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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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선사미술의 특징

선사시대 동굴벽화

선사시대 사람들의 정신세계의 내용을 가장 충실히 전해주는 자료는 그들이 동굴의 벽에 남겨 놓은 벽화나 암각, 제사유적 등이다. 이런 자료를 통해서 우리는 선사인(先史人)의 신앙의 내용이나 형태, 그리고 의식행위(意識行爲) 등을 재정립 해왔다. 인류는 문자를 가지기 전에 먼저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그림들이 형상 문자화되어 오늘날 인류가 쓰는 문자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선사인의 그림들은 문자가 없었던 시대의 정서를 시공을 초월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즉 미술의 기원은 인류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선사시대의 선사인들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도구제작 기술을 갖추고 그들을 거주지로 사용된 동굴의 암벽에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되었다.
선사미술(Prehistoric Art)은 고고학(考古學)과 선사학(先史學)이 취급하는 선사시대, 청동기시대 혹은 철기시대 미술로 구분되며, 암면채화(岩面彩畵), 암화(岩畵), 거석(巨石) 기념물, 토기, 토우, 금속 조각 등 고대 문화의 기초를 형성하는 미술 문화를 선사미술이라고 지칭한다. 선사미술은 인류의 가장 초기단계 미술로서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선사인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되었다. 선사미술은 수렵과 다산(多産)을 비는 주술적 기원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의식에서 동굴의 벽에 그리는 사람은 특정한 소수에 불과했으며, 그들만의 독창적인 표현들을 남겨 놓은 것이다.
선사미술의 특징이라면 직설적 표현과 그들의 주술적 세계관 속에 담고 있는 독특하고 개성적인 미술의 형태로서 소박하면서도 단순한 원초(原初)의 형태의 미술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들이 직접 본 것과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부분들을 거침없이 그려나가고 그것으로 인해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믿어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선사미술은 사람과 짐승, 식물, 암석 그리고 삶과 죽음의 근원체(根源體)들과의 완전한 결합에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선사미술은 그들의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명 보존 본능에서 비롯된 그들의 삶 자체였던 것이다. 이는 인간과 예술의 근본적 성격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1]

암각화에 대한 고찰

개요

프랑스 라스코동굴 벽화

암각화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회화 형식이며, 문자가 출현하기 이전의 가장 중요한 역사자료이다. 수 천 년 전, 심지어는 만 년 전에 바위 위에 새기거나 그린 그림들은 상고시대 사람들의 사회생활과 원시사회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원시 암각화가 표현한 것은 대부분 동식물, 채집과 수렵, 방목(放牧), 제사, 성교 등의 황동 장면들인데, 화법이 매우 간결하고 세련되며 질박하고 생동적이다. 많은 작품들이 놀라운 수준을 과시하며 석기시대 원시사회의 높은 예술적 성취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120여 개의 나라와 지역에서 암각화가 발견되었고, 수 백개의 거대한 바위 위에 2천 만 개에 달하는 도상과 부호가 그려져 있었다. 유명한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네이버 지식백과 라스코동굴 관련 설명) 및 중국의 내몽고(內蒙古), 영하(寧夏), 신강(新疆), 청해(靑海), 광서(廣西), 운남(雲南), 강소(江蘇) 등지의 암각화는 모두 그 옛날의 신비한 원시세계를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2]

정의

암각화(岩刻畵)란 동굴 벽이나 자역 암벽에 여러 가지 기학적인 무늬나 동물상 등을 그리거나 새겨놓은 그림을 말한다. 바위그림, 암화(岩畵), 암채화(岩彩畫)이라고 한다. 바위 표면에 도구를 사용해 어떤 형상을 새겨 놓은 것과 물감을 이용하여 그려놓은 것을 구분하여 볼 때, 전자는 '암각화'로 후자는 '암채화'로 세분하여 부를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아울러 '바위그림' 또는 '암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개념

암각화는 단순히 형태적인 요소의 그림에 그치지 않고 문자 이전의 상징적인 그림문자이자 가장 오래된 역사서라고 할 수 있겠다.

