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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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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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사기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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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조승(赵胜)


평원군(平原君)의 본명은 조승(?~기원전 251년), 전국시대의 사군자(四公子)중 한 명으로, 조나라 무령왕(武靈王)의 아들이자, 혜문왕(惠文王)의 동생이다. 사군자 중 가장 어질고 재능이 있기로 유명하다. 사마천은 평원군이 다른 사람의 간언을 받아들이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여 이웃 나라에 명망을 떨친 점에서 “평원군은 혼탁한 세상에서 새가 하늘 높이 날듯이 재능과 지혜가 있는 훌륭한 공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모한 사람이었음을 묘사한 부분도 많다. 절름발이를 비웃은 애첩을 처음에는 두둔하다가 1년이 지나 빈객들이 점점 떠나간 뒤에야 그녀를 죽여 빈객들이 다시 모여들게 한 일이라든지, 모수를 무능한 인물로 평가했다가 그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한 것 등이 그러한 예이다. 그는 사람을 예의와 겸손으로 대하였기 때문에 그 밑으로 모여든 빈객이 수천 명에 달했으며, 친구관계도 매우 좋았다. 그러나 서민들에게는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 후에, 그의 문하에 있던 한 사람의 제안으로 인하여 서민들에게도 예의를 갖췄으며, 더욱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조승은 혜문왕 때 처음으로 재상이 되었고, 혜문왕이 죽은 후, 효성왕 때에도 재상을 지냈다. 효성왕 7년(기원전 259년) 장평대전 후에, 진나라의 군대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해 상황이 매우 위급해지자, 그는 그의 재산을 나누어 주기까지 하면서 병사들을 동원하여 도시를 꿋꿋이 지켰다. 조나라 왕은 그를 위(魏)와 초(楚)에 파견해 지원을 요청하였다. 9년, 그의 문하에 있던 모수(毛遂)가 자원해서 조승과 같이 초나라에 가서 지원을 요청했고, 추나라의 춘신군(春申君)의 원조를 받아 조나라를 지켜냈다. 여기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바로 ‘모수자천(毛遂自荐)이다.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 한단 내의 병사 식량이 다 떨어져, 조승은 자신의 재산을 거의 다 나눠주어서, 병사를 동원하여 도시를 방어했다. 곧바로, 추의 군대와 위나라 신릉군(信陵君)의 지원병이 도착하였고, 진나라의 포위를 격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