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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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lmonde (토론 | 기여)님의 2017년 6월 25일 (일) 20:1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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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조고(趙高, 기원전 258년 ~ 기원전 207년)는 중국 전국 시대(戰國 時代) 말기부터 전국 시대를 통일한 진(秦) 시대까지 살았던 환관이자 정치가이다. 중국 역사상 최악의 환관이라는 평가가 있다.

주요 사건

국서를 조작하다

조고는 진시황제를 모시던 환관으로 시황제에게 총애를 받았다. 당시 진시황은 모두 20여 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는데, 병세가 매우 깊어지자 그는 조고에게 함양으로 돌아와 자신의 장래를 주관하라는 조서를 써 장자 부소에게 보내게 하였다. 국서를 봉하였으나 사자에게 미처 건네주기 전에 진시황이 죽었기 때문에 국서와 옥새는 모두 조고의 수중에 있었다. 그때 진시황의 죽음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유일한 아들 호해, 승상 이사, 조고 및 그 밖에 진시황이 총애하던 내시 등을 포함해서 5~6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군신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조고는 호해와 승상 이사와 함께 조서를 조작하여 호해를 태자로 세웠고, 장자 부소에게 내린 국서도 다시 만들었다. 다음은 국서의 내용이다.

“짐이 천하를 순행하면서 명산의 귀신들을 위해 사당을 짓고 내 수명을 빌고 있다. 지금 부소는 장군 몽염과 함께 수십만의 군사들을 이끌고 변경에 주둔하기를 10년이 넘었건만 앞으로 전진하지도 못하고 수많은 군사들만 잃어 한 뼘의 강토도 넓히지 못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여러 번 상소를 올려 내가 하는 일을 비방하면서 감군의 일을 그만두고 돌아와 태자가 되지 못함을 매일 밤마다 원망하고 있다. 부소는 불효했으니 이에 칼을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하라! 장군 몽염은 부소와 변경에 거하면서 마땅히 그가 도모하고 있는 바를 알고 있었음에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했으니 불충을 행했다. 이에 죽음을 내린다. 군사들은 비장(裨將) 왕리(王離)에게 넘기라!”

막대한 권력을 쥐다

함양에 당도한 호해, 이사, 조고 세 사람은 호해를 이세황제로 세웠다. 조고는 랑중령이 되어 이세 황제의 곁에서 떠나지 않고 국사를 전결하였다. 이세 황제는 종종 조고에게 자문을 구하였는데, 조고는 이세 황제를 온갖 환락 속에 빠뜨리고 교묘한 술책을 사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끔 만들었다. 그 결과로 황제는 법을 다시 고치고 군신들과 여러 공자들에게 죄를 주어 조고로 하여금 그 죄를 국문토록 하였다. 조고는 몽의 등의 대신들을 살해하고 공자 20명을 잡아 함양의 시정에서 참수시켰고, 공주 10명을 두현에서 사지를 찢어 죽였다. 그들의 재물들은 모두 현관에서 몰수되었고, 연좌되어 죽은 자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갈수록 대신들의 원한은 깊어졌고, 이에 대신들이 입조하여 정사를 논하다가 자신을 헐뜯어 나쁘게 말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한 조고는

“천자는 존귀한 이유는 군신들이 소리를 들을 수 있으나 그 존안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르기를 짐(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나이가 아직 젊어 모든 일에 통할 수 없습니다. 지금 조정에 앉아서 견책하고 처리하는 일이 마땅하지 못하게 되는 사안이 있게 되면 그것은 즉 대신들에게 폐하의 단점을 보이게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하에 폐하의 신명함을 천하에 보이고자 하는 일에 반하는 일이 됩니다. 따라서 폐하께서는 궁궐의 깊은 곳에서 편히 거하시어 신과 시중 및 법에 밝은 자들만을 곁에 두고 처리할 일이 생기면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대신들은 감히 의심스러운 일들을 상주하지 못하게 되어 천하는 폐하를 성군이라고 칭송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이세 황제는 조고의 말을 따라 곧바로 조정에 임하지 않고 대신들을 피해 궁궐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조고가 항상 이세 황제의 곁에서 시중하여 일을 처리함으로 해서 진나라의 조정 일은 모두 조고가 결정하게 되었다. 이사가 황제에게 조고에 대한 고발을 쓴 서장을 보내었으나, 도리어 조고가 이사의 죄상을 심문하게 되었고 고문 끝에 반역을 저지르려고 했다는 허위 자백을 받아 가족과 함께 숙청하였다. 이에 대해 이세 황제는 “조고가 아니었다면 승상에게 하마터면 속을 뻔했구나!”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이후

이세 황제는 매일 활을 들고 사냥을 나가 놀다가 어느 날 길을 잘못 들어 상림원으로 들어온 행인을 활로 쏘아 죽였다. 조고가 그의 사위인 함양령(咸陽令) 염락(閻樂)을 시켜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도적이 사람을 죽여 상림원으로 옮겨 놓았다고 탄핵하도록 했다. 조고는 이세에게 무고한 사람을 죽였으니 재앙이 들이닥칠 것이라고 말하며 멀리 떨어진 별궁으로 몸을 피할 것을 간하였다. 이에 이세 황제는 즉시 거처를 옮겼는데, 3일째 되는 날 조고가 거짓 조칙으로 위병들에게 명을 내려 모두 소복을 입혀 이끌고 내궁으로 들어와 이세에게 도적떼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고했다. 그러면서 조고는 이세 황제를 겁박하여 자살하도록 만든 뒤 옥새를 빼앗았다. 조고는 몇 번이고 옥좌에 앉으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전당이 무너지려고 했다고 한다. 조고는 하늘의 명이 자기에게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백관들도 허락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그 즉시 시황의 동생을 불러 옥새를 넘겼다. 자영(子嬰)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매우 두려워하여 병을 핑계대고 정사에 임하지 않고 환관 한담 및 그의 아들들과 함께 조고를 살해하기 위해 모의하였다. 조고가 알현을 청하자 자영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어 그를 불러 한담으로 하여금 찔러 죽이고 그 삼족을 멸족시키도록 하였다.


관련된 사자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으로,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휘두르는 경우를 말한다. 이사가 죽자 조고는 중승상에 임명되어 진의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전결하게 되었다. 자신의 권세가 막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조고가 하루는 사슴 한 마리를 가지고 와 황제한테 말을 한 마리 바치겠다고 말하였다. 이세는 이것은 사슴이지 않냐고 조정의 대신들에게 물었으나 그들은 조고를 두려워하여 모두 말이라고 대답하였다. 간혹 의지를 굽히지 않고 사슴이라고 대답하는 자가 있었는데, 조고는 이들을 기억하여 죄를 씌워 죽여 버렸다.

참고문헌

사마천, 『사기열전』, 김원중 역, 민음사(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