에는 법칙이 있고, 정치·경제적 토대와 같은 객관적 조건이 중요하긴 하나, 일정 조건하에서는 인간의 인식과 의지가 더 결정적 역할을 수행 가능하다. 인간의 능동적 의지의 힘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인민의 혁명적 의지로 사회발전 법칙마저도 극복 하고, 대동사회(유토피아)를 건설 할 수 있다. 이러한 인민의 의지를 기반으로 세계를 능동적으로 개조해나가야 한다.

모순론

세상의 모든 것에는 보편적으로 모순이 있다. 그리고 모순 안에서도 더 중요하고 선결해야 할 주요모순과, 부차적 속성을 가진 부차적 모순이 있다. 주요모순의 존재와 발전이 다른 모순들을 규정하거나 영향을 주므로 항상 주요모순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주요모순과 부차적 모순의 우선순위는 가변적인 속성을 가진다. (예: 국공간의 내전시기엔 당의 이념을 관철하는 것이 주요 모순이 되나, 항일시기에는 당 간의 내전보다도 한민족이 단결하여 일본을 물리치는 것이 더 먼저 해결해야 할 주요 모순이 됨)
또한, 개별적인 모순은 각각 특수성을 띠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순은 해결하는 방법도 각기 달라야 한다.
=> 소련식 발전모델을 참고하되, 중국만의 특색 있는 국가 발전 모델을 확립해야한다.

신민주주의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바라보는 중국은 낙후되어 발전해 나가야 한다. 먼저 현재의 신민주주의 단계를 완성한 후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단계로 나아가야 대동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식민지적이고 봉건적인 요소들을 철폐하고 무산계급이 영도하는 혁명적 방향이 필요하다. 그래서 새 중국을 창건하기 위해 무산계급의 역량이 필수적이다.
이것을 기반으로 모든 인민이 합심하여, 새 정치, 새 경제, 새 문화를 만들어 새 중국을 창건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신민주주의론이다.

인민주의로 바라보는 마오쩌둥의 국가관

마오쩌둥의 국가관은 실천론과 모순론에 사상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실천론은 사회적 실천을 할 주체는 인민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인민의 역량에 대한 믿음을 나타낸다. 모순론은 절대적 이론에 맞춰 사고와 행동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주요 모순 해결이라는 유연성을 가지도록 한다. 이로 인해, 중국은 중국만의 모순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타 국가들의 모델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만의 특색 있는 발전모델을 추구해야한 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마오 사상에 기반을 두고, 마오쩌둥은 건국초기에는 신민주주의 단계를 거치고, 향후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지나 대동사회(유토피아)로 향해야 한다는 국가관을 가지고 있다. 마오쩌둥의 국가관에서 인민에 대한 믿음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토지제도

국내혁명시기(1927~1937)

‘빈농에 의지, 중농과 단결, 부농을 제약, 중소상공업자 보호, 지주계급 소멸’이라는 기치로‘향’단위로 농민에게 토지 균등분배 정책을 실행하려 했다.

징강산 토지법(1927)
공산당이 강제적 수단을 이용하여 모든 토지(농민의 토지 포함)를 몰수하고, 토지소유권은 당에게 있어서 매매가 금지되고 농민들은 토지 사용권 및 수익권만을 가질 수 있었다.
=> 지주의 반발뿐만 아니라, 농민들도 토지에 대한 지배권을 원했기 때문에 반발이 심했다.

흥국 토지법(1929)
공공토지 및 지주의 토지만 몰수. 같은 해 “전지는 경작하는 농민이 소유하고 임대료를 지불할 의무는 없음”이라고 규정을 명시했다.

토지법(1930) : 토지매매 금지 규정 삭제 (징강산 토지법의 한계점이었던 부분 삭제)
=> 지주와 부농의 반(反)혁명 기세를 꺾고, 농민의 생산참여 동원 -> 혁명의 경제적 요건을 충족시키는데 기여했다.

