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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선동(嘎仙洞)은 중국 [[대흥안령]](大興安嶺)산맥 북동부 [[내몽고]]자치구 어룬춘자치기(鄂伦春自治旗) 아리허(阿里河)에서 북동쪽으로 약 10킬로 위치에 있는 작은 동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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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알선동석각.jpg|300픽셀|오른쪽|섬네일|알선동 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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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선동(嘎仙洞)은 중국 [[대흥안령]](大興安嶺)산맥 북동부 [[내몽고]]자치구 어룬춘자치기(鄂伦春自治旗) 아리허(阿里河)에서 북동쪽으로 약 10킬로 눈강(嫩江)의 지류 간허(甘河)의 북안에 있는 작은 동굴이다.
 
이곳은 [[위진남북조]]시기 [[북위]](北魏)왕조를 세운 탁발부(拓跋部)의 기원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위진남북조]]시기 [[북위]](北魏)왕조를 세운 탁발부(拓跋部)의 기원지로 알려져 있다.
  
 
이 동굴은 지표에서 약 25미터 높이의 화강암 절벽에 있으며 입구는 서남쪽으로 향하고 있고, 깊이는 남북으로 92미터 폭은 동서로 약 27미터이다. 서쪽 벽에는 예서로 새겨진 명문 201자가 있는데 이는 [[북위]]의 태무제(太武帝) 4년(443년)에 사신으로 파견된 이창(李敞)이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 7월 30일 중국의 고고학자 미문평(米文平)등에 의해 발견된 이 석각의 내용은 <위서(魏書)>에 전하는 내용과 거의 일치하였고, 석각 주위에 도기 파편등이 함께 발견되어 이곳이 바로 사서에 전하던 북위의 조정(祖庭)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곳이 탁발선비(拓跋鮮卑)의 발원지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 동굴은 지표에서 약 25미터 높이의 화강암 절벽에 있으며 입구는 서남쪽으로 향하고 있고, 깊이는 남북으로 92미터 폭은 동서로 약 27미터이다. 서쪽 벽에는 예서로 새겨진 명문 201자가 있는데 이는 [[북위]]의 태무제(太武帝) 4년(443년)에 사신으로 파견된 이창(李敞)이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 7월 30일 중국의 고고학자 미문평(米文平)등에 의해 발견된 이 석각의 내용은 <위서(魏書)>에 전하는 내용과 거의 일치하였고, 석각 주위에 도기 파편등이 함께 발견되어 이곳이 바로 사서에 전하던 북위의 조정(祖庭)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곳이 탁발선비(拓跋鮮卑)의 발원지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2016년 7월 5일 (화) 17:16 판

알선동 석각

알선동(嘎仙洞)은 중국 대흥안령(大興安嶺)산맥 북동부 내몽고자치구 어룬춘자치기(鄂伦春自治旗) 아리허(阿里河)에서 북동쪽으로 약 10킬로 눈강(嫩江)의 지류 간허(甘河)의 북안에 있는 작은 동굴이다. 이곳은 위진남북조시기 북위(北魏)왕조를 세운 탁발부(拓跋部)의 기원지로 알려져 있다.

이 동굴은 지표에서 약 25미터 높이의 화강암 절벽에 있으며 입구는 서남쪽으로 향하고 있고, 깊이는 남북으로 92미터 폭은 동서로 약 27미터이다. 서쪽 벽에는 예서로 새겨진 명문 201자가 있는데 이는 북위의 태무제(太武帝) 4년(443년)에 사신으로 파견된 이창(李敞)이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 7월 30일 중국의 고고학자 미문평(米文平)등에 의해 발견된 이 석각의 내용은 <위서(魏書)>에 전하는 내용과 거의 일치하였고, 석각 주위에 도기 파편등이 함께 발견되어 이곳이 바로 사서에 전하던 북위의 조정(祖庭)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곳이 탁발선비(拓跋鮮卑)의 발원지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