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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6월 23일 (목) 09:54 (차이 | 역사) . . (+53) . . 민간신앙 (→참고자료) (최신)
- 2016년 6월 23일 (목) 09:42 (차이 | 역사) . . (+4) . . 민간신앙 (→민간신앙의 개념과 유형)
- 2016년 6월 23일 (목) 09:42 (차이 | 역사) . . (+463) . . 민간신앙 (→민간신앙의 개념과 유형)
- 2016년 6월 23일 (목) 09:37 (차이 | 역사) . . (+79) . . 민간신앙 (→민간신앙의 개념과 유형)
- 2016년 6월 23일 (목) 09:35 (차이 | 역사) . . (+79) . . 민간신앙 (→민간신앙의 개념과 유형)
- 2016년 6월 23일 (목) 09:33 (차이 | 역사) . . (+46) . . 민간신앙 (→민간신앙의 개념과 유형)
- 2016년 6월 21일 (화) 23:51 (차이 | 역사) . . (0) . . 서진 (→서진의 멸망(265~316)) (최신)
- 2016년 6월 21일 (화) 23:49 (차이 | 역사) . . (+1) . . 육조 (최신)
- 2016년 6월 21일 (화) 23:48 (차이 | 역사) . . (+639) . . 새글 육조 (새 문서: 중국 3국시대오(吳)·동진(東晉) 및 남조(南朝)의 송(宋)·제(齊)·양(梁)·진(陳)을 합한 시대. 모두 난징(南京)을 국도(國都)로 하고, 양쯔강(...)
- 2016년 6월 21일 (화) 23:39 (차이 | 역사) . . (+657) . . 새글 성족상정 (새 문서: 성족상정이란 한족의 귀족제에 대응해서 관료로 나가는 사회적 통념에 기초한 호족들의 가문의 등급을 뜻하는 말이다. 목, 육, 하, 유, 누,...) (최신)
- 2016년 6월 21일 (화) 23:37 (차이 | 역사) . . (-4) . . 관제개혁 (최신)
- 2016년 6월 21일 (화) 23:36 (차이 | 역사) . . (+628) . . 새글 호한문화 (새 문서: 호한체제란 정치체제나 제도를 포함할 뿐 아니라, 호한 양 민족이 한 지역, 한 통치체제 내에서 병존하여 하나의 문화체제를 형성해 가면...) (최신)
- 2016년 6월 21일 (화) 16:55 (차이 | 역사) . . (+4,710) . . 새글 강남 (새 문서: 강남지역은 대담한 경제정책을 추진하였다. 문화가 성숙하는 이유는 역시 그 기저에 일정한 정도의 사회안정과 그에 동반된 번영이 있기...) (최신)
- 2016년 6월 21일 (화) 16:52 (차이 | 역사) . . (+2,087) . . 새글 한문화 (새 문서: 무제는 즉위 4년째에 수도에 국립대학을 세우고, 오경(五經)에 각각 박사(博士)의 관직을 두고 학교를 만들어 학생을 가르치게 했다. 오경...)
- 2016년 6월 21일 (화) 16:02 (차이 | 역사) . . (+4) . . 위진남북조 (→시대개관)
- 2016년 6월 21일 (화) 15:51 (차이 | 역사) . . (+996) . . 위진남북조 (→사회)
- 2016년 6월 21일 (화) 15:47 (차이 | 역사) . . (-3,977) . . 위진남북조
- 2016년 6월 21일 (화) 15:13 (차이 | 역사) . . (+1,104) . . 새글 우문부 (새 문서: 정확한 종족·원주지(原住地)는 중국사료에도 기록이 일정하지 않으나, 아마도 모용부(慕容部)·탁발부(拓跋部) 등과 같은 선비(鮮卑)의 한...) (최신)
- 2016년 6월 21일 (화) 15:05 (차이 | 역사) . . (+664) . . 새글 회제 (새 문서: 중국 서진의 제3대 황제로 306년 형인 혜제(惠帝)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팔왕의 난(291∼306)이 진정된 후, 흉노(匈奴)의 침입에 대비하...)
- 2016년 6월 21일 (화) 15:03 (차이 | 역사) . . (-8) . . 영가의 난 (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