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진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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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8월 14일 (화) 18:28 판 (문화대혁명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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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농촌 지역에 존재하고 농민들에 의해 설립된 비농업부문(공업, 운수, 서비스업 등)의 경제활동을 담당하는 다양한 형태의 비국유기업을 총칭하는 용어. 1978년~1996년을 향진기업의 황금기라 부르며, 지령경제로부터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이루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향진기업은 도시 지역에 비해 통제가 덜 경직적이었다. 농촌 지역의 향진기업이 급성장하면서 국유기업과 경쟁이 촉발되었고, 전체 경제의 시장화가 촉진되었다. 또한, 농가소득을 증가시키고 농업 노동력을 흡수해 도시와 농촌간 격차를 좁히는 데에도 일조했다.

향진기업은 소유, 기업지배구조가 특이해서 여타의 기업형태와는 구분된다. 농촌의 인민공사에 뿌리를 둔 대부분의 향진기업들은 집체적인 소유형태(공유기업)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1995~1996년 이후 향진기업은 대부분 사유화되며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결과적으로 2000년대에 들어서면 향진기업은 대부분 사적 소유구조를 지니게 된다.

향진기업의 기원

중국의 전통적 농촌경제

중국 농촌의 전통적 경제활동에는 물론 농업이 주요했지만, 가계의 비농업적 경제활동 또한 주요한 역할을 했다. 농촌 지역 비농업 부문 경제 활동은 규모가 작은 가내공업 기반의 시장 거래가 지배적이었다. 농촌가계는 면화를 방적·방직하고, 누에를 길러 견사를 자아내고, 담배를 재배하고 곡식을 빻고 국수를 만들 뿐 아니라 진흙 벽돌을 만들고, 나무를 자르고, 재화를 시장에 운반하고, 가게를 열어 장사를 했다. 특히 농산물을 가공해서 상품으로 전환하는 수공업 활동이 가장 중요한 비농업 활동이었다. 이들은 시장/부업이라는 조밀만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개조 시기 농촌경제

사회주의 개조 시기에는 국가가 농산물을 독점적으로 관리하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농산물을 가공하여 시장에서 거래하던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공급원을 빼앗겼다. 곡물, 면, 견, 땅콩 등은 수확하자마자 즉시 국가가 가져갔다. 사실상 1950년대 이후 농촌 지역은 탈산업화되었다. 농촌의 인구는 농촌 협동농장으로 조직되며 비농업 활동이 감소되었고 국가가 직접 모든 제조업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상업화된 농촌 지역에서는 부업 활동을 통한 소득 비중이 컸기 때문에 가계 소득이 줄어들었다. 국영 공장들이 대량생산을 하기 시작하면서, 숙련된 수공업자들의 다수는 쇠퇴했다.

대약진운동 시기

대약진운동 시기에 시행된 주요 정책은 인민공사를 만들어 농촌지역의 과도한 농업의존을 줄이고, 이들로 하여금 비농업 활동에 종사하도록 장려하는 것이었다. 인민공사 체계 하에서 촌락들은 각종 서비스 제공뿐만 아니라 공장 및 건설 생산대를 출범하도록 장려되었다. 중국의 농촌에서는 건장한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농업에서 빠져나와 매우 대중화된 "뒤뜰 제철소"를 포함한 농촌 공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대약진운동 시기 많은 노동력이 공업으로 흡수되면서 농촌에는 인력 고갈 현상이 나타났고, 인민공사의 지원을 받던 기업들은 대약진운동 이후 1961~62년의 위기상황에서 문을 닫게 되었다.

문화대혁명 시기

1970년대 이후 마오식의 "새로운 대약진운동" 기간 동안 정부는 "사대기업(社隊企業)"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지원하는 농촌의 산업화를 시도했다. 이에따라 농촌의 노동자 이주는 엄격하게 통제되었고, 농촌의 산업들은 농업집체와 긴밀히 결합하여 농업을 보조하도록 규정되었다. 대약진운동 기간동안 조직되었던 인민공사와 생산대대는 산업 발전의 디딤돌이 되었고, 농촌 산업은 문화대혁명 시기의 정책 하에 1970년대 급속하게 부활했다.

