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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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gNam (토론 | 기여)님의 2016년 5월 15일 (일) 02:27 판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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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조

정치

(BC247-BC195)

군국제의 실시

한 제국 통일 유방은 통일의 대업을 달성하는 데 공이 컸던 신하들과 유씨 일족들을 제후(諸侯)와 열후(列侯)로 봉하였다. 제후(諸侯)가 분봉된 곳은 30여 郡 이상이었고 전국의 2/3에 가까운 지역을 차지하였다. 이에 반해 황제는 수도 장안과 그 근기지역을 군현제로 통치하였을 뿐이었다. 초한대전 당시 보여주었던 이성제후(異姓諸侯)들의 뛰어난 역량은 통일 후 황제에게 잠재적인 위험요소가 되었다.


이성제후 제거

유방은 제후들에 의해 황제 권력이 위협받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성제후를 제거하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로 통일의 대업을 이루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楚王 한신을 제거하였다. 초한대전 때 보여준 한신의 능력은 통일 후 유방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이 때문에 유방은 거짓으로 순행을 발표한 뒤 한신을 체포했다. 한신은 회음후(淮陰候)로 강등당하고 후에 여태후에 의해 살해되었다. 韓王 신(信)은 흉노에게 포위되자 항복했는데, 이를 계기로 황제는 國을 폐하였다. 趙王 장이(張耳)가 죽은 다음 아들이 왕이 되었는데, 중앙정부에 죄를 지어 열후列候로 강등당하였다. 梁王 팽월(彭越)은 모반의 혐의로 죽음을 당하였다. 이성제후들이 차례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본 淮南王 영포(英布)는 먼저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 당하였다. 燕王 노관(盧綰)은 이렇게 이성제후들이 제거되는 것을 보고 흉노에게 항복해버렸다. 長沙王은 후계가 없어 화를 면하였지만 그가 죽은 후 나라는 해체되었다. 이렇게 모든 이성제후를 제거한 유방은 그 자리에 동성제후를 봉하였다.

흉노와의 관계

유방이 중원을 통일했을 때에는 흉노의 모돈단우(冒頓單于)가 몽고 만주 중앙아시아지역을 모두 통일하여 거대한 유목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는 여러 방면으로 한을 침략하여 대에 빼앗겼던 하남지역을 회복하였다. 이에 유방은 흉노를 직접 정벌하고자 하였다. 모돈단우의 40만 기마병사와 유방의 32만 보병부대가 지금의 산서성 대동현 부근에서 맞붙었다. 유방은 모돈단우의 유인작전에 말려들어 평성에서 포위당하였다가 간신히 빠져나왔다.
이후 유방은 흉노와 화친을 맺었는데 종실의 여자를 모돈단우에게 시집보내고, 매년 많은 비단과 쌀 등을 넘겨주어야하는 불공정한 조건을 떠안아야 했다. 하지만 화친조약을 맺은 후에도 흉노의 침략은 멈추지 않았으며 그들의 강한 군사력 때문에 뚜렷한 해결방법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