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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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a0109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6월 25일 (월) 22:25 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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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晏子)

출생 ?
사망 기원전 500년

안영을 역사책에서는 안자(晏子)라고 부른다. 자는 평중(平仲)이며 춘추시대 제나라 이유(지금의 산동성 밀현) 출신이다.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500년에 죽었다. 제나라의 명문가 출신으로 아버지 안약(晏弱)이 죽은 뒤 아버지의 직위를 이어 경(卿)이 되어, 영공·장공·경공을 거치면서 관직이 상국(相國, 수상에 해당)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관중 이후 제나라가 배출한 걸출한 재상의 한 사람으로 무려 57년 동안 제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안자의 생애

제나라가 걸출한 재상

그의 정치적 입장은 인의(仁義)로 나라를 다스리고 평화로 외교한다는 '인의치국(仁義治國), 화평외교(和平外交)'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백성들을 자기 몸처럼 아꼈고, 근검절약 하는 생활에 힘썼다. 박학다식했으며 논쟁에도 능숙했다. 아부를 모르는 강직한 성품으로 늘 국군의 면전에서 어진 정치를 펴고 형벌을 줄이며 세금을 가볍게 하라고 바른 소리를 했다.

뛰어난 정치가·외교가·문학가, 안자

기원전 6세기에 활약한 안영은 외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나아가서는 정치와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그는 외교가 정치의 연장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이해했던 선구적 모략가였다. 또 외교에서 가장 필요한 유연한 자세와 날카로운 언변의 활용으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여기서는 안영의 지혜를 잘 보여주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제나라 경공은 요란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 그의 주변에는 이른바 '제나라 3걸'로 불리는 세 명의 용사가 늘 따랐다. 이들은 경공의 총애를 믿고 멋대로 횡포를 부리는 등 그 피해가 여간 큰 게 아니었다. 이에 안영은 이들을 징벌하기로 결심했다.

이때 노나라에서 국군이 방문했다. 안영은 상국의 신분으로 연회에 참석했는데, 세 용사는 칼을 찬 채 회랑 아래서 키득거리며 안영을 본체만체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안영은 뒤뜰에 복숭아가 익었으니 몇 개 따서 안주로 삼자고 제의했다. 경공은 흔쾌히 허락했고, 안영은 시종을 시켜 한 접시 따오게 했다. 이 복숭아는 희귀종이라 열매는 많이 열리지 않았지만 크기가 쟁반만 하고 색과 향이 여간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맛을 본 두 나라 정상은 침이 마르도록 맛을 칭찬했다.

이래저래 중요 인사들이 하나씩 맛을 보고 나니 쟁반에는 두 개가 남게 되었다. 안영은 경공에게 세 용사에게 내려 노고를 치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그러면서 노나라 국군도 계시고 하니 제나라 용사의 위풍과 솜씨를 한번 자랑하게 하자고 했다. 경공은 신이 나서 세 용사들을 불러서는 각자가 세운 공을 자랑해서 가장 뛰어나다고 판단되는 자에게 이 귀한 복숭아를 상으로 내리겠다고 했다.

세 용사는 우쭐거리며 각자의 공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판정을 맡은 안영은 앞 두 용사에게 상으로 복숭아를 내렸다. 그러자 복숭아를 받지 못한 나머지 한 용사가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검으로 자살했다. 그러자 두 용사도 자신들은 죽어도 함께 죽자고 맹세한 형제 사이라면서 역시 자결했다.

이렇게 해서 안영은 복숭아 두 개로 골치 아픈 세 용사를 제거했다. 이것이 저 유명한 '이도살삼사'라는 성어의 고사다.

