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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형벌은 현대에서는 특별예방과 일반예방의 차원에서 논의 되지만, 고대의 형벌의 목적은 복수와 응보의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복수와 응보는 유교의 가치체계와 융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국가와 사회의 권력관계 속에서 유교의 가치체계가 오랜 기간 오랜 기간 중국사회의 중심적 가치로  실현 되었다. 유교는 인간의 보편가치를 드러내기도 하였지만, 권력자의 자의성과 유교자체의 가치보호에 따른 사형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다만 이러한 복수와 응보가 인간과 사회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하게 다루어지지 않으면 매우 치명적인 결과와 더 많은 피해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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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형벌은 현대에서는 특별예방과 일반예방의 차원에서 논의 되지만, 고대의 형벌의 목적은 복수와 응보의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복수와 응보는 유교의 가치체계와 융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국가와 사회의 권력관계 속에서 유교의 가치체계가 오랜 기간 중국사회의 중심적 가치로  실현 되었다. 유교는 인간의 보편가치를 드러내기도 하였지만, 권력자의 자의성과 유교자체의 가치보호에 따른 사형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다만 이러한 복수와 응보가 인간과 사회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하게 다루어지지 않으면 매우 치명적인 결과와 더 많은 피해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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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5일 (화) 17:31 판

진나라 형벌제도에 미치는 법가의 법률주의

성악설로 본 법가의 법률

모든 사람들이 교화가 가능하다는 유가의 개념과는 대조적으로, 법가는 사람이 근본적으로 악하다는 것을 믿었다. 그들의 주요한 관심은 주로 악한 행위이며, 법가의 주요한 법의 개념은 악을 막는 데 있지 좋은 행위를 격려하는데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와 같이 법가는 주로 처벌의 개념과 함께 하였다. 법가에 있어는 도덕적 감화가 사회질서를 결정할 수 있었다든가, 지배자의 덕이 사회를 변화시키거나, 질서를 만들어 내거나 무질서를 만들어 내거나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가에게는 통일된 법은 국가가 통치하기 위해서이고 법은 모든 이에게 보편적으로 적용가능 해야 한다. 보통 인용되는 정부에 대한 법가의 생각은 가깝거나 멀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법에 의해 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법 앞의 평등

법가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귀한 자와 천한자의 사회적 차별을 반대하지 않았으며, 귀한 자와 통치자의 복권을 거부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법가의 생각은 국가통치와 그것은 무관하거나 오히려 통치에 방해가 된다는 점을 고려는 했지만 뛰어넘지는 못하였다.

법가에게서 법 앞에 평등이라는 것은 하나의 특별한 함축적 의미를 가졌다.

'통치자는 법을 창조하고, 신하는 법을 지키고, 백성은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통치자. 신하, 뛰어난 이, 열등한 이, 귀한 이, 천한 이 모두가 법에 종속된다.'

법가의 이론은 왕의 지위와 특권을 존중했다는 점이며, 권위자의 정책을 지지했다는 점이다. 또한 법가가 법을 수단, 규칙, 조문화된 책과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처벌을 강조하고, '악법'이 '무법'보다는 낫다는 믿을 가졌다. 이러한 개념은 인간본성이 본질적으로 나쁘다는 믿음에서 도출되며, 강제력과 힘이 폭력을 잠재울 수 있으며, 친절함과 연악함은 사회 무정부 상태를 막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법가인 한비자는 일찍이 말하길 '엄격한 처벌과 무거운 형벌을 통해서만이 국가업무를 운영할 수 있다.'고 하였고 상앙은 '무거운 형벌을 부과하는 것 외에는 범죄를 종식시킬 수 있는 기초는 없다'라고 하였다. 법가는 '국가에 의해 부과된 질서가 법이며 이는 인간의 탐익추구와 해를 피하는 본성을 근거로 한 개인의 욕구를 억제시킬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법가들은 엄격한 규율과 통제, 행정법의 세밀한 복합체계 설림을 중요시하였다. 법가들은 유가의 덕에 의한 정치를 거부하였고, 힘과 공포는 통치자가 국가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하였다.

