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Chines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대원 울루스의 사회와 문화)
 
(사용자 2명의 중간 판 3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분류:원나라| ]]
 
[[분류:원나라| ]]
 
==개요==
 
==개요==
[[파일:카안_울루스.png|300픽셀|가운데|섬네일]]
+
[[파일:카안_울루스.png|300픽셀|오른쪽|섬네일]]
: 쿠빌라이가 1271년 수립한 중국과 몽골 초원지대, 그리고 만주와 연해주 지역을 기반으로 한 몽골족 왕조. 쿠빌라이가 칸의 자리를 놓고 계승 전쟁을 펼치는 와중에 다른 형제들과 가문들의 자치권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역이 위의 그림과 같은 범위였다. 쿠빌라이는 이 지역의 국호를 대원(몽골 말로는 다이온 예케 몽골 울루스, 대원대몽골국)이라 붙이고 지금의 북경인 대도와 카라코룸을 중심으로 이 지역들을 다스렸다.
+
쿠빌라이가 1271년 수립한 중국과 몽골 초원지대, 그리고 만주와 연해주 지역을 기반으로 한 몽골족 왕조. 쿠빌라이가 칸의 자리를 놓고 계승 전쟁을 펼치는 와중에 다른 형제들과 가문들의 자치권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역이 위의 그림과 같은 범위였다. 쿠빌라이는 이 지역의 국호를 대원(몽골 말로는 다이온 예케 몽골 울루스, 대원대몽골국)이라 붙이고 지금의 북경인 대도와 카라코룸을 중심으로 이 지역들을 다스렸다.
  
 
==몽골인의 입장에서 본 대원 울루스==
 
==몽골인의 입장에서 본 대원 울루스==
: 대원 울루스는 몽골인들의 정복에 의해 성립되었고, 기존에는 중국이 아니었던 부분까지 포함하고 있는, 세계적인 대국가였다. 대원의 칸들은 스스로를 초원 지대의 칸이자 모든 울루스들의 칸인 대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비록 다른 울루스들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못하더라도 연대가 존재했으며, 이것이 울루스들 사이의 활발한 정치, 경제, 문화적 교류를 촉발시켜 팍스 몽골리카를 탄생시켰다. 대원 울루스는 다양성과 통합을 통해 국제적인 제국을 건설했다. 상인들과 선교사들, 그리고 수많은 여행가들이 동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오가면서 문화를 교류하고 상품을 판매하였으며, 기술을 전파했다. 이를 통해 각지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
대원 울루스는 몽골인들의 정복에 의해 성립되었고, 기존에는 중국이 아니었던 부분까지 포함하고 있는, 세계적인 대국가였다. 대원의 칸들은 스스로를 초원 지대의 칸이자 모든 울루스들의 칸인 대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비록 다른 울루스들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못하더라도 연대가 존재했으며, 이것이 울루스들 사이의 활발한 정치, 경제, 문화적 교류를 촉발시켜 팍스 몽골리카를 탄생시켰다. 대원 울루스는 다양성과 통합을 통해 국제적인 제국을 건설했다. 상인들과 선교사들, 그리고 수많은 여행가들이 동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오가면서 문화를 교류하고 상품을 판매하였으며, 기술을 전파했다. 이를 통해 각지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대원 울루스의 역사]]===
 
===[[대원 울루스의 역사]]===
: 대원의 칸들은 칭기즈 칸의 직계 후손들인 황금 씨족에서 대대로 배출되었다. 쿠빌라이 칸이 즉위한 이후 그의 후손들이 칸의 자리에 올랐다. 쿠빌라이는 국호를 대원으로 정하고 여러 제도를 정비하면서 갓 정복한 중국을 안정시키려고 하였다. 그는  제국의 수도를 카라코룸에서 상도로 옮겼으며,  지금의 베이징 지역에 위치한 대도를 건설해 중심지로 삼았다. 쿠빌라이는 몽골인들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한족들은 한족의 방식으로 통제하는 것을 추구했다. 수도를 이동하는 것이나, 몽골인의 풍습을 유지하고 몽골 고유의 문자를 만들거나 티베트 불교를 숭상하는 것이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한편으로 한족들은 한족들이 기존에 살던 방식으로 살게 내버려두는 것이 그의 목표였으며, 이는 대원의 시기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하지만 쿠빌라이 사후 칸의 자리를 놓고 다툼이 계속되었고 취약한 행정력, 그리고 계속되는 지폐 남발과 물가 상승으로 인해 고통받은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대원 울루스는 주원장에게 중국을 내어주고 초원 지대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대원 울루스의 사회와 문화]]===
 
===[[대원 울루스의 사회와 문화]]===
: 쿠빌라이 칸의 대원은 몽골인과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 상품들과 문화 교류를 통해 세계 제국의 모습을 띠었으며, 이러한 ‘팍스 몽골리카(몽골족 지배 아래의 평화)’ 아래 정치‧경제‧문화‧종교 등 다방면을 아우르는 거대한 국제교류로 전 지구권이 소통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세게적인 문화 교류가 발생했고, 이것이 대원의 문화와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인의 입장에서 본 대원==
 
==한인의 입장에서 본 대원==
57번째 줄: 55번째 줄:
 
* 라시드 앗 딘, 『칸의 후예들』, 김호동 역, (주)사계절, 2005.
 