生育神 (岩刻), 네이멍구

몽골의 경우 알타이산맥[3]을 따라 암각화가 분포되어 벨트를 이루고 있는데 이곳은 고비사막 지대로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다. 즉 환경적으로 사람과 동물의 생활터로는 부적합한 공간이다. 암각화는 대체로 산의 하단부터 낭떠러지 같은 상단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있는데, 이곳에 그림을 남기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작업해야 된다.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생활터가 아닌 산지에 암각화를 남긴 것은 이것이 단순히 에술적 차원이 그림이 아닌 선사인들이 제사를 거행하기 위한 특별한 장소를 찾아 선택하였으며 암각화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하나의 행위이자 매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김정배는 암각화를 “불안정한 생활을 극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기원행위의 소산”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불안정한 생활이라 함은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생활환경과 관계가 있으며, 그러한 환경을 피하고자하는 소망이 담겨있고 이것은 암각화의 본질과 직결된다.
당시 선사인들은 자연현상에서 오는 두려움을 주술행위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였고 그 중 하나가 암각화이다. 암각화는 대상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연스럽게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다. 상징은 단순하게 대상의 대리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표상을 상징적으로 표시함으로써 그 사건이 실제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이는 초자연적인 피해로부터 자신과 종족을 보호하고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 주술신앙을 깃들여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암각화는 단순히 생활상 뿐만 아니라 선사인들의 소망이 담겨있는 주술적인 정신세계를 나타냈으며 암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한 것이다.[4]

제작 시기 및 시대별 특성

인류의 기원을 200만 전으로 추측할 수 있으나, 문화유적이 남아 있는 거은 약 2만 년 전인 구석기시대 이후이다. 그 시대 구분은,
구석기시대 (B.C 8000 ~ B.C 2000년)
신석기시대 (B.C 2000 ~ B.C 1600년)
청동기시대 (B.C 1600 ~ B.C 750년)
철기시대 (B.C 750 ~ A,D 300년)로 분류할 수 있다.

구석기시대 암각화

구석기시대 미술은 현상을 재현하며 직접적이고 순수하다. 즉, 시각적 인상의 재현에 의한 사실주의 미술로 볼 수 있다. 끊임 없이 유랑하며 도전해야 하는 생생한 현실에서 삶의 감각은 강렬해졌고, 사물을 표현하는 방법도 생명력이 넘쳐날 수 밖에 없었다. 구석기인들이 사냥하려는 동물을 벽에 그렸던 것은 그림 속의 동물을 소유한다는 의미로, 그림 속의 동물이 현실의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즉, 그림 속의 동물을 현실 안으로 끌고 나오는 세계인 것이다.

신석기시대 암각화

신석기시대에는 추상적이며 기하학적인 표현이 획일적으로 반복되며, 고정된 기호처럼 보이는 표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생명의 구체적이고 생동적 표현보다는 사물에 대한 이념이나 개념적 파악과 표현이 두드러진다. 암각화의 제작 방법에 있어서도 크게 변하여 구석기시대의 암각화를 사실주의적이라고 보았다면, 신석기시대의 암각화는 보다 표현주의적 기법(技法)이 더욱 강렬해졌으며 단순하고 단조로운 추상표현이 나타난다.

청동기시대 암각화

청동기 시대의 암각화들은 그 대상이 주로 인물, 배, 농경, 전투, 수렵, 어로 광경 등으로 후기에 들어오면서 기하학적 문양이나 단순하고 풍요한 생산을 상징하는 성혈 등의 문양으로, 그 형태와 대상물이 바뀌게 된다. 이러한 기하학적 암각화에선 동심원(同心圓)과 단순한 선각(線刻)인물이 나타나면서, 이들 후기 청동기시대의 뚜렷한 양식이 보인다.

철기시대 암각화

청동기시대와는 완전히 구분되는 다른 형태의 암각화가 철기 시대 문화기에 계속 제작되어 온다. 철기시대에 와서는 그 암각화의 대상물들이 바뀌면서 특수한 형태로 변해서, 과거엔 전혀 나타나지 않던 싸우는 전사, 기마의 무인상, 또 이동하는 행렬의 광경 등 인간 생활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또한 지도자나 무사 등으로 보이는 민족적 영웅들의 기념비적 암각화도 보인다.[5]