춘추

노나라의 역사서

노나라의 역사서로 이 역사서만이 남아져 현대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이 중에서도 남아있는 부분은 노나라의 은공 원년부터 애공 14년까지 240년간, 12대 뿐이다.

미언대의, 춘추의 의

춘추의 의라는 것은 책 춘추에 스며든 이념, 바로 미언대의라고 할 수 있다. 노나라 연대기 춘추는 노나라의 대신이었던 공자가 1자 1구에 대한 세세한 신경을 서가며 첨삭을 하고, 그리하여 그의 독자자거인 이념을 수사법의 미묘한 차이에 담은 것이며, 사소한 어휘의 차이에도 사실은 심오한 의미가 있다는 관점이 생겨났다. 이것을 미언대의라 한다.

춘추공양전

춘추의 의를 해석한 책은 전이라 불렸고 오늘날 춘추좌시전, 춘추공양전, 춘추곡양전이라는 이름의 3가지 전이 내려온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춘추공양전이었다.

춘추공양전의 두가지의 예를 보자.

진나라의 문공은 조나라의 정벌을 꾀하고 있는 와중에 조나라와 진나랑 사이에 있는 위나라가 진나라에게 통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자, 문공은 우선 위나라를 정벌했다. 하지만 공양전에는 진나라의 문공이 조나라를 공격하다, 문공이 위나라를 정벌하다가 나란히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부자연스러움 속에 공양전의 춘추의 대의가 있다. 문공이 조나라를 공격하지 않았지만 미연으로 작성하지 않는다. 사실 그렇다고 해도 조나라를 공격하다는 사항이 완결, 성취되었다고 간주한다. 왜냐하면 정의에 기초한 문공의 심정을 드러내서 행위가 실현된 것으로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뜻이 미쳤다란 좋은 의지에 기초에 행하려고 한, 혹은 행하려고 의도된 행위에 대해, 비록 그것이 달성되지 못했더라도 이미 행위가 되었다고 쓰는 필법이다.

죽음에 임박한 장공은 그 전부터 그의 아들 반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한다. 그러나 장공의 형제인 숙아라는 자가 자신의 다른 형제인 경보를 옹립하려고 하는 기미가 보이자 막냇동생인 계우에게 반을 부타간다. 숙아에게서 반란의 조짐을 본 계우는 장공의 뜻을 받들어 숙아에게 독을 주어 자살을 강요한다.

-계자를 위해서 살이란 어휘를 피하고자 하는데
-왜 계자를 위해 회피했는가
-계자가 나쁜 일을 막았다.

계자가 숙아에 의해 모반이 일어나는 나쁜 일을 막았으므로, 그의 선행을 찬미하기 위해 굳이 "죽였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앞에서 말한 숙아에게 독을 주어 자살을 강요한 경위를 기록하고, '군친에게는 거스르려고 해서는 안된다. 거스르려고 하면 주살한다' 라는 춘추의 의로 마무리된다.

앞에서 본 그뜻이 미치다가 미처 완수되지 못한 선의의 달성이라고 한다면, 거스르려고 하면 주살한다는 것은 미처 실행하지 못한 단계에서의 악의의 차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은 모두 의식과 심정에 기초해 내려진 판단이고, 공양전의 세계에서 내려진 조치였다. 이렇게 공양전의 필법은 달성하지 못한 좋은 의지는 이미 완수한 것으로 간주하여 실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대우해주고 나쁜 의도는 비록 계획 단계에만 머물러도 이미 범행을 저지른 것 같이 취급하여 처벌하는, 즉 모든 기준을 심정에 두었다.