항일전쟁시기(1938~1945)

항일민족통일전선의 형성을 위해 지주를 포함한 모든 집단을 포섭할 필요가 있었다. 이로 인해 토지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는 정책을 소작료와 이자삭감 방식으로 변경했다.
공산당은 건국 전까지도 이와 같은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며 토지개혁의 경험을 쌓고 있었다.

국공내전시기

내전으로 인해 농민 토지문제 해결이 민심을 얻는 동시에 내전 승리의 관건으로 작용함. 신민주주의 혁명의 발전에 따라 광범위한 토지 개혁이 요구됨.

중국 토지법(1947) 강제적으로 농민 토지소유제로 변경. 농민들이 토지에 대한 소유 및 매매권과, 수익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함=> 농민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어, 공산당 승리의 원동력으로 작용함.
▶ 공산당은 봉건적 토지제도 개혁을 주요과제를 설정해 계급투쟁과 폭력(강제)혁명의 방식으로 지주의 토지 몰수 및 농민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분배했다. 이를 통해 농민의 지지와 생산 적극성을 고취시켜 공산당이 집권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건국 초기(1949~1952)

농민들의 지지획득과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전면적으로 지주소유제를 폐지했다.(소유+사용=농민)

중화인민공화국 토지개혁법(1950)
분기별로 전국적 토지개혁운동 시행. 농업생산량 증대에 기여. 1952년 말에 거의 완성되어 농민의 생산적극성 및 농업생산 발전에 기여함.
토지 재산권의 자유로운 이전이 가능해지면서 매매, 임대 등의 거래 가 자유로워짐. 농촌 토지 등록 및 증서발급을 통해 세금 징수 등의 토지에 대한 행적적 관리가 가능해짐.

농업 합작화 시기(1952~1958)

호조조
토지에 대한 모든 권리는 농민개인에게 있으나 공동노동, 집단협력으로 개인 노동력의 한계를 보완했다.

초급농업생산합작사
1953년 12월 합작사와 같은 공동생산의 과정이 농업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정부가 밝힌 이후, 정부의 주도아래 호조조+기타 분산된 가구가 초급농업생산합작사로 병합했다.

고급농업생산합작사
토지 재산권의 모든 권한이 합작사로 넘어감. 강제로 농민에 대한 여타 보상 없이 토지가 합작사의 공동소유로 이전되어 거의 착취와 같은 형태로 정책이 시행됨. 합작사의 단위는 커졌으나 농민 개인에 대한 처우나 보상 및 분배에 대한 기준이 명확치 않아 농업생산성을 저해 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대규모 공동노동으로 노동 감독비용이 증가했다.

토지제도를 통해 알아 본 마오쩌둥의 국가관

농민의 토지사유는 과도기적 과정일 뿐, 궁극적으로 마오쩌둥이 원했던 공산주의와 맞지 않았고, 농민 토지사유로 인해 농업경제가 작고 분산된 소농경제로 돌아가자 생산수준이 높지 않았다. 또한, 농민들 간에도 다시 부농과 빈농의 격차가 생겨 토지소유의 편중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오쩌둥이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과도기적 단계였다. 그가 원했던 유토피아에 이르면 토지 소유가 모두 철폐되고 모든 인민이 평등한 삶을 살아가는 국가였다.


==참고자료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 신성곤 / 서해문집 
『中國全史 : 현대편』 / 백수이 / 이진복, 김진옥 / 학민사
『정통중국현대사 : 중국공산당의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 / 허원 / 사계절
『중화민국사』 / 요코야마 히로야키 / 신서원
『손중산과 근대중국 : 중국근대사의 이해』 / 김학관
『중국 혁명의 전개과정』 / 중국사 연구회 / 거름
『삼민주의』 / 손문 / 범우사
『모택동과 중국공산주의』 / 김유
『바로보는 중국 현대사 - 20세기 초에서 천안문 사태 이후까지』 / 찰리 호어 / 조남선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 야부키 스스무 / 신준수 역
『모택동사상론』 / 김충렬, 공기두
“개혁개방 이전 중국의 토지개혁경험 연구 - 농촌토지소유제 관계를 중심으로” / 박인성
“중국농촌토지개혁에 관한 연구 -토지재산권제도의 변화와 과정을 중심으로” / 왕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