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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이 지은 [[사기]] ''공자세가''를 보면 이러한 일화가 나온다. 위나라에 머문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영공이 부인과 함께 수레를 타고 환관인 옹거를 동승시킨 가운데 출타하는데, 공자는 뒷수레를 타고 따라오게 하면서 위세를 떨치며 시내를 지나갔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色을 좋아하듯 德을 좋아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하셨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 ''공자세가''를 보면 이러한 일화가 나온다. 위나라에 머문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영공이 부인과 함께 수레를 타고 환관인 옹거를 동승시킨 가운데 출타하는데, 공자는 뒷수레를 타고 따라오게 하면서 위세를 떨치며 시내를 지나갔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色을 좋아하듯 德을 좋아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하셨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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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공자가어』,이민수 역, 을유문화사(2015)
  
 
사마천,『사기세가』,김원중 역, 민음사(2015)
 
사마천,『사기세가』,김원중 역, 민음사(2015)
  
 
공자,『논어집주』,성백효 역, 전통문화연구회(2005)
 
공자,『논어집주』,성백효 역, 전통문화연구회(2005)

2018년 6월 26일 (화) 10:11 판

위령공(衛靈公)

출생 B.C 540
위나라
사망 B.C 493(추정년도)
생존시기 춘추시대
관련 활동 정치, 군사

개요

기원전 540년-기원전 493년에 실존했던 인물로 성은 희(姬)씨이고 이름은 원(元)이며 춘추시기 나라의 제 28대 군주이다. 남을 의심하기를 좋아하고 성격이 포악하여 역사적으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인재를 볼 줄 아는 안목과 사람의 능력을 잘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임용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바로 그가 등용한 세명의 대신인 공문자, 축타 그리고 왕손가의 도움으로 원활히 국정을 운행할 수 있었다.

생애

위령공은 성은 희(姬)씨이고 이름은 원(元)이며 춘추시기 위나라의 제 28대 군주이다. 위령공의 탄생배경을 살펴보면 위양공과 부인선강사이에 아들이 없어 신분이 낮은 측실인 주압(婤姶)에게서 아들 둘을 두었는데 그 중 막내아들이 원이다. 소공7년에 위양공이 죽자 원이 즉위를 하여 42년동안 위나라를 다스리니 이 사람이 곧 위령공이다. 위령공 재위 당시 비록 나라의 형세가 좋지 않아 패왕으로서 군림하지는 못했지만 그 행동거지는 다른 패권국가들의 군주에 뒤지지 않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후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공자가어의 현군편 제 13절을 보면 노애공공자에게 "오늘날의 군주들 중 누가 가장 현합니까?" 라고 묻자 공자가 "저는 아직까지 현한 군주를 보지 못했습니다만 위령공은 어떠한지요?"라고 답한 것으로 보아 위령공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그러나 공자가 위령공을 --하지 않아 몹시 분노하여 "위령공은 무도하다."라고 말하였는데 후대사람들이 그 말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해석하여 위령공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말았다.

일화

공자의 위령공에 대한 평가

공자가어에 따르면 노나라 애공이 공자에게 "오늘날 가장 현명한 군주는 누구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아직 까지 현명한 군주는 보지 못했으나 비교해 보면 위나라 영공이 현명한 줄로 압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애공이 "듣자하니 영공은 규방의 안과 밖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고 하던데(위령공의 부인 남자(南子)가 정치에 참여함을 의미) 어찌하여 그를 현명한 군주라 하십니까?" 묻자 공자가 "제가 위령공을 현군이라 칭한 까닭은 조정에서의 처신을 보고 평가한 것이지 그의 가정에서의 행실과는 무관합니다.(공자는 여자가 참정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함)"

논어에 나타난 위령공의 모습

논어 위령공편 제 1절에서 위령공이 공자에게 군사작전시 진을 치는 병법진법에 대해 묻자 공자가 "제사를 모시는 등의 예법에 관한 일은 제가 일찍이 겪어 보고 들어 알고 있지만 군대에 관한 일은 아직까지 배우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공자는 그 이튿날에 위나라를 떠났다.

사기에 나타난 위령공의 모습

사마천이 지은 사기 공자세가를 보면 이러한 일화가 나온다. 위나라에 머문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영공이 부인과 함께 수레를 타고 환관인 옹거를 동승시킨 가운데 출타하는데, 공자는 뒷수레를 타고 따라오게 하면서 위세를 떨치며 시내를 지나갔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色을 좋아하듯 德을 좋아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하셨다.

참고문헌

미상,『공자가어』,이민수 역, 을유문화사(2015)

사마천,『사기세가』,김원중 역, 민음사(2015)

공자,『논어집주』,성백효 역, 전통문화연구회(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