* 라시드 앗 딘, 『칸의 후예들』, 김호동 역, (주)사계절, 2005.
 
* 마르코 폴로, 김호동 역, 『동방견문록』, 사계절
 
* 마르코 폴로, 김호동 역, 『동방견문록』, 사계절
* 패트리샤 버클리 에브리,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중국사』 시공사
+
* 패트리샤 버클리 에브리,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중국사』, 시공사
 +
* 발레리 한센, 신성곤 역, 『열린 제국: 중국, 고대-1600』, 까치
  
 
==관련 문서==
 
==관련 문서==
 
*[[몽골]]
 
*[[몽골]]
 
*[[쿠릴타이]]
 
*[[쿠릴타이]]

2016년 6월 27일 (월) 17:34 기준 최신판

개요

카안 울루스.png

쿠빌라이가 1271년 수립한 중국과 몽골 초원지대, 그리고 만주와 연해주 지역을 기반으로 한 몽골족 왕조. 쿠빌라이가 칸의 자리를 놓고 계승 전쟁을 펼치는 와중에 다른 형제들과 가문들의 자치권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역이 위의 그림과 같은 범위였다. 쿠빌라이는 이 지역의 국호를 대원(몽골 말로는 다이온 예케 몽골 울루스, 대원대몽골국)이라 붙이고 지금의 북경인 대도와 카라코룸을 중심으로 이 지역들을 다스렸다.

몽골인의 입장에서 본 대원 울루스

대원 울루스는 몽골인들의 정복에 의해 성립되었고, 기존에는 중국이 아니었던 부분까지 포함하고 있는, 세계적인 대국가였다. 대원의 칸들은 스스로를 초원 지대의 칸이자 모든 울루스들의 칸인 대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비록 다른 울루스들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못하더라도 연대가 존재했으며, 이것이 울루스들 사이의 활발한 정치, 경제, 문화적 교류를 촉발시켜 팍스 몽골리카를 탄생시켰다. 대원 울루스는 다양성과 통합을 통해 국제적인 제국을 건설했다. 상인들과 선교사들, 그리고 수많은 여행가들이 동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오가면서 문화를 교류하고 상품을 판매하였으며, 기술을 전파했다. 이를 통해 각지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대원 울루스의 역사

대원 울루스의 사회와 문화

한인의 입장에서 본 대원

몽골 치하의 한인들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차별받는 존재들이었다. 북중국 지역에 살던 한인과 남중국 지역에 살던 한인인 남인은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로 대우받았고, 한인들은 정치적으로 상위 직위에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과거 제도는 대원의 후반기에나 시행되엇으며, 선발 인원도 적고 불리했다. 그리하여 지식인들의 사회적 위치가 낮아지면서 한인들의 사회와 문화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서민 문화가 꽃피었으며, 몽골인들의 후원 아래 각종 공연이 발전하고 원곡이라고 불리는 장르가 발전했다. 그러나 한인들은 몽골 제국 전역에 퍼지고 있던 문화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는 일이 우선시했다다. 몽골의 정복과 군사적 위협에 대해 보수적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대원의 한인 역사

대원의 한인 사회

대원의 한인 문화

인물

칭기스 일족의 주요 인물 계보도

  • 칭기스 칸(太祖, 1206-1227)
  • 우구데이 (太宗, 1229-1241)
  • 구육 (定宗, 1246-1248)
  • 뭉케 (憲宗, 1251-1259)
  • 쿠빌라이 (世祖, 세첸 카안, 1260-1294)
  • 티무르 (成宗, 울제이투 카안, 1294-1307)
  • 카이샹 (武宗, 쿨룩 카안, 1307-1311)
  • 아유르바르와다 (仁宗, 부얀투 카안, 1311-1320)
  • 시데발라 (英宗, 게겐 카안, 1320-1323)
  • 이순 티무르 (泰政帝, 1323-1328)
  • 아라기박 (1328)
  • 코실라 (明宗, 쿠툭투 카안, 1329)
  • 툭 티무르 (文宗, 자야투 카안, 1328-1332)
  • 이린지발 (寧宗, 1332)
  • 토곤 티무르 (順帝, 우하투 카안, 1333-1370)
  • 아유르시리다라 (1370-1378)
  • 투쿠스 티무르 (1379-1388)

참고도서

  • 김호동,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 토마스 바필드, 『위태로운 변경』
  • 김호동,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 조관희, 『조관희 교수의 중국사 강의』, 궁리
  • 신성곤·윤혜영,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서해문집
  •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 『몽골』, (주)엑셈
  • 김종래, 『유목민 이야기』, 꿈엔들
  • 박한제 외 3명, 『유라시아 천년을 가다』, 사계절
  • 김학주, 『중국 문학사』
  • 데이비드 O.모건, 『몽골족의 역사』, 권용철 역, 모노그래프, 2012.
  • 라시드 앗 딘, 『칸의 후예들』, 김호동 역, (주)사계절, 2005.
  • 마르코 폴로, 김호동 역, 『동방견문록』, 사계절
  • 패트리샤 버클리 에브리,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중국사』, 시공사
  • 발레리 한센, 신성곤 역, 『열린 제국: 중국, 고대-1600』, 까치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