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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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og (토론 | 기여)님의 2016년 5월 14일 (토) 17:3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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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후의 이름은 여치(呂雉). 당대의 유명한 관상가인 아버지 여공의 뜻에 따라 (秦)의 사수(泗水) 정장(亭長) 유방 劉邦과 결혼한다.(정장(亭長)이란 그리 높은 신분이 아니었으며, 사마천여태후본기에 ‘미천한 신분’이라고 유방을 서술했던 걸 보면 정상적인 혼인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당대의 부자였던 여태후가 이 혼인에 불만을 가질 법도 하지만, 그녀는 유방에게 최선을 다해 내조한다.

후에 유방이 패(沛)지역에서 반진(反秦) 대열에 합류하자, 그녀는 집 안에서만 유방을 보필하는 것이 아니라 집 밖에서도 유방을 보필하며, 많은 수모를 겪었다. 우선 유방(劉邦)이 망산(芒山)과 탕산(碭山) 지역에 도망쳐 숨어있을 때는 몰래 그곳을 찾아가 유방을 돕고, 『史記』卷8,「高祖本紀」) 유방(劉邦)이 수배자였던 시절에는 그녀가 감옥살이를 하기도 하였다.(『史記』卷96,「張丞相列傳」) 초한(楚漢)전쟁 중에는 유방(劉邦)이 팽성(彭城)에서 항우(項羽) 군대에게 대패하였을 때 그녀는 (楚)나라 군대에게 체포되어 그 후 초한(楚漢)전쟁이 끝나기 직전까지 2년 5개월 동안 초(楚)의 포로생활을 하다 석방되기도 하였다.(『史記』 卷8,「高祖本{紀」)

(漢) 제국이 건립되어 유방(劉邦)이 황제가 되면서 그녀는 황후가 되었는데, 한나라의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힌다. 제왕(齊王) 한신(韓信)과 양왕(梁王) 팽월(彭越)을 주살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그 예이다. (『史記』卷92 ,「淮陰侯列傳」, 『史記』卷90,「魏豹彭越列傳」)

인간 돼지, 인체(人彘) 사건

흉노와의 관계

여씨의 몰락과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