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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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劉淵)은 308년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한(漢)의 황제가 되었다. 한편 동해왕 사마월의 도움으로 황제에 오른 회제(懷帝,예장왕 사마치)는 영원히 좋은 시대라는 뜻의 영가(永嘉)로 연호를 바꾸고 국정의 쇄시을 꾀했지만, 오히려 동란이 본격화돼 전란으로 빠져들어 갔다. 유연(劉淵)은 석륵을 파견해 하남, 산동과 화북을 점령했고, 310년 유연(劉淵)이 죽은 후 아들인 유총(劉聰)이 그 뒤를 이어 유요(劉曜)를 파견해 서진의 수도 낙양을 공격했다. 낙양은 311년 결국 함락되어 약탈과 살육의 장으로 변했으며, 회제는 체포되어 평양으로 호송되었다가 다음 날 살해되었고, 황후 양씨(羊氏)는 유총(劉聰)의 처가 되었다. 이를 영가의 난이라 한다. 이후 생존한 대관과 장병이 장안에서 민제(愍帝)를 세웠지만 316년 유요(劉曜)의 군대에게 함락되었고, 서진은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