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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노사상은 [[전국시대]] 중후기부터 [[한]](漢)나라 시대까지 약 400년 동안 유행하던 하나의 사상이다. 황노(黃老)라는 말은 [[황제]]와 [[노자]]의 첫 글자를 딴 합성어이다. 황제는 전설상의 인물이지만 각종 법률과 규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상징되며 노자는 도가사상의 뿌리이자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황노사상은 보통 법가와 도가가 융합된 사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한나라 이전까지 황제와 노자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황노라는 말이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사마천]]의 [[사기]]이다. 이후 황노라는 말은 <<[[한서]]>>, <<[[후한서]]>> 등 한나라의 여러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봤을 때, 황노라는 말은 한대에 이르러 만들어졌지만 황노사상은 전국시대부터 존재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황노사상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황노사상의 구체적인 사상이 무엇인지, 황노사상의 창시자가 누구인지 등 황노사상의 특징과 성격에 대해서는 확실히 정리된 것이 없다. 따라서 황노사상의 범주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이견이 존재한다.<br>황노사상과 그에 따른 황노학의 변화를 보면, 황노사상은 전기에는 정치적 사상으로 사용되었다. 황노사상의 전기는 진한 교체기 이전까지를 말하며 노자의 [[무위사상]]과 법가의 [[형명사상]]이 그 기본으로 주로 군주의 통치 방법에 관심이 집중되어있다. 진한 교체기 무렵부터 서한 말기까지의 중기 황노사상을 보면 그 관심사가 치국(治國)에 있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기론적인 세계관이 황노사상의 밑바탕이 된다. 후기 황노사상의 관심은 치국에서 치신(治身)으로 옮겨져왔다. [[한]] [[무제]] 이후로 유학에 통치사상을 내주고 난뒤, 황노사상의 관심은 정치에서 개인으로 옮겨졌고, 이는 양생(養生)사상의 발전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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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노사상은 [[전국시대]] 중후기부터 [[한]](漢)나라 시대까지 약 400년 동안 유행하던 하나의 사상이다. 황노(黃老)라는 말은 [[황제]]와 [[노자]]의 첫 글자를 딴 합성어이다. 황제는 전설상의 인물이지만 각종 법률과 규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상징되며 노자는 도가사상의 뿌리이자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황노사상은 보통 법가와 도가가 융합된 사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한나라 이전까지 황제와 노자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황노라는 말이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사마천]]의 [[사기]]이다. 이후 황노라는 말은 <<[[한서]]>>, <<[[후한서]]>> 등 한나라의 여러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봤을 때, 황노라는 말은 한대에 이르러 만들어졌지만 황노사상은 전국시대부터 존재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황노사상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황노사상의 구체적인 사상이 무엇인지, 황노사상의 창시자가 누구인지 등 황노사상의 특징과 성격에 대해서는 확실히 정리된 것이 없다. 따라서 황노사상의 범주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이견이 존재한다.<br>황노사상과 그에 따른 황노학의 변화를 보면, 황노사상은 전기에는 정치적 사상으로 사용되었다. 황노사상의 전기는 진한 교체기 이전까지를 말하며 노자의 [[무위사상]]과 법가의 [[형명사상]]이 그 기본으로 황노사상은 주로 군주의 통치 방법에 관심이 집중되어있다. 진한 교체기 무렵부터 서한 말기까지의 중기 황노사상을 보면 그 관심사가 치국(治國)에 있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기론적인 세계관이 황노사상의 밑바탕이 된다. 후기 황노사상의 관심은 치국에서 치신(治身)으로 옮겨져왔다. [[한]] [[무제]] 이후로 유학에 통치사상을 내주고 난 뒤, 황노사상의 관심은 정치에서 개인으로 옮겨졌고, 이는 황노사상에서 양생(養生)사상의 발전을 일으켰다.  
  
 
== 참고문헌 ==
 
== 참고문헌 ==

2016년 6월 21일 (화) 19:02 기준 최신판

황노사상은 전국시대 중후기부터 (漢)나라 시대까지 약 400년 동안 유행하던 하나의 사상이다. 황노(黃老)라는 말은 황제노자의 첫 글자를 딴 합성어이다. 황제는 전설상의 인물이지만 각종 법률과 규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상징되며 노자는 도가사상의 뿌리이자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황노사상은 보통 법가와 도가가 융합된 사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한나라 이전까지 황제와 노자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황노라는 말이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사마천사기이다. 이후 황노라는 말은 <<한서>>, <<후한서>> 등 한나라의 여러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봤을 때, 황노라는 말은 한대에 이르러 만들어졌지만 황노사상은 전국시대부터 존재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황노사상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황노사상의 구체적인 사상이 무엇인지, 황노사상의 창시자가 누구인지 등 황노사상의 특징과 성격에 대해서는 확실히 정리된 것이 없다. 따라서 황노사상의 범주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이견이 존재한다.
황노사상과 그에 따른 황노학의 변화를 보면, 황노사상은 전기에는 정치적 사상으로 사용되었다. 황노사상의 전기는 진한 교체기 이전까지를 말하며 노자의 무위사상과 법가의 형명사상이 그 기본으로 황노사상은 주로 군주의 통치 방법에 관심이 집중되어있다. 진한 교체기 무렵부터 서한 말기까지의 중기 황노사상을 보면 그 관심사가 치국(治國)에 있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기론적인 세계관이 황노사상의 밑바탕이 된다. 후기 황노사상의 관심은 치국에서 치신(治身)으로 옮겨져왔다. 무제 이후로 유학에 통치사상을 내주고 난 뒤, 황노사상의 관심은 정치에서 개인으로 옮겨졌고, 이는 황노사상에서 양생(養生)사상의 발전을 일으켰다.

참고문헌

김춘희·김선희, <『사기(史記)』와 사마천(司馬遷)의 평가(評價),사상(思想)에 대한 일고(一攷)>,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한문고전연구> 17권0호, 2008, 225-250p.g.
이석명, <<노자와 황로학>>, 소와당, 2010, ISBN 978-89-93820-16-4 93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