춘추의 의로 보는 범죄의 성립

범죄의 시제를 범죄의 발생, 예비, 착수, 완수 등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제를 심정에 대입해서 보면 발생과 소멸 이외에는 적용 할 수 밖에 없다. 심정을 중시하고, 공양전의 의도처럼 의도한 것과 실행한 것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논단의 기준은 동기밖에 없다. 따라서 춘추의 의에서는 음모, 미수, 기수 모두 형량의 차이가 없게 된다. 따라서 동기 중심주의-주관주의적 형법해석 및 양형의 불변성은 공양전의 해석에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밑의 법률단문에 나온 예시를 보자

문건을 결하였다면 속경에 처한다.
자물쇠를 억지로 열고자 해서 이것을 연 경우를 결이라 한다. 그러면 미처 열지 못한 경우도 결이라 할까? 열려고 했으나 열지 못한 채 도망가서 하루만에 붙잡힌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이것을 열려고 했고 도둑질이 목적이었다면, 열지 못한채 도망갔거나 열려고 하다가 잡힌 경우 모두 속경에 처한다. 

한눈에 알 수 있듯이 이것은 미수와 기수에 대한 판결이다. 자물쇠를 연 경우 속경이라는 형에 처해진다. 결은 일반적으로 이미 문을 연 경우고 기수단계를 나타난다. 그러나 미수라도 도둑질이 목적이었다면 결이라 하여 결국 기수한 것과 똑같이 간주했다. 그리고 미수나 기수 양자 사이간에 형량 차이가 없었다.

견지의 법

인식과 실행에는 차이가 없다는 주장에서 나온 법, 즉 범행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발하지 않은 것은 그것을 시인하고 같이 범행한 것과 같다라는 것이 견지의 법이다. 이것은 분서령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천하에 시경 서경 백가서를 보관하는 자들은 지위를 막론하고 이것들을 모두 불태워라. 시경과 서경을 읽는 자가 있으면 기시에 처하고, 옛일을 들어 지금 일을 비판하는 자는 족형에 처하라. 관리들 중 알고 있으면서 잡아들이지 않으면 같은 죄로 처벌하라 30일 안에 불태우지 않으면 경성단에 처하라.....후략

여기서 관리가 알고도 잡아들이지 않으면 같은 죄를 준다는 분서령의 엄격함을 강조하려는 것도 아니고, 또 관리들에 대해 법령을 철저히 지키라고 특별히 내린 규정도 아니다. 진율의 일리반적인 이념상 당연히 부가되어야 할 규정이었다. 여기서 알수 있듯이 진율의 흐르는 형벌 이념은 원심정죄(즉, 마음을 살펴서 죄를 정한다.)를 바탕으로 한다.

형벌의 목적

현대의 형벌은 현대에서는 특별예방과 일반예방의 차원에서 논의 되지만, 고대의 형벌의 목적은 복수와 응보의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복수와 응보는 유교의 가치체계와 융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국가와 사회의 권력관계 속에서 유교의 가치체계가 오랜 기간 중국사회의 중심적 가치로 실현 되었다. 유교는 인간의 보편가치를 드러내기도 하였지만, 권력자의 자의성과 유교자체의 가치보호에 따른 사형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다만 이러한 복수와 응보가 인간과 사회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하게 다루어지지 않으면 매우 치명적인 결과와 더 많은 피해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형벌의 종류

진나라에서는 국가가 제정한 형벌체계를 사형, 자유형, 재산형 세가지로 나누었다. 자유형이란, 자유를 구속하고 감옥에 감금하는 형으로 강제 노동형 또는 노역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구금만 해두는 형, 즉 노동을 수반하지 않는 금고형은 원칙적으로 없었다. 금고라는 이름의 형벌은 있었지만, 종신 혹은 여러 대에 걸쳐 관리가 되는 것을 금지하는 신분상의 형벌이었다. 그리고 재산형은 죄값에 해당하는 무기나 현금을 바치는 것이었는데, 일반 백성들은 스스로 무기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이후에는 무기를 만드는 노역형과 크게 차이가 없어졌다.