제작 기법

쪼아낸 암각화
갈아낸 암각화
그어 새긴 암각화

암각화란 바위의 표면을 쪼아 내거나 갈아 파거나 그어서 어떤 형상을 새겨놓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바위 표면에 도구를 사용해 형상을 새겨놓은 것도 있지만 물감을 이용해 그려놓은 것도 있다. 멀리는 유럽의 알타미라 동굴이나 라스코 동굴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으며, 가까이에는 중국이나 시베리아 각지에 분포하는 암벽 위의 물감그림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물감을 이용해 그린 그린 그림을 암각화와 구분해 암채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암각화와 암채화 두 가지를 모두 아우르는 말로 바위그림 또는 암화라고 쓸 수 있다. 따라서 암각화는 바위그림보다 하위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바위그림보다 하위 개념인 암각화라는 말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지금까지 물감을 이용한 그림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바위그림이라고 사용하는 경우 그것을 대체로 암각화를 일컫는다고 보아도 좋다.
우리가 암각화라는 한가지 표현으로 부르지만 새기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바위를 단단한 돌이나 다른 도구를 이용하여 두드려 쪼아 형상을 묘사하는 방법이 있고, 쪼아내 뒤에 그 부분을 갈아서 더 깊고 매끈하게 만드는 법이 있다. 또 날카로운 금속도구로 바위 면을 그어서 가는 석으로 형상을 묘사하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새김법을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쪼아낸 암각화(pecking), 갈아낸 암각화(grinding), 그어낸 암각화(carving)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암각화의 새김법 분류는 각각 새긴 사람들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또 그림의 형태로 구분하면 윤곽선이나 도형 내부를 여러 개의 선으로 분할해 묘사하는 방법과 윤곽선 내부를 쪼거나 갈아내 실루엣처럼 만드는 방법이 있다. 앞의 것을 선각(線刻), 뒤의 것을 면각(面刻)이라고 부른다. 중국이나 몽골 또는 시베리아 지역에서는 이 두 가지가 시대적으로 뚜렷이 구분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인 선의 관계가 비교적 분명해 대체로 면각화가 선각화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다.[6]

동북아시아의 암각화

암각화는 신대륙이나 구대륙을 막론하고 과거의 인간이 살았던 곳에는 대체로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암각화나 암화는 17세기 후반에 발견되기 시작하였으며 금세기 들어 오클라드니코프[7]에 의해 분석 분류되고 문화 성격이 정립되었다.

분포 지역

오클라드니코프는 동북아시아의 암각화를 3개의 문화 군으로 정리했다. 그 첫 번째는 예로부터 삼립 수렵인들이 이룩한 시베리아 타이가 지역의 문화 군이며, 이들 문화가 남긴 암각화는 사실적이며 밝으며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는 예술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의 문화 군은 자바이칼 지방과 몽고의 초원지대에서 발견되는 문화 군이며 여기에서는 신석기 시대 이후의 수렵, 어로, 채집 경제를 영위한 사람들의 세계를 차장볼 수 있다. 이 곳이 한때 중요한 내륙아시아 유목민의 삶의 터전이었던 것을 실질적으로 밝혀주고 있다. 또한 이들 아시아 초원 사람들이 가장 친근히 여기고 자주 취급했던 암각화의 소재가 황금의 뿔을 가진 순록이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밝혀 주었다.
세 번째의 문화 군은 아무르-우수리 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암각화 문화인데, 이 지역에 살았던 여러 주민들은 내륙 아시아 남방의 바다에서 전해온 가장 이른 시기의 문화적 고동을 받아들여 함께 지니고 있었던 사람들로서 그 복합적 문화 융화 특성은 이들에 의해 새로운 창조력으로 발전하여 아무르 강과 우수리 강 유역에 자리잡았다.

유형

동북아시아 암각화의 유형을 나누어 보면 그 첫째는 인류의 생활과 연관되는 광경 등을 묘사한 것과 동물, 식물, 그리고 사냥, 전투 등을 소재로 한, 즉 물상 자체가 암화나 암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물상(物象) 암각화들이다. 그 유형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구석기시대 암각화

동북아 지역의 구석기시대 암각화로는 레나 강 상류와 중류의 한 지류인 토코 강의 암벽 상에서 발견되며 사실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이들 구석기 시대 암각화는 그들의 눈에 비친 대상 동물을 보이는 대로 사실에 충실히 그려 놓은 것이다.

신석기시대 암각화

马鹿. 飞雁 (岩刻), 네이멍구

신석기시대의 암각화는 주로 물상(物象) 암각화이다. 이들은 타이가 지역, 몽고 지역, 아무르-우수리 강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타이가 지역에서는 큰 뿔 사슴 암각이 주로 발견되며 싸우는 들소, 뛰는 사슴, 산양, 뱀, 점박이 소, 머리부분을 칠한 사슴 등이 있다. 인물 암각에는 직접적으로 사냥하는 광경들은 없지만, 사냥의 결과를 나타내는 모습 즉, 화살을 맞은 짐승 등의 암각화를 볼 수 있다. 몽고 지역의 암각화는 동물 인물들이 주가 되고 있으며, 사실적인 암각화보다는 약간 도식화된 암각화의 특징을 가진다.

