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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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당나라 말기 희종의 건부∼중화 연간에 일어났다. 당나라 말기 안사의 난이 평정된 이후 지방 절도사들의 세력이 점차 확대되어 갔다. 이들 번진의 세력이 늘어나고 중앙관리의 당쟁과 환관의 횡포가 심해지면서 조정의 지배력이 흔들리고, 백성에 대한 수탈도 강화되어 토호나 상인층도 당왕조에 심각한 불만을 품게되었다. 이런 상황은 저장의 구보의 반란과 쉬저우의 군인 방훈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건부연간(乾符年間)에는 전국에 기근이 내습하여 사회적 불안은 절정에 달하였다. 당나라 말기에 소금세가 높아지는데다 소금판매업자들이 소금값을 높혀 폭리를 취하게 되자 소금밀매가 성행하게 되었고 밀매를 위한 조직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배경하에서 복주지방(하남성)의 소금 밀매업자의 두령이었던 왕선지가 874년에 난을 일으켰다.

경과

얼마후 원구지방(산동성)의 소금 밀매업자의 두령인 황소(黃巢)가 난을 일으켜 왕선지와 합류하였다. 왕선지와 황소는 하남성과 산동성 일대를 점령하였고 점점 그 기세가 높아갔다. 왕선지가 황매(호북성)에서 관군에게 죽은 후 황소는 반란군의 충천대장군(衝天大將軍)이 되었다. 허난 산둥 및 장시 푸젠 광둥 ·광시, 후난 ·후베이로 대이동을 전개하며 880년 60만 대군으로 불어난 황소의 군대는 뤄양에 이어 장안 등을 함락하였고 황제 희종은 쓰촨으로 달아났다.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