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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모]] 감독, 진도명, 공리, 장혜문 주연의 2014년작 중국 영화
 
[[장예모]] 감독, 진도명, 공리, 장혜문 주연의 2014년작 중국 영화

2019년 6월 6일 (목) 13:11 기준 최신판

5일의 마중

장예모 감독, 진도명, 공리, 장혜문 주연의 2014년작 중국 영화

시놉시스

매월 5일, 그대 마중 가는 날..문화대혁명의 시기, 가슴 아픈 이별을 겪은 펑완위(공리 扮)와 루옌스(진도명 扮). 가까스로 풀려난 루는 5일에 집에 간다는 편지를 보낸 후 돌아왔지만, 아내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고 딸은 아빠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가족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루. 그리고 오늘도 펑은 달력에 동그라미를 친다. ‘5일에 루 마중 나갈 것.’ 과연 그들의 사랑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까?

줄거리

문화대혁명 시기, 남편인 루옌스는 반동으로 몰려 잡혀가고, 펑완위는 딸 단단(장혜문 扮)과 둘이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단단이 다니던 무용학교에 정부 사람들이 찾아온다. 찾아온 이유는 루옌스가 도망쳤다는 것. 어렸을 적 아버지와 이별해 기억도 하지 못하는 단단은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정보를 제공할 것을 약속한다. 비가 오는 날, 루옌스가 펑완위가 사는 아파트로 찾아오지만, 펑완위가 문 앞에서 망설이는 바람에 만나지 못한 채 쪽지를 남기고 돌아간다. 쪽지의 내용은 내일 8시 기차역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집에 돌아가던 단단과 루옌스는 서로 만나게 되고, 루옌스는 단단에게 약속 내용을 전해달라고 한 번 더 부탁한다. 하지만 단단은 주변에서 감시하고 있던 정부 사람에게 이 사실을 밀고하고, 루옌스를 만나러 가지 못하게 문 앞에서 잠든다. 다음날 일어나니 이미 펑완위는 기차역으로 떠난 상태였다. 기차역에서 루옌스와 펑완위는 서로 만나게 되지만, 동시에 루옌스를 쫓는 사람들도 오게 된다. 루옌스는 펑완위를 만나기 위해, 펑완위는 루옌스에게 도망치라고 이름을 외치며 서로를 향해 뛰어가지만, 결국 루옌스는 끌려가고 만다.
3년 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루옌스는 복권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펑완위는 집에 돌아온 루옌스를 알아보지 못하고, 단단은 집에서 쫓겨나 무용을 그만두고 공장 노동자가 되어 있었다. 펑완위가 걸린 병은 심인성 기억장애로, 스트레스로 인해 루옌스를 기억하지 못한다. 루옌스를 앞에 두고도 그가 5일에 나온다는 편지의 내용만 기억하며 매월 5일에 역으로 그를 마중 나간다. 의사의 조언을 듣고 집에서 앨범을 찾아보지만 루옌스의 사진은 모조리 도려내 져 있었다. 공연에서 주연자리를 얻지 못하자 화가 난 단단이 사진을 모조리 잘라내 버렸고, 이 때문에 펑완위는 단단을 내쫓아 버린 것이었다. 루옌스는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 아직 남아있던 사진도 보여주고, 피아노도 쳐 보지만 펑완위의 기억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써왔던 편지들을 읽어주며 펑완위가 편지 속 루옌스의 말은 기억한다는 것을 깨닫고 단단과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끝내 펑완위는 기억을 되찾지 못하고, 여전히 매월 5에 그녀는 루옌스를 마중하러 역으로 나간다.

기타

5일의 마중은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룬다. 더욱이 장예모 감독의 다른 작품인 <산사나무 아래>처럼 정치적인 이슈를 배제한 로맨스가 아니며, 상흔 문학으로서 시대적 아픔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장예모 감독은 5일에 마중에서도 이러한 민감한 내용을 피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화대혁명 시기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부모가 자식을 외면하는 가족 단절의 결과에도 불과하고, 당은 당을 신뢰할 것을 강요한다. 또한 가족을 파괴하고, 개인의 기억마저 왜곡시킨 상처가 치유되지 못함을 암시하면서도 책임을 물을 곳을 찾지 못한다. 단지 남편을 끊임없이 기다리는 아내의 모습과, 기억을 잃은 아내 옆에서 끝까지 헌신하는 남편, 자신을 고발한 딸을 용서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긍정적인 교훈만을 남길 뿐이다. 이것은 특히 팡 씨를 만나러 간 루옌스가 팡 씨 부인의 외침을 뒤로한 채 돌아오는 모습에서 극대화된다. 이같은 현실을 스크린에 표현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라는 가치 앞에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를 포기한 루옌스를 그렸다는 점에서 순응적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장이머우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장이머우는잘못에 대한 인정과 사죄가 없는 상황에도 ‘참고, 잊고, 용서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치유와 화해를 위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변화를 선행적으로 촉구하는것이다. 마치 루옌스가 딸 단단을 먼저 용서하자 딸이 사죄한 것처럼, 나의 가족처럼 타인의가족을 포용하라는 사회적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1]

  1. 장희재. "<5일의 마중>과 <국제시장>의 기억 방식으로서의 가족서사 ―개인·가족·국가의 관계 맺기" 중국문학97, no.0 (2018): 221-239.