1970년대 농촌의 산업화는 전통적인 농촌 공업과는 상이했다. 1970년대 정책은 "5소공업(5小工業)", 즉 철강, 시멘트, 화학 비료, 수력, 농기구 등을 주요 산업으로 강조했다. 이 공장들은 도시의 공장들보다는 작았으며, 전반적으로 기존 농촌의 작업장이나 공장에 비해서는 규모가 컸다. 이 공장들은 투자된 금액에 비해 노동자를 많이 고용하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농촌의 산업들이 농촌 노동력을 많이 흡수하지는 않게 되었고, 1978년을 기준으로 농촌 인구의 90%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사대기업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농촌 기업들은 농촌 지역의 현존하는 농업 집체구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농촌 산업의 이윤이 농업집체 전체의 작업점수 가치를 높이는 데 사용되기도 했으며, 농촌 산업의 노동자들은 종종 이 농업집체의 작업 점수에 따라 보수를 받기도 했다. 농촌 기업으로부터 얻은 수입은 지방정부로 상납되었고, 이는 다시 공적인 업무나 농업 활동에 대한 보조금으로 사용되었다.

향진기업의 발원기(1978 ~ 1983)

기존의 중국을 도시와 농촌을 구분하는 이원적 개발을 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개발은 도농간의 격차를 심화시켰고 농민의 도시이주, 농촌의 낙후, 에너지 문제 등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1978년 지역생산책임제(地联产承包责任制)가 실시된 이후, 농촌에는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이른바 '잉여노동력'이 발생하게 되고 이들은 취업, 소득 증가에 대한 열망과 함께 도농간의 빈부격차 극복을 희망하게 된다.

중국 정부는 농촌에서도 단순 농업뿐만 아니라 비농업 분야(공업, 산업, 서비스업, 운수업, 등)을 발전시켜야 함을 인식하게 되었고 당 중앙위원회는 여러 정책들을 실시한다.

1. 인민공사가 운영하던 사기업(社企业)과 생산대대와 생산대가 운영하던 대기업(队企业)을 합친 사대기업社会企业을 고도화하여 전국적인 차원에서 지원하였다. 당 중앙은 <사대기업 발전에 대한 약간의 문제에 대한 규정>, <사대기업에 관한 국민경제 조정 방침의 관철에 대한 약간의 규정>을 공표하며 양식업, 가공업, 건축업, 등 여러 분야의 발전을 지원한다. 그 사기업私企业 대기업大企业 사대기업四大企业이 아니다!!

2. 사대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제정한다. 중앙정부는 농업은행을 통해 저이자 대출을 제공하였으며 각종 세금 우대, 세금면제 정책을 제공하여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3. 도농간 산업의 분업화를 유도하였다. 당 중앙은 계획 경제에 있어, 제품 생산을 도시에 있는 기업들에게서 사대기업으로 그 할당을 이전하였으며, 이에 필요한 각종 설비 및 기술을 지원하였다. 또한 사대 기업의 생산, 공급, 판매가 전체 경제 계획가 일치하도록 공급, 판매 경로의 원활한 확보를 지원하였다.

이 시기는 사대 기업의 발전을 위한 기반을 조성한 시기이다. 하지만 기반 조성일 뿐 발전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향진기업의 발전기

제1발전기

치리정돈의 시기

제2발전기

현대 향진기업으로 전환기

참고자료

『중국 경제』, 배리 노턴, 이정구·전용복 옮김, 서울경제경영
「중국 향진기업의 발전과정과 향후 발전방향」, 장동식, 여택동, 이창열, 『CHINA 연구』제10집(부산대학교 중국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