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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9일 (월) 21:11 판

중추절 월병.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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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음력 8월 15일
호칭 중추절, 단원절(團圓節)
풍습 달맞이, 등놀이, 월병먹기 등



중추절의 유래

옛날 옥황상제 아들들의 장난으로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떠올랐다. 강은 마르고 땅은 불타 들어가 사람들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보다못한 옥황상제가 예(羿)를 보내 아들들의 장난을 멈추게 하였다. 하지만 옥황상제의 아들들은 막무가내였다. 화가 난 예가 명사수의 솜씨를 발휘하여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하늘에서 떨어뜨렸다. 그나마 하나의 태양이라도 남게 된 것은 그의 부인인 항아와 땅위의 사람들이 애걸하였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옥황상제는 대노하였다. 장난을 멈추게 하라 하였는데 아들 아홉을 죽인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벌로 예와 항아는 인간 세상에 남겨졌다. 이를 동정한 서왕모(西王母)가 예에게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약을 건네 주었다. 그런데 어느날 밤 항아가 혼자 몰래 그것을 먹어 버렸다. 하늘나라로 올라 가던 항아는 남편을 속인 죄로 비웃음을 받을까 두려워 달로 달아났다. 그리고는 거기에 광한궁(廣寒宮)을 짓고 월신이 되었다고 한다. 항아가 달로 달아난 날이 중추절이어서, 이 날 달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또한 아름다운 달빛 아래에서 달을 감상하며 소원을 비는 것도 중추절에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을 상월(賞月)이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집밖 출입이 부자연스러웠던 부녀자들이 달구경을 핑계로 바깥 나들이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는 교외나 해변에서 달을 맞이하며 그간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망중한(忙中閑)의 시간이기도 하다.


중추절의 풍습

중추절에 하는 가장 대표적인 놀이는 달맞이이다. 달맞이를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달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달을 감상하며 소원을 비는 것이다. 달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차리는 제사상에는 향초를 피우고 갖가지 음식을 놓는데 단합과 화합을 상징하는 월병[月饼]이나 수박 같은 둥근 과일을 놓는다. 이때 수박은 연꽃처럼 모양을 내 제사상에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옛날에는 가족들과 모여 달빛이 비추는 곳에 제사상을 놓고 제사를 지낸 후 월병을 모든 가족 인원수대로 똑같이 잘라 나눠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달에 제사를 지내는 것 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모여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것이 더욱 일반화 되었다. 주로 가족의 화목과 단합, 건강과 행복을 빈다. 달에 제사를 지내는 것 보다 달을 감상하고 즐기는 것이 유행하게 된 것은 당(唐)나라 때부터이다. 문학이 발달했던 시대에 많은 시인들이 달빛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를 읊고 쓰면서 백성들 사이에서도 중추절에 달을 감상하는 풍습이 보편화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또한 등놀이 또한 중추절의 대표적 풍습인데, 명·청나라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중추절 당일 밤에 등놀이를 하며 주로 중국의 남쪽 지역에서 행해진다. 특히 원소절(元宵節) 때 행하는 등놀이와는 달리 보탑모양의 등을 사용한다.


관련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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