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경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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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p0925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6월 24일 (월) 16:0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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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경은 본래 북위의 수비병으로 북위 말의 대혼란 중 점차 출세하기 시작하여 동위의 고환 휘하에서 대장이 되었다. 고환이 죽자 하남 지역의 13개 주를 가지고 양나라 무제에게 투항하였다. 그러나 양의 내부 모순이 중첩되어 있음을 알고 군사를 일으켜 양나라 수양으로 진격했다. 이듬해 후경은 장강을 수비하는 양의 종실 소정덕과 손잡고 강을 건너 건강으로 진공했다. 양나라 각지에서 모인 원군의 주장은 대부분 양무제의 자손들이었는데, 그들은 황위를 넘보며 서로 견제하느라 접전할 마음이 없었다. 태청 3년 3월 후경은 대성을 격파했다. 화려했던 건강성은 일시에 폐허로 변하고 양무제는 포로가 되어얼마 되지 않아 굶어죽고 말았다. 후경은 계속해서 군사를 이끌고 삼오를 횡행하며 북쪽으로 광릉을 굴복시키고 장강을 따라 서쪽으로 강릉으로 진격했다. 하지만 강릉을 지키고 있던 소역에게 격퇴 당해 건강으로 철군해 황제를 자처했다. 후경이 거쳐 지나간 성마다 도처에 시신이 나뒹굴었고,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그의 야만행위로 인해 남방인들은 이를 악물고 통한을 금할 수 없었다. 이에 도처에서 백성들이 봉기했다. 대보 2년 소역이 왕승변과 진패선에게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남하하도록 했다. 후경은 그들에게 패배해 바다를 따라 북쪽으로 도주하다가 부하에게 살해되었다. 얼마 후 소역이 강릉에서 자립해 제위에 오르니 바로 양 원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