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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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량(項梁)
출생 ?
진나라 하상(下相)
사망 정도(定陶)현
국적 초나라
직업 무신군(武信君)
활동 기간 기원전 3세기
친척

아버지 항연(项燕)
남동생 항백(項伯)

조카 항우(項羽), 항장(項莊), 유유(劉猷)


개요

항량(? - 기원전 208년 9월)은 나라 하상(현재 강소성 숙천시 숙성구)사람으로, 진 말기의 유명한 군을 일으킨 지도자 중 한 명이다. 나라 귀족 항씨의 후손이자, 항연의 아들이며, 서초패왕 항우의 숙부이다. 반진(反秦)전쟁인 딩타오(定陶)전 중에 진의 장한(章邯)에게 패배함으로써 전사했다.


집안

항량의 집안은 초나라의 귀족이었다. 항량의 아버지 항연은 이름난 장수로 진초(秦楚)전쟁 중에 왕전(王翦)에게 패하고 순국했다. 항량 집안의 선조는 많은 이가 초나라의 장수, 지도자였다.


초기

항량은 사람을 죽여서 조카 항우와 원수를 피해 오중(吴中)(현재 수주시)으로 거처를 옮겼다. 항량은 오중에서 위신이 매우 높아서 현명한 사대부들도 그의 밑이었으며, 그곳의 대사는 전부 그가 총괄했다. 항량은 이런 종류의 일을 이용하여 암암리에 병력을 모집, 전마를 구매, 젊은이들을 훈련시켰다.


진에 반하여 병사를 일으키다

기원전 209년 (진 2세 원년 7월) 진승·오광 봉기가 발발한 후, 항량과 항우는 같은 해 9월에 회계 임시군수(태수의 대리) 은통(殷通)을 죽이고, 병사를 모았는데 오중의 군대 8천 명을 얻었다. 이에 항량은 회계군 군수가 되었고 항적은 부장이 되어 속현을 다스렸다. 진승왕의 사자(使者)가 진왕의 명령이라고 거짓으로 말해, 항량을 초왕의 상주국을 맡겼는데, 그 즉시 장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다. 항량은 항우 등 8천 명을 거느리고 강을 건넜는데, 진군을 여러 번 이겼다. 따르는 몇몇의 반진 군부대를 얻어 병력은 6, 7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그들은 하비(下邳)에 진군하여 머무르면서 초왕 경구(景駒) 세력을 소멸시켰다. 진승(陈胜)이 죽고 난 후에, 참모 범증은 초의 민심에 따라 진언하였는데, ‘초나라에 설사 세 집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진을 멸망시킬 나라는 반드시 초나라이리라’는 내용이었다. 또 항량에게 초의 후손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건의했는데, 항량은 그 말을 그럴 듯하다 여겼다.
진 2세 2년 (기원전 208년) 6월, 초의 민심을 얻기 위해서, 초회왕의 손자 옹심을 왕으로 세웠는데 초회왕이라 불렀다. 역사가들은 초후회왕이라 일컫는다. 항량 자신은 무신군이라 불렀다.
같은해 8월, 항량은 일찍이 진국의 이름 난 장수 장한을 패배시켰다. 옹구에서 진을 치고 진나라 재상의 장자와 진왕의 사위이자 삼천군 군수 이유를 베었다. 9월, 송의의 간언을 업신여기고 무시하여, 딩타오현에서 장한에게 패배하여 전사했다.


가정

부친

항연, 초나라의 이름난 장수. 진나라 병사가 초를 멸할 때 우연히 대패하고 자살했다.

형제

항백, 항량의 남동생, 홍문연 때 유방을 구했다.


관련고사

선즉제인(先則制人) 선발제인(先發制人)도 같은 의미.
이 고사는 '남보다 먼저 행하면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며, 《사기》 중 <항우본기>의 아래 내용에 근거한 것이다.

 진나라 이세 원년 7월, 진섭 등이 대택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원년 9월, 회계 군수 은통(殷通)이 항량에게 말했다.
 “강서 지역이 모두 모반했으니, 하늘이 진나라를 멸망시키려는 때이오. 내가 듣건대 먼저 착수하면 남을 제압할 수 있고, 나중에 하면 남에게 제압당한다고 하오.
 나는 군대를 일으켜 그대와 환초(桓楚)에게 우리를 통솔하도록 하려고 하오.”
 이때에 환초는 도망가 택중(澤中)에 있었다. 항량은 말했다.
 “환초는 도망쳤는데 사람 가운데 그가 있는 곳을 아는 자가 없고 오직 항적만이 알 뿐입니다.”
 항량은 즉시 나와서 항적에게 검을 지니고 처소 밖에서 기다리라고 분부했다. 항량이 다시 들어가 군수와 더불어 앉아서 말했다.
 “청컨대 항적을 불러 그에게 환초를 부르라는 명을 받도록 하십시오.”
 군수가 말했다.
 “좋소.”
 항량이 항적을 불러들였다. 잠시 후 항량이 항적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행동해도 된다.”
 이에 항적은 마침내 검을 뽑아 군수의 머리를 베었다. 항량이 군수의 머리를 들고 그의 인수를 허리에 찼다.
 군수의 부하들이 크게 놀라면서 소란을 피우자 항적이 쳐 죽인 사람은 몇십 명이나 되었다. 그러자 관청 안의 모든 사람이 놀라 땅에 머리를 대며 감히 일어나지 못했다.



참고문헌

중국 위키백과 항량 항목
《사기·항우본기(史記·項羽本紀)》
《한서·진승항적전(漢書·陳勝項籍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