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티베트 독립운동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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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기의 논문은 “중국 vs 티베트”라는 민족적 구도로만 역사를 보고 있는데 이 논문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편향된 서술을 따르게 됩니다.

민주개혁이 1959년인데 대약진운동(대략 1958~1960)으로 인해 중국인이 티베트를 ‘더욱’ 착취했다고 하는 것은 사실 확인이 필요해보입니다. 티베트 지역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자연재해로 인해 기근을 겪었을 것인데, 이때 중앙정부에서 티베트의 식량을 다른 지역으로 차출해갔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티베트는 이제 겨우 토지개혁이 시작되는 단계였고, 농업집단화나 대약진운동을 진행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습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어느 정도 사회주의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티베트 인민들도 직접 문화대혁명에 동참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티베트 인민 vs 중앙정부’의 구도만으로 보면 안 됩니다. 티베트의 젊은 홍위병과 조반파들은 전통 사원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다른 자료를 좀 더 찾아 보완하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수업시간에 다룬 왕후이의 관점은 언급이 되면 좋겠습니다.

라사 --> 라싸로 통일해주세요.Ziyou23 (토론) 2016년 6월 27일 (월) 11:15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