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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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괘(八卦)

팔괘(八卦)는 역을 구성하는 64괘의 기본이 되는 8개의 도형을 의미하나, 이 문서에서는 팔괘와 더불어 팔괘와 문자와의 관련성도 같이 설명한다.

팔괘에 대한 기록


주역(周易)에서 포희씨(庖犧氏)가 팔괘를 만들었다고 최초로 언급하였으며, 설문해자에서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설문해자에서는 더 나아가 포희씨의 팔괘를 신농씨의 결승서계·창힐과 연결시켜 문자와의 관련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다. 역위(易緯)에서는 팔괘가 8개의 한자에서 기원했다고도 하였다.


팔괘의 내용


팔괘는 음효(陰爻)와 양효(陽爻)를 3층으로 결합하여 만든 8개의 ‘괘’를 말하며, 이들은 다시 두 개씩 쪼개지고 다시 합쳐져 복괘 64개를 이루게 된다.
주역의 설괘전(說卦傳)에서는 팔괘를 삼라만상과 연관 지어 자연계의 불상을 나타냈고, 인간 신체의 구조나 혈연관계도 팔괘와 연관지어 하늘 건(乾)을 부(父)로, 땅 곤(坤)을 모(母)로 보는 등 팔괘로 당시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양리는 <주역과 중의학>에서 “괘는 본질적으로 음괘(陰卦)와 양괘(陽卦)로 크게 구분한다. 사물을 상징할 때는 강건한 성질과 유순한 성질의 사물로 구분하여 상징하고, 양괘와 음괘의 구분은 효 획수의 홀짝을 기준으로 결정한다. 예를 들어 건, 진, 감, 간은 효의 획수가 모두 홀수이므로 양괘가 되어 강건한 성질의 사물을 상징한다. 그리고 곤, 손, 리, 태는 효의 획수가 짝수이므로 유순한 성질의 사물을 상징한다.”라고 하였다. 또한 <주역>의 음양대립과 통일은 괘사와 효사에서 말로 밝혀져 있기도 하지만, 음효(陰爻)와 양효(陽爻)를 표시하는 데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이를테면, '--'는 음효가 되고 '―' 는 양효가 되는데, 64괘의 변화는 바로 이 음효와 양효의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다.”라고 하였다.

팔괘와 문자


갑골문의 10까지의 숫자를 보면 8이내의 숫자는 대부분 직선획을 응용하여 만들었다.

갑골문의 숫자









이 숫자들중 五와 六은 간체와 번체가 있는데, 발굴된 고대의 팔괘와 비교해보았을 때 이는 우리가 종래에 보아오던 모양과는 매우 특이한 형체였다.

상대 안양유적지에서 발굴한 복골(卜骨)과 주대 서안에서 발굴한 복골을 비롯해 상주 청동기 명문에서도 각기 상주 시대의 발괘를 발견하였다.

商周時代의 팔괘


이들을 비교해보면, 문자는 곧은 선을 이용한 1에서 8까지의 숫자를 조합한 것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발견된 숫자는 一, 五, 六, 七, 八 등이고 二, 三, 四는 출현하지 않았다. 또한, 숫자 중 홀수는 팔괘 부호의 '―'에 해당하고 짝수는 '--'에 해당한다.

<주역>에서는 음양의 괘를 '―'와 '--'로 나타내는 이들 부호는 도기(陶器), 동기(銅器), 갑골문(甲骨文)에 두루 나타나고 출토 지역도 광범위하나, 상주에는 단지 족명(族名)이나 읍명(邑名)으로만 쓰였다. 금문(金文)에서 족명은 도형으로, 읍명은 문자로 나타내었던 점으로 보아 팔괘와 문자는 비슷한 문자부호로 간주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사람들의 관념으로는 문자와 팔괘는 같은 것이었고, 이러한 관념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팔괘가 문자의 기원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출토자료에 의하면, 이러한 팔괘가 상대를 거쳐 진한시대에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팔괘와 문자를 연관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어, 한대 사람이었던 허신(許愼)은 당시의 팔괘를 보고 문자와의 연관성을 생각해냈을 것이다.



팔괘에 대한 견해들


한(漢)대에는 설괘전을 신봉하여 팔괘 고문자설까지 생겨나 8괘를 각기 다른 8개의 고문자로 보았다. 8괘가 자연계의 물상을 상징한다고 했던 것을 그대로 끌어와 팔괘를 아예 고문자로 보았던 것이다. 송(宋)대의 정초(鄭樵)는 “감(坎)을 따랐던 것이 점차 水가 되었고, 리(離)를 따랐던 것이 점차 火가 되었으며 곤(坤)을 따랐던 것이 점차 巛이 되었다.” 고 말하면서 팔괘의 고문자설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이와 달리 팔괘가 고문자라는 가설을 강력히 부인하면서 팔괘는 셈가지를 늘어놓은 모양이라고 말했던 당란(唐蘭)이라는 사람도 존재하였다.

팔괘의 한계


문자와 팔괘의 관계가 아무리 고대에 밀접했다고 하더라도 숫자 조합으로 구성된 팔괘는 숫자의 발생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즉, 문자가 없는 상태에서 팔괘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자가 팔괘에서 기원되었다는 가설은 믿기 어렵다.

참고문헌


김명헌, 臟腑와 三陰三陽의 八卦 配屬 硏究, 대전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06.
양동숙, 그림으로 배우는 중국문자학, 차이나하우스, 2006, pp56~60.
이혁경, 周易의 天地自然觀 硏究, 성균관대학교, 석사논문,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