안자의 사망

기원전 500년 안영은 처에게 가법(家法)을 바꾸지 말도록 유언하고 사망하였다. 안영이 중태에 빠졌을 때 경공은 치수 가에 나들이를 나가 있었다. 파발이 도착하여 안영의 위독을 알리자 경공은 마차에 올라서 급히 수도인 임치(臨淄)로 향했다. 경공은 마차의 속도가 느리다며 마부에게서 고삐를 뺐어 들고 스스로 말을 몰았다. 그러나 그것도 느리다고 느끼고 심지어는 마차에서 내려서 스스로 달려가다가 마차에 다시 타기를 세 번이나 반복하며 마침내 임치에 도착하였다. 경공은 바로 안영의 집에 들어가서는 안영의 시신을 껴안고 통곡했다. 근신이 "군께서 이렇듯 슬피 통곡하시는 것은 예가 아닙니다."라고 간하였으나, 경공은 "지금 예를 따질 겨를이 아니다. 내가 옛날 선생과 공부(公阜)에 놀러 갔을 때, 하루에 세 번이나 내 과실을 책망해 주었다. 이제 누가 내 과실을 바로 잡아 주겠는가. 선생이 돌아가신 것은 곧 내가 망하는 것이다. 지금 어찌 예를 따지겠는가?"라고 말하고 슬픔이 다 할때까지 곡하였다고 한다. 사후에 평(平)이라는 시호가 내려져 안평중이라고 불리게 되나 후세 사람들은 존경의 의미를 담아 안자라고 불렀다. 현재 안영의 묘지는 중국 산둥성 쯔보시에 있다.

사마천의 평가

안영은 제 환공을 보좌한 관중과 더불어 춘추시대 전체를 거론해도 결코 빠지지 않는 명재상으로 여겨졌으며, 사마천은 '사기' 열전에서 관중과 안영을 한 편으로 엮어서 열전 첫 편인 '백이열전' 바로 뒤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사마천은 사기 '관안열전'에 "안자가 제 장공이 역신에게 시해 당했을 때 그 시체 앞에서 엎드려 곡하고 예를 마치고 그대로 돌아갔으니 이것이 이른바 '의를 보고 행하지 않음은 곧 무용(無勇)'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가 간언의 말을 올릴 때는 그 군주의 안색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허물을 고칠 것을 생각한다(進思盡忠退思補過)'는 것인가. 가령 안자가 오늘날 살아있어 말채찍을 잡고 그의 수레를 몰 수 있다면 그 일은 내가 기뻐하고 흠모하는 바가 될것이다."라고 하여, 그를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안자춘추

이야기와 교훈이 내재된, 안자춘추

안자춘추(晏子春秋)는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안자의 언행을 모아 후세의 사람이 기록하여 편찬한 책으로써, 후세의 사람이 그의 일화를 모아 문답식으로 편찬한 것이다. 현행4부 총간본 등에는 내편 간 상하, 문 상하, 잡 상하의 6편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외편은 2편으로 되어있다. 모두 여덟편의 215장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이야기형식의 글이다. 즉 안자춘추는 딱딱한 언어로 이루어진 다른 유가의 경전들과 달리 안자춘추에는 이야기와 교훈이 내재되어 있으며, 주변 사건들에 대한 명쾌한 해결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그 때문에 안자의 사상에 대한 부제를 분류할 때, 질서 유지와 경을 근간으로하는 유가의 반열에 넣기도하고, 검약과 박애를 근본으로 하는 묵가의 반열에 넣기도 한다. 안자의 기발하고 번뜩이는 재치는 그 바탕이 선하고 긍정적인 데다가 인간적이고 나아가 주객 누구도 상처받지 않도록 양쪽 모두를 배려하고 인정한다. 기지와 해학이 또한 가득 담겨 있으며, 드라마처럼 기대하게 될 상쾌한 고전이다.

"景公所愛馬死欲誅圉人 晏子諫(경공소애마사욕주어인 안자간) 경공이 아끼던 말이 죽자 그 말 관리자를 죽이려 하자, 안자가 간하다."

