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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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후주 진숙보
(陳 後主 陳叔寶, 553~604년)

본명 진숙보
국적
전임자 선제 진욱
후임자 수 문제 양견
시호 장성양공(長城煬公)
후주(後主)


진숙보(陳叔寶, 553년 ~ 604년)는 중국 남북조 시대 진나라의 제5대 황제이다.


진숙보의 최후

양견은 수나라를 창건한 후 정력적으로 정치에 임하고 있었다.
한편 남조의 진왕조에서는 진의 마지막 황제 진숙보가 밤낮으로 주색과 유흥에 빠져 패망을 재촉하고 있었다. 국가의 장래를 우려한 대신 장화(章華)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상소를 올렸다.
"폐하께서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지 이미 5년이 되었건만 선조의 창업의 고통을 잊으시고 주색에 빠져 전혀 정사를 외면하고 계십니다. 조상을 제사지내는 중대 의식에는 한번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시고 여자 고르는 일에는 반드시 얼굴을 보이시니 이럴 수는 없습니다. 충직한 신하는 조정을 멀리하고 간사한 무리가 조정에 들끓고 있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이를 시정하지 않으시면 강남의 국토는 황폐해지고 말 것입니다."
진숙보는 이 상소문을 보고도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장화의 목을 베었다.
588년 수 문제 양견은 진숙보의 20가지 죄목을 열거하여 이를 30만 부 인쇄하여 강남 지방에 뿌리고 50만 대군을 출동시켜 진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장강을 수비하고 있는 진군으로부터 수나라 군사가 공격해왔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진왕조의 중신들은 모두 당황하고 놀랐으나 진숙보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진왕조가 멸망할 까닭이 없다. 북제가 세 차례, 북주도 두 차례나 공격해왔지만 모두 실패하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라고 말했다. 측근의 한 사람인 공범(孔範)이 맞장구를 쳤고, 진숙보 등의 사람들이 꿈에 취해 있을 때 수나라 군사는 장강을 건너 주작문을 통해 궁전에 들이닥쳤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진숙보도 당황하여 두 총희와 함께 우물 안으로 숨었다가 생포되었다.
589년 진숙보는 장안으로 압송되고 남조 최후의 왕조 진왕조는 막을 내렸다. 남조의 수도였던 건강은 역사상 금릉(金陵)이라고 불리며 손권의 오나라, 동진, 송, 제, 양, 진의 여섯 왕조가 이곳에 수도를 두었기 때문에 육조의 고도라고도 불리었다. 이로써 건강은 진왕조의 멸망과 함께 봉건왕조의 수도로서의 역사적 발자취를 남겼고, 1세기 반에 걸친 남북조 분열의 격동적 국면도 수왕조의 천하통일과 함께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김희영,『이야기중국사 2』(청아출판사, 2006)
백양 저, 김영수 역,『맨얼굴의 중국사 3』(창해,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