사형

사형의 종류는 두가지로 요참[1]과 기시[2]로 나눌 수 있다. 요참은 허리를 절단하는 형이고 기시는 목을 자르는 형이다. 형량의 크기는 고통의 크기와 비례해서 요참이 기시보다 무거웠다고 한다. 즉, 허리를 잘리는 것이 목을 잘리는 것보다 고통이 더했기 때문에 생긴 형의 차등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요참형이 적용된 경우 죄인의 가족도 같이 처벌하는 연좌제[3]가 적용된 반면 기시는 그렇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연좌로 가족도 처벌되는 경우 가족은 기시가 적용되었다.
요참과 기시는 죄가 어느정도 중한 지에 따라 달리 적용되었다. 요참은 대역부도죄[4]를 범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특별한 처형방법이다. 대역부도의 경우 죄가 중하다고 여겨 범죄자 본인은 요참에 처하고, 부모, 처자, 형제는 연좌제에 따라 모두 기시에 처했다. 대역부도는 한 가지의 범죄명이 아니라 몇 가지 죄를 총칭해서 부르는 것으로, 황제와 국가에 대한 반역 행위를 하거나, 황제를 속이거나, 황제와 국정을 비방하거나, 국가 전복을 도모하는 등의 행위가 해당된다. 부도죄 대역부도에 비해 한단계 가벼운 죄로, 글자 그대로 인륜도덕에 위배되는 행동을 의미한다. 부도죄는 국정을 혼란하게 만드는 언행, 거액을 횡령하고 관비를 낭비하는 부정행위, 황제의 은혜를 져버리는 행위를 했을 경우에 해당한다. 부도죄는 일반적으로 기시형이 적용되었다
살인을 한 경우에도 주로 기시형에 처했는데, 살인을 한 경우 죽음으로 죄를 대신하는 점은 당시 동서양을 불문하고 하나의 보편된 원칙이었다. 그래서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 상처를 입힌 자는 형벌을 내렸다. ‘사람을 죽인 자는 죽어야 하고, 사람을 다치게 한 자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 라는 말은 여씨춘추 거사편에도 묵자의 법으로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면 살인은 마땅히 사형으로 집행한다는 원칙은 춘추전국기부터 계속 내려져 오는 불문율이었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시형은 살인죄를 저질렀을 경우 가해지는 형벌이었지만, 종묘의 물건을 훔치거나 강도 집단의 우두머리와 같이 죄질이 중한 경우에는 기시형이 적용되었다. 수호지 진간 중에서도 법률답문 속에는 기시형을 적용한 두가지 사례가 적혀있다.
사오인 갑에게는 자식이 없어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들여 함께 살았다. 이 양자를 살해한 경우 기시형을 내린다. -법률답문-
아비가 다른 형제가 서로 간통한 경우는 처분을 어떻게 하는가? 기시형이다. -법률답문-
이외에도 머리를 베어 높은 곳에 매달던 형벌인 효수[5], 거리에서 사형을 집행하고 그 시체를 그대로 내버려 두는 형벌인 시세[6], 옛날 죄인의 사지를 다섯 대의 수레에 나누어 묶고 찢어 죽이는 형벌인 거열[7], 사지를 찢는 형벌인 책[8], 익사 시켜 죽이는 형벌인 정살[9], 산채로 묻는 형벌인 생매[10], 교살하여 죽이는 형벌인 교[11]등이 있었다.

