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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史記列傳>>, 김원중 역, 민음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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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史記列傳>>, 김원중 역, 민음사, 2015 ISBN 9788937425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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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4일 (토) 12:46 판

{{인물정보

장의

출생 ?
사망 B.C309
생존시기 전국시대


개요

장의(張儀)는 위(魏)나라 사람으로 일찍이 소진과 함께 귀곡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유세술(합종술과 연행술)을 배웠는데, 소진은 스스로 장의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장의(張儀)는 전국시대에 활동한 사상가이며 전국 6국이 진과 화친하여 공존을 꾀한 연횡책을 주장했다. 출생년도는 알려지 있지 않으며 기원전 309년 즉 진(秦)나라 무왕(武王) 2년에 위나라에서 재상이 된지 1년만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소진(蘇秦)과의 일화

장의가 유세를 위해서 돌아다닐 당시에 소진은 이미 조왕에게 합종의 약속을 받아내어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소진은 진나라가 제후를 공격하여 합종의 약속이 깨지고, 실패할 것이 두려워 진나라에서 기용될 만한 사람을 생각한 끝에 사람을 시켜 장의를 자극하여 자신에게 청을 하도록 하였다.

장의는 이에 조나라로 가서 이름을 밝히고 소진을 만나길 청했다. 소진은 문지기에게 그에게 알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한편 또 며칠 동안 떠나지 못하게 했다. 그런 다음 그를 만나서는 당 아래에 앉게 하고 머슴들이 먹는 음식을 내려주었다. 이어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그대의 재능을 가지고도 자신을 이렇게 곤욕스럽게 만들다니! 내가 그대를 부귀하게 만들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대를 거두기에 부족한 것 같네”라며 장의를 나무라며 요청을 거절하고는 장의를 떠나가게 했다.

장의는 옛 친구인 소진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반대로 치욕을 당하자, 진나라로 들어가서 조나라를 곤경에 처하게 하고자 한다.

소진은 장의가 떠난지 얼마 뒤에 그의 사인(舍人)에게 "장의는 유능한 인재이고 진나라의 권력을 잡을 수 있는자는 장의 밖에 없다. 하지만 가난하여 진 혜왕을 알현할기회가 없다. 나는 그가 작은 이익에 안주하지 않고 큰 뜻을 이루도록 일부러 모욕을 준 것이다. 그대는 나를 대신해서 그를 몰래 보살피도록 하라”라고 말하며 바로 조왕에게 말해서 돈과 마차를 내고, 사람을 시켜 장의를 가만히 따라가게 한 다음 그와 함께 먹고 자면서 차츰 그와 가까워지게 해서는 마차와 돈을 주어 쓰고 싶은 곳에 쓰게 하되 알리지 않게 했다.

마침내 장의는 진 혜왕(惠王)을 만났다. 진 혜왕은 장의를 객경(客卿)으로 삼고 제후들을 토벌하기 위한 계책을 세웠다.

장의가 진 혜왕의 객경이 되자 소진의 사인이 장의에게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장의는 “그대 덕분에 좋은 자리를 얻어 이제 그 덕에 보답하려는데 어째서 떠나시겠다는 게요?”라고 했다.

이 때에 소진의 사인은 “신은 그대를 모르고, 그대를 아는 분은 바로 소군(蘇君)이십니다. 소군께서는 진나라가 조나라를 토벌함으로써 합종이 어그러질 것을 걱정하셨는데, 그대가 아니면 진나라의 정권을 잡을 사람이 없다고 보시고, 일부러 그대를 화나게 자극한 다음 신으로 하여금 몰래 그대의 비용을 돕게 하셨습니다. 모두가 소군의 계책입니다. 지금 그대가 기용되었으니 돌아가 알리고자 합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난 장의는 소진이 있는 조나라 대신 예전 유세객 시절에 자신을 매질했던 초나라에 “내가 처음 당신과 술을 마시면서 내가 벽옥을 훔치지 않았는데 당신은 내게 매질을 했다. 당신은 네 나라를 잘 지켜라. 내가 이제 반대로 성을 훔치러 갈테니!”라는 격문을 쓴다.

연횡책(連橫策)

연횡책은 전국시대 말기 秦이 나머지 六國을 통일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나온 외교적 술수들중 장의가 주장한 술수를 일컫는 말이다.

연횡책(連橫策)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면 합종책(合縱策)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하는데, 합종책은 강대국으로 부상한 진(秦)나라를 전국六國이 견제하기 위해 실시한 외교술이다. 秦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국가 안보에 위기의식을 느낀 六國에서 수 많은 유세객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귀곡 선생의 제자인 소진(蘇秦)이 합종책을 주장한다. 소진은 六國간의 소모전이 진(秦)에만 이득이 되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진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秦나라 밑에서 쇠꼬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자'고 제창하면서 합종책을 주장했다. 여기서 등장한 사자성어가 계구우후(鷄口牛後)이다. 소진은 합종책을 실행하기 위해서 연(燕)의 문후를 설득하고 韓과 魏, 齊와 楚를 차례로 설득하여 결국 합종책을 완성했다. 소진은 이 합종연합의 장이 되어 육국의 재상을 겸하였다.

이러한 합종책에 맞서 등장한 외교적 전략이 연횡책이다. 연횡책은 소진의 동문, 즉 귀곡선생의 제자이자 소진의 친구인 장의(張儀)에 의해서 실행되어진 외교술이다. 장의는 秦의 재상이 되어 육국의 합종책을 무너뜨리고 각 국을 설득해 진과 동맹을 맺게끔 하는 연횡책을 구사한다.

장의는 합종책에서 楚를 먼저 이탈시키고, 이어 韓과 齊, 趙, 燕을 설득해 연횡책을 실행했다.

합종책이 진을 서쪽에 두고 동쪽의 나머지 육국들이 세로의 형태로 연합한 것이라면, 연횡책은 서쪽의 강대국 진과 각 육국들이 가로로 동맹을 맺은 형태이다. 결국 연횡책의 결과 秦은 가까이 있는 나라부터 먼저 공략한 '遠交近攻’의 술책으로 韓과 魏를 먼저 공략하고 趙와 楚와는 화친을 도모해 韓과 魏를 고립시켰다. 이러한 방법을 바탕으로 진은 천하통일을 달성한다.

참고문헌

사마천, <<史記列傳>>, 김원중 역, 민음사, 2015 ISBN 9788937425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