청동기시대 암각화

청동기시대의 암각화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암각화에서 가장 많은 수가 발견되었으며 분포지역 역시 가장 넓다. 보통 암각화라고 이야기될 때 그 주 대상은 거의 청동기시대의 작품이었다. 청동기시대 암각화의 대상물은 동물, 인물, 수렵 광경, 기하학적 문양, 성혈 등 여러 유형의 것이 모두 발견되며 그 특징으로는 농경과 관련된 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철기시대 및 역사시대 암각화

철기 시대와 역사 시대의 암각화에는, 금속 도구를 이용한 각화(刻畫)와 검은 사암의 표면을 연마할 때 생기는 흰 면을 이용하여 실루엣적으로 물상이나 기호를 만들어 내는 기법들이 나타난다. 물상 암각으로는 동물, 인물, 생활, 수렵, 전투광경, 행렬 등이 주 소재가 되는데, 이들 철기시대&역사시대 암각화는 아주 형식화된 도형적인 암각이 주가 되어 대체적으로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으나 생동감이나 움직임의 포착 등이 거의 없고 도식화된 암각들이 대부분이다.
두 번째는 어떤 부호나 상징적인 기호를 그려놓은 기하학 문양 암각화이다. 이 기하학문(幾何學文) 암각하는 신석기시대에서 처음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청동기시대 문화 후기에 와서 가장 많이 제작된 것들이다. 선사시대 동북아시아의 기하학문 암각화는 그 종류에 있어서나 지역적 구분을 가지고도 그 내용을 완전히 밝힐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원형, 와형, 구형, 단순선 등 다양한 기하학 문양은 신석기부터 청동기시대에 걸쳐 제작되어 왔기 때문에 그 시기 구분에 있어서는 논란들이 있다. 그러나 이 종류의 절대 다수가 청동기 문화시기에 많이 제작되어 온 것은 이미 알려져 있어서 일단 문화 시기부분은 가능하다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성혈 암각화이다. 성혈은 전 세계의 선사시대 문화유적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유형의 암각이다. 이러한 성혈 암각은 물감으로 바위나 암벽 상에 그려놓은 암화 형식과 바위나 암벽 상에 둥근 구멍을 파놓은 암각 형식의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이 두가지 유형 모두가 발견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성혈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중앙아시아 등 구대륙 전역에서 특히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서 주로 청동기 시대의 암각화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성혈은 후기 신석기 암각화에서 처음 인물과 함께 등장하지만 청동기 문화에 들어와서 인물상과 직접 연관짓지 않고 성혈만 수없이 새겨놓은 형식으로 변화하면서, 청동기 문화 유적의 대표적 암각으로 수많이 발견된다. 이러한 성혈 암각은 대체로 선사시대의 신앙과 연관되어 제작된 것으로 해석된다.[8]

중국의 암각화

狩猎 (岩刻), 宁夏(닝샤후이족자치구)

분포, 내용, 그리고 형식을 기준으로 중국의 암각화는 북방, 서남방, 동남방 세 가지 주요 체계로 분류된다.
북방 암각화의 주요 분포 장소는 헤이룽장의 무단장, Baichahe와 인산, the Great Xing'an Ranges, 보하이만 근처의 Zuozishan, 랴오닝성의 차오양, 닝샤의 허린산, 간수성의 치렌 산과 마종 산, 칭하이의 칭하이 호(湖), 후투비, 퉈커쉰현, 하미 시, 미취안 시, 쿤륜(崑崙) 산맥 등이 있다.
서남방 암각화의 주요 분포 장소는 창위안, 원안현의 마리포, 티베트의 Renmdong과 Qiaksang, 구이저우성의 Kaiyanghuamaya, 쓰촨의 Baxian country, 광시좡족자치구의 유장 등이 있다.
동남방 암각화의 주요 분포 장소는 롄윈강의 Jiangjunya, 장쑤성의 Wolonggang, 저장성의 Xianjudanzhu, 화안 현의 Xianzitan, Shimenkeng, 난징시의 Caozishan과 Nankeng, 둥산 섬의 퉁링, 주하이 구란 섬의 바오징, 스완 만의 Gaoxiongwanshan, 창저우, 홍콩의 Jiaoxizhou, 마카오의 Kaho 만 등이 있다.