육형

진나라에는 신체에 손상을 가하는 형벌인 육형[12]이 존재했다. 육형의 종류로는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경[13], 코를 베는 형벌인 의[14], 그리고 발뒷꿈치를 자르는 형벌인 월(참지)[15], 생식기를 거세하는 궁형[16]이 있었다. 이 네가지 육형은 하상수대부터 전해내려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궁형을 받은 죄수만 70여 만여명에 이르렀다고 사기에서 밝히고 있다. 그리고 발뒷꿈치를 자르는 월은 다시 참좌지[17]와 참우지[18]로 나뉘었다. 실제로 수호지 진간에서 이 경, 의, 월 세종류의 육형이 확인되었고, 사기 진시황본기에서 궁형을 확일 할 수 있었다.
진나라의 육형은 성단, 귀신, 예신 등의 노역형이 수반되었는데, 즉 경,의,월 (진나라 당시에는 참좌지, 참우지라 불렸다), 궁형과 같은 육형과 성단, 귀신, 예신, 사구를 서로 짝지은 것이 진나라 노역형의 체계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경형과 성단이 합쳐진 형벌은 경성단이라고 하고 육형이 포함되지 않는 성단은 완성단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형벌의 이름이 나타났지만 육형이 포함되지 않은 형벌은 완성단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완사구는 전간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반적인 육형은 경형에 해당하고 이보다 더 무거운 의형과 참지형은 중형에 처해진 때만 적용하였다. 그리고 참지형과 의형은 단독으로 나오기 보다는 경형의 부가형으로 나타난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도[19] (경찰관의 일종)가 절도를 범한 경우, 죄를 더하는 것에 해당한다. -법률답문-
경찰관의 일종인 해도가 범죄를 저지를 경우, 일반인이 범죄를 저지를 때 보다 중형을 가해야하기 때문에, 부가형으로 의형이나 참지형이 더해질 수 있다.
또한 5명이 집단으로 함께 절도를 하고, 장물이 1전 이상인 경우, 참좌지+경성단에 처한다. 하지만 5명 미만일 때, 장물이 1전 이상인 경우는 의+경성단에 처하고, 220~660전은 경성단에 처한다. -법률답문-
일반적으로 절도의 경우에는 육형 중에서도 가장 강도가 낮은 경형이 적용되었다. 하지만 절도액이 660전 이상일 때에는, 의형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저지른 범죄일 경우, 한 사람이 죄를 저지른 것보다 형을 부가하기 위해 1전 이상만 되더라도 의형이 더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강제노동형

진간에서 볼 수 있는 형벌 가운데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강제노동형이다. 강제 노동형은 육형이 부과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모든 형벌은 정해진 형기가 없었다. 육형이 부과되지 않는 강제노동형은 성단형, 귀신형, 예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성단형은 변방지역의 성벽의 수리와 경비를 맡아 이른 아침부터 야간까지 내리 복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자들에게는 성단 대신 곡물을 탈곡하는 용이라는 노역형이 내려졌다. 귀신형은 종묘의 혼령을 제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작과 불살개를 모아 운반하고 산나무를 베는 노역형으로, 여자의 경우 제사에 사용할 순백미를 선별하는 백찬형에 복역하게 하였다. 예신형은 관청에서 잡일을 하던 노동형이며, 여자는 예첩이라 불리는 관청의 잡역으로서 형이 부과되었다. 육형이 부과되는 강제 노동형은 모두 경형이 추가된 것으로 경성단형, 경귀신형, 경예신형이 있었다.

재산형

재산형이란 벌금형을 대상으로 한다. 죄를 현금이나 물품으로 갚는 형벌이다. 진나라의 벌금형은 '자'라고 불렸고, 벌금으로 납입해야 하는 것은 '갑[20](갑옷)'이나 '순[21](방패)' 등의 무기였고, 벌금의 단위는 자 1갑, 자 2순 등으로 표기했다. 자갑과 자순은 수호지 진간 중에서 성단 등의 노역형 만큼이나 자주 등장한다.


말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 상처가 한 마디이면 자 1순, 두 마디이면 자 2순, 두마디 이상이면 자 1갑. -진율잡초-
다른 사람의 가축이 집으로 들어와 몽둥이로 때려잡았다. 동물의 가격은 250전이었다.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 자 2갑에 처한다.
진소왕이 병이 들었다. 백성들은 마을마다 제물로 소를 준비하여, 왕의 병이 낫기를 빌었다. .. 왕이 사람을 시켜 이를 확인하게 했더니 과연 말한 대로 사실이었다.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사람마다 자 2갑을 내어서, 저렇게 기원의식을 행하니 정말 나를 위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인도 법을 어기면서까지 보답을 하려고 한다면 법이 바로 서지 않는다. 법이 바로 서지 않으면 질서가 없어져 나라가 망한다. 벌로 자 2갑을 내도록 하여 질서를 세워 더불어 나라를 보존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진율에는 자 2갑, 자 1갑, 자 2순, 자 1순 순서로 4단계의 벌금형이 있다. 예를 들어 절도죄의 경우, 그 형량은 훔친 물건의 가격에 의해 가장 무거운 것은 경성단, 가장 가벼운 것은 자 1순으로 순서가 매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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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물가 형벌