 
— 안자춘추 내편간상 中

경공이 어인을 시켜 자기의 사랑하는 말을 돌보도록 임무를 맡겼다. 그런데 그 말이 갑자기 병들어 죽고 말았다. 경공은 노하여 칼을 가져와 그 자를 해체 하라고 하였다. 이때 안자가 저지하며 말하길 옛날 요순시대에 사람의 사지를 해체할 때 몸의 어느 부분부터 하였습니까? 경공이 끔찍하다는 듯이 안자에게 말하길 과인이 그런 일을 처음 저지르는 사람이 되겠군요. 드디어 그 일은 철회되고 말았다. 경공은 옥에 가두라는 명령을 하고 안자가 다시 나서서 말하길 말지기는 자신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죽는 것이니 청컨대 제가 임금을 위해서 따져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스스로 그 죄를 알게 한 후에 옥에 가두십시오. 경공이 허락하였다. 안자가 말하길 너의 죄는 세 가지이다. 임금이 너로 하여금 말을 기르도록 명하였는데 너는 이를 죽게하였다. 이것이 첫째 죽을 죄이다. 또 가장 아끼는 말을 죽게 하였으니 두 번째 죽을죄이다. 그리고 임금으로 하여금 그까짓 말 한 마리의 이유로 사람을 죽일 뻔하도록 하게 하였다. 백성들은 이를 듣고 반드시 우리 임금을 원망할 것이며, 제후들이 들으면, 틀림없이 우리 나라를 가벼이 보게 될 것이다. 너 하나가 임금의 말 한 마리를 죽임으로 인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백성에게는 원한이 쌓이고 이웃 나라에게는 나라의 위세가 약해지게 하였으니, 이것이 죽음에 해당하는 세 번째 죄이다. 경공은 위연히 탄식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풀어주시오! 선생께서는 풀어주시오! 제발 나의 인을 손상시키지 말아주시오! 라며 이야기는 끝이난다.

안자춘추의 저자

『안자춘추』 8권 215장을 저술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사실은 후세 사람이 그의 이름을 빌린 것이고, 대체로 안영과 동시대 사람들이 그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것을 바탕으로 후대에 다시 정리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안영의 기본 사상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관련 고사성어

귤화위지

귤화위지(橘化爲枳) : ‘귤 귤, 화할 화, 될 위, 탱자 지.’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강남에 심은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로 되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비유한 고사이다.

“"제가 듣기로는 귤이 회남(淮南)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淮北)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과실의 맛은 다릅니다. 그러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 안자曰

의기양양

의기양양(意氣揚揚) : ‘뜻 의, 기운 기, 날릴 양, 날릴 양.’

'의기가 드날리다'라는 뜻으로, 바라던 대로 이루어져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뽐내는 모양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사기(史記)》에서 유래되었다.

갈이천정

갈이천정(渴而穿井) : ‘목마를 갈, 말 이을 이, 뚫을 천, 우물 정.’

'목이 말라야만 그제서야 우물을 판다'는 뜻으로 자신에게 닥쳐오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무심하다가도 막상 급한 일이 발생하거나 필요한 일이 생기면 스스로 나서 해결하게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도살삼사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 ‘두 이, 복숭아 도, 죽일 살, 석 삼, 선비 사.’

복숭아 두 개로 선비 셋을 죽임. 매우 놀랍고도 교활한 계략을 이름.

양두구육

양두구육(羊頭狗肉) : ‘양 양, 머리 두, 개 구, 고기 육.’

양 머리에 개고기라는 뜻으로, 겉과 속이 다른 속임수를 꼬집는 말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영공(靈公)이 총애하는 첩인 융자가 남장을 하고 다니자 그걸 좋아해서 남장하는 풍습이 널리 퍼졌다. 나라에서 몇 번이고 금하려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아 안영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궁중 여인에게는 남장을 허용하면서 민간에서는 남장을 금하니 이야말로 "문밖에는 소머리를 걸어두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猶懸牛首于門而賣馬肉于內也)라며 궁중 여인의 남장부터 금하라고 진언했다. 그렇게 하니 과연 남장하는 풍습이 사라졌는데, 이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참고문헌

1. 사마천,『사기 열전』,김원중 역,민음사,2007
2. 자오촨둥,『쟁경』,노만수 역,민음사,2013
3. 임동석,『안자춘추』,동문선,1998
4. 증선지,『십팔사략』이준영 역,자유문고,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