舞蹈 (涂绘), 贵州(구이저우성)

중국 암벽화가 반영하는 내용은 매우 풍부하고 다채롭다. 그림 그리는 방식을 대략적으로 말하면 중국 암각화는 이미지, 그래프, 상징물, 디자인 그리고 암각화와 관련된 몇 가지 글로 구성되어 있다. 실질적인 이미지를 말하자면 그들 중 대부분은 야생동물과 가축이었으며, 일부는 식물이었고, 또 다른 일부는 인간의 형상과 인간의 탈(Masks)이었다. 게다가 그 외에도 건물, 달, 태양, 별, 구름, 손바닥 자국, 발바닥 자국, 그리고 그래프로 표현된 작은 동굴 등이 있다. 사회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사냥, 목축, 농사, 춤, 공예, 번식(인간의 성교 포함), 싸움, 그리고 전쟁 등의 생산적이고 경제적인 활동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다.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숭배하는 마음과 제물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장면들도 있다.[9]

의의 및 가치

좌 : 내몽고 음산의 암각화 <위렵>(신석기시대), 우 : 상고시기 중국의 암각화 도상

암각화는 예술적인 형상으로 모종의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그렇지만 언어와 무관하기 때문에 당연히 독음(讀音)이 없다. 게다가 암각화는 산 절벽 혹은 동굴 속 바위 위에 그려졌기 때문에 정보를 전달하는 부호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당연히 문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암각화가 자연계의 사물과 인류의 활동을 묘사한 것은 도형으로 의미를 나타낸 것이며, 사실상 일을 기록한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의 많은 암각화들이 이미 도안화·부호화되었고, 그 중 어떤 도상은 훗날의 한자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중국의 암각화는 비록 문자가 아니지만, 그것의 표의성과 도안화는 후대 문자의 형성에 중요한 의의를 가지며, 상형문자의 생산에 일정한 영감을 주었다.[10]
예술이란 시대의 상황을 가장 반영한다 할 수 있다. 또한 예술은 인간의 존재와 함께 그들의 문화 속에서 시작되고 변화하여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 언어와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선사시대부터 그림은 시각적 소통수단으로써 언어와 문자의 영역을 대신하였다. 이러한 선사시대 사람의 정신세계와 삶을 가장 충실하게 우리에게 전해주는 자료는 암각이나 암화 그리고 여러 제사 유적으로 이러한 자료를 통해 선사인들의 신앙이나 삶의 형태 등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선사미술은 비록 인류 최초의 문화 태동기이지만, 그들의 미술은 우리에게 작품 속에 깃들어 있는 근원적인 사물의 각가지 양상을 폭넓게 보여준다. 거기에는 추상과 구상, 무방과 양식화라는 두 가지 원리의 최초의 전개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인간의 삶의 가장 원초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그들의 문화인 암각화는 인간과 예술의 근본의 성격에 보다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현대 미술에서 선사시대의 생명력은 순수함과 인간 본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그 예술적 조형적 가치로도 충분히 의미를 가진다.[11]

참고문헌

단행본

  1. 한감당(韓鑒堂), 《한자문화 = The culture of Chinese characters》, 역락, 2013.
  2. 문물출판사(文物出版社 編), 《中國岩畵= The Rock arts of China》, 北京 : 文物出版社, 1993.

학술논문

  1. 김태호,「岩刻畵의 線的 形象 表現 研究」, 국내석사학위논문 中央大學校, 2001.
  2. 정혜윤,「몽골 암각화의 이미지를 응용한 패턴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 2017.
  3. 苟爱萍,「玉树岩画中的鹿图像」, 中央民族大学中国岩画研究中心 博士研究生, 2018.

각주

  1. 김태호,「岩刻畵의 線的 形象 表現 研究」, 中央大學校 석사학위논문, 2001, pp.4-6.
  2. 한감당(韓鑒堂), 《한자문화 = The culture of Chinese characters》, pp.33-34.
  3. 알타이산맥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중국에 걸친 장대한 산맥으로 좁은 뜻으로는 몽골알타이산맥과 고비알타이 산맥을 가리킨다.
  4. 정혜윤,「몽골 암각화의 이미지를 응용한 패턴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 2017, pp.3-4.
  5. 김태호, 위의 글, pp.7-10.
  6. 김태호, 위의 글, pp.10-11.
  7. 1908년 레나강 지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동북아시아의 고고학 권위자이다.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선사문화에 이바지 해오면서 방대한 결과를 세상에 남겨 놓았다.
  8. 김태호, 위의 글, pp.12-15.
  9. 문물출판사(文物出版社 編), 《中國岩畵= The Rock arts of China》, p.12.
  10. 한감당(韓鑒堂), 위의 책, p.34.
  11. 김태호, 위의 글, p.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