660전 이상
550-660전
440-550전
330-440전
220-330전
110-220전
경성단
경귀신
경예신
완성단
완귀신
완예신
노역형


110-88전
55-88전
22-55전
1-22전
자2갑
자 1갑
자 2순
자 1순
재산형



이 벌금형을 살펴보면 자 1갑, 자 1순 등의 단어를 통해 무기를 바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형을 받은 자가 실제로 갑옷을 납입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범죄자가 벌금으로 무기를 마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해석이다. 따라서 일번적으로 벌금은 노동으로 대신했다. 이것을 거자, 즉 노동으로 지불하는 벌금이라고 진율에 되어있다. 하루 노역 단가는 8전이었다. 하루 노역을 하면 8전을 벌금으로 바치는 셈이었다. 하지만 1갑과 1순이 몇 전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재산형을 통해 처음으로 노역형에 형기가 정해지게 되었다. 노역의 경중에서 노역의 시간으로 변한 것이다. 따라서 이후 벌금형은 노역형의 일부로 흡수되었고, 한대에서는 벌금형과 맥락을 같이하던 재산형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형의 집행

형의 집행 기간

중국 고대의 전통적 음양사상에서 만물이 생육하는 시기(봄과 여름)는 양기가 성하고, 반대로 가을과 겨울이 되면 음기가 강해 만물이 죽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형벌과 덕치도 각각 음과 양의 범주에 들어있고, 음인 형벌의 집행은 음인 가을과 겨울에 실시해야만 했다. 구체적으로 전한 시기에 죄의 재판과 처리는 9월부터 입춘 정월까지만 해야 했다. 따라서 적어도 입춘이 되면 형을 집행할 수 없었고, 미결된 채 사령이 내려져 사면되었다. 현실적으로 가벼운 죄를 비롯한 모든 형벌을 집중적으로 처리 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자 1갑, 자 1순이 며칠의 노역일 수에 해당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처형 장소

남성의 경우 처형은 공개적으로 집행된다. 따로 자리가 정해진 것은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저자에서 진행되었다. 죄수는 수감된 옥에서 형장으로 갈 때까지, 함거에 실려 일반인이 보고 있는 사이로 끌려갔다. 또한 잘려진 목은 얼마 동안 나무위에 걸렸다. 이것을 효수라고 했는데, 올빼미 머리를 나무 위에 두는 풍습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형을 공개적으로 집행한 것은 무엇보다도 위협과 일반예방이라는 형벌 그 자체가 가지는 보편적 의미가 있었던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처형 도구

처형과정을 보면 저자로 이동된 죄수는 옷을 벗고 엎드린 후 머리를 받침대 위에 놓는다. 이 받침대는 질로 불리었다. 이것은 짚을 자르는 받침대의 이름이기도 했다. 단두대 위에 있는 목을 자르는데 사용된 것은 부, 월이라는 대형 도끼였다.

강제노동의 모습

노동형에 복역하는 자들은 모두 족쇄를 차고 붉은 옷과 붉은 모자를 강제적으로 착용해야만 한다.

성단용에 복역하는 자들은 붉은 옷을 입고 붉은 두건을 쓰고 구독류체한다. 

여기서 말하는 구독류체의 구독은 수가, 유체는 족가를 의미한다. 진나라의 성단형, 즉 육형이 부가되는 형성단과 그렇지 않은 완성단은 두 종류 모두 족쇄가 채워진 상태로 노동을 했다. 죄수들은 모두 노역을 하고 있을때와 하지 않을때에도 모두 언제나 수가와 족가를 차고 있어야 했고, 옷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허가 없이 벗었을 경우 형이 1등급 더 무거워지고, 다른 죄수들의 족쇄를 풀어주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노역에는 매일 달성해야 할 책임량이 있었다. 죄인은 군과 현의 관저에서 일을 했는데, 엄격한 감독관은 조금이라도 책임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제멋대로 행동하면 가차없이 때렸다.

