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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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 문화

문자의 통일

춘추전국시대 당시 전국의 국가들은 각기 다른 문자를 쓰고 있었다. 지방마다 다른 글자의 통일은 통일국가에서 중앙집권적인 관료정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빠질 수 없는 일이었다.[1] 문자를 단일하게 조정함으로써 문서 행정 효율을 높이고자 했다. 진시황은 다른 글자를 소전(小篆)예서(禮書)로 통일하였다. 소전은 비교적 복잡해서 돌에 새기는 비문이나 공식적인 묘비에서 사용되었고, 예서는 소전에 비해 단순한 형태로 일상생활에서 사용되었다. 진시황으로 인한 문자의 통일이 없었다면 중국의 문자는 다양한 모습의 한자가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났을 것이다.

사상통일

진시황이 함양궁에서 연회를 열 때, 제나라 사람 중 한명인 순우월(淳于越)이 군현제보다는 봉건제를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에 이사는 진시황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분서갱유. 사상의 통일. 법가 . 유가의 사람들은 이전의 제도를 근거로 비난을 하였는데. 의약, 점, 농업 이외의 책은 제외하고 모두 몰수해 태움. 비록 분서갱유가 비난의 표적이 되었지만, 진 제국의 실용적 법치주의를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1. 中國歷史상권, 中國史硏究室,新書苑,1993, p.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