진나라의 형벌제도가 후대에 미친 영향

구장률

한나라의 최초의 법률은 구장률인데 진나라에서 시행된 상앙의 6률에 3률을 덧붙인 것으로 한나라의 정률이라 불린다.

육형의 폐지

진대에 존재했던 육형은 한대에 들어 폐지되었고, 노역형에 형기가 부연된 형태와 태형이 새로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는 진한 형벌사 상의 큰 번혁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육형이 폐지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전한 제 5대 황제인 문제 13년. 제나라 태창령이던 순우공이 죄를 지어 장안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의 막내딸 제영은 아버지와 함께 장안까지 와서 황제에게 직소했다.

제 아버지는 일찍이 청렴결백하다고 칭송이 자자했으나, 지금 죄를 지어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것은, 죽은 자는 두번 다시 살아날 수 없고, 육형을 받느 자는 다시 원래의 신체로 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잘못을 다시 고쳐서 살아간다하더라도 원상태로 회복될 수 없습니다. 제가 관노비가 되어 다시 아버지의 죄를 갚겠으니 아버지를 새 길로 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 제영, 한서
막내딸이 직소하고 난후 육형을 폐지하라고 명령했다는 내용이 한서에 등장한다.


이후, 육형의 정형인 경형을 두발을 자르는 곤겸형으로 바꾸고, 육형의 부가형인 의와 참지형 폐지하며, 대나무 널빤지로 죄수를 때리는 태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참지형은 사형에 흡수되었다. 따라서 이후 육형은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곤겸과 성단을 함께 일컫는 형벌인 곤겸성단이 등장했다. 곤겸성단은 곤겸과 성단 두 부분으로 나누어 해석한다. 곤겸의 곤은 두발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고, 겸은 형도모에서 출토된 형구인 수가를 의미한다. 그리고 성단은 변방지역의 성벽의 수리와 경비를 맡아 이른 아침부터 야간까지 내리 복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곤겸성단은 노역형 중에서 가장 무거운 형이었고 형기는 5년이었다. 하지만 여자들에게는 성단 대신 곡물을 탈곡하는 용이라는 노역형이 내려졌다. 완성단은 완과 성단으로 나누어 해석할 수 있는데, 완이라는 것은 곤과 겸을 면제한다는 의미이고, 성단은 앞서 곤겸성단에서의 성단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완성단은 곤겸성단보다 1등급 가벼운 형벌로서, 형기는 4년이다. 여자들에게는 역시 성단 대신 용에 복역하게 하였다. 귀신형의 형기는 3년, 예신형의 형기도 3년, 사구형의 형기는 2년, 그리고 수벌작형의 형기는 3개월에서 1년 사이였다.

참고문헌

도미야 이따루, 유골의 증언, 서경문화사, 1999

김경찬, 中國의 死刑制度에 관한 硏究, 고려대학원, 2011

Chinese Wikipedea "秦朝" 3.1 法律

  1. 허리를 절단하는 형
  2. 목을 절단하는 형
  3. 범죄자의 가족도 모두 처벌하는 형법
  4. 황제와 국가에 대한 반역 행위를 하거나, 황제를 속이거나, 황제와 국정을 비방하거나, 국가 전복을 도모하는 행위
  5. 머리를 베어 높은 곳에 매달 던 형벌
  6. 거리에서 사형을 집행하고 그 시체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형벌
  7. 죄인의 사지를 다섯 대의 수레에 나누어 묶고 찢어 죽이는 형벌
  8. 사지를 찢는 형벌
  9. 익사시켜 죽이는 형벌
  10. 산채로 묻는 형벌
  11. 교살하여 죽이는 형벌
  12. 신체에 손상을 가하는 형벌
  13.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형벌
  14. 코를 베는 형벌
  15. 발뒷꿈치를 자르는 형벌
  16. 생식기를 거세하는 궁형
  17. 왼쪽 발뒷꿈치를 자르는 형벌
  18. 오른쪽 발뒷꿈치를 자르는 형벌
  19. 경찰관의 일종
  20. 갑